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재미 탐험가 이숙경 Jan 22. 2022

발칸의 보석들.

몬테네그로와 크로아티아.

2019년 3월 31일

하루에 3개국 다닌 사연


보스니아에서 크로아티아 국경에 도착했지만 국경 검문소가 문을 닫았다. 무슨 문제가 생긴 걸까? 설마 정치적인 문제는 아니겠지? 걱정하고 있는 우리를 보고 검문소 직원이 나왔다. 가장 가까운 국경은 70킬로 떨어진 몬테네그로 국경 검문소라고 했다. 몬테네그로는 자동차 보험이 그린카드 적용을 받을 수 없는 곳이라 겸사겸사 가지 않기로 한 곳이었다. 하지만 자동차 보험료와 기름값을 왕창 써가면서 우리는 몬테네그로 지날 수밖에 없게 되었다. 겨우 도착한 산길을 다시 되돌아가는 길, 덕분에 하루에 세 개의 나라를 방문하게 되었다며 광민이 마지못해 웃는다. 


'몬테네그로'는 검은 산이란 의미다. 발칸 중에서도 더 험한 산속을 헤매게 되었지만 여행이란 본래 뜻밖의 역경이나 고난이 기다리는 법이니 즐겁게 맞이하기로 했다. 그러나 막상 국경을 지나 해안가 도시 헤르체그 노비에 도착해서는 우리가 써야 했던 시간과 돈이 하나도 아깝지 않았다. 오히려 몬테네그로를 정식 여행루트에 너어야 하는지 고민할 지경이었다. 지구 어느 구석을 가던 아름답지 않은 곳은 없는 것 같다. 하지만  우리에게 남은 여행기간이 반년도 안 남았기에 조금 아쉬운 작별을 하기로 결정하고 크로아티아 국경으로 향했다.



4월 1일부터 4월 9일까지 크로아티아

 

크로아티아에서는 관광지와 조금 떨어진 곳에 숙소를 정했었다. 사람들이 많지 않아 조용하면서도 아름다운 곳이었고 주변에는 아직도 오렌지가 달린 나무들이 있어서 더욱 풍요롭게 느껴졌다. 11월에 그리스에서부터 실컷 먹던 오렌지가 이제 4월이 되었는데도 계속 나무에 달려 있다니 정말 신기하다. 겨울을 어떻게 버텨낸 것일까? 이러다 1년 내내 열매를 달고 있는 것을 보게 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크로아티아에 오기 전부터 나는  이름이 주는 어감 때문인지 '크리스탈'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실제로 수정처럼 맑고 아름다운 자연경관이 세르비아와 보스니아를 거치면서 알게 된 크로아티아의 석연치 않았던 역사에 관한 궁금증마저도 잠시 덮어 버렸다.


그러던 중 자다르에서 한 한국 가족을 만났다. 회사원인 남편분이 영국 주재원으로 발령이 나서 틈만 나면 캠핑카로 유럽 곳곳을 누비고 있다고 했다. 주로 아이들이 자는 밤을 이용해 이동하고 낮에는 중요한 지점에서 여유 있게 즐긴다고 했다. 우리가 만난 곳은 낙조로 유명한 해변이었다. 넓은 대리석 계단에 설치된 파이프오르간에서  바람과 파도의 연주가 신비스럽고 매력적으로 들린다. 영화 속 한 장면에 들어가 있는 기분이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우리의 경로를 듣고는 세르비아가 위험한 곳이 아니냐며 놀란다. 그 놀라움에 나도 놀랐다. 세르비아는 어느 곳 보다 환대를 받은 나라였는데 위험한 나라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세르비아의 악행은 크게 보도되고 , 세르비아 못지않던 크로아티아의 악행은 전혀 많은 사람들이 알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누군가에 의해 나의 마음도 조종당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든 순간이었다. 세상을 왜곡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보기 위해서는 늘 '왜'라는 질문이 필요하다.


저녁노을이 시작될 무렵 지름 22미터의 커다란 원형 태양 집광기에 조명이 커진다. 그 위를 아이들이 신나게 뛰논다. 날이 흐리고 간간이 비까지 오지만 아이들은 여행보다 뛰노는 게 마냥 즐겁다. 우린 추워져서 저녁 놀을 포기하고 돌아왔다.


그런데 그 가족을 나중에 국립공원에서 또 우연히 만났다. 우리가 포기하고 돌아간 다음 날이 개고 아름다운 저녁놀을 볼 수 있었다고 한다.(유럽은 정말 날씨가 자주 바뀐다.)  그 가족은 아이들 덕분에 예쁜 노을을 선물로 받았고, 우연한 인연 덕분에 우린 사진으로나마 구경할 수 있었다.

오른쪽 넓은 계단을 파이프 오르간으로 만들어 파도와 바람이 연주하도록 만들었다.


발칸의 보석들

두부 로니크에서 세르비아 공격 당시 피해자였던 한 분을 만날 수 있었다. 중년과 노년 사이의 남자였는데 차가운 바다에서 수영을 하고 있었다. 당시의 피해로 몸과 마음이 망가져서 회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라고 했다. 바로 얼마 전의 비극이 지금도 생생한 현재 진행형임을 실감했다.  어린 시절 나의 가장 악몽은 전쟁터에서 엄마를 잃어버리는 꿈이었다. 내가 태어나기 훨씬 전이고, 직접 겪지 않았던 일이었는데도 오래도록 내 꿈을 지배했다. 그런데 그 전쟁을 몸소 보고 겪은 사람들은 얼마나 힘든 일생을 보내게 될까? 



전쟁은 누가 더 옳고 그르냐의 문제가 아니다. 전쟁은 모두를 피해자로 만든다. 전쟁을 부추기고, 혐오를 부추기는 메시지를 경계해야 한다. 특히 위험한 것이 민족주의 혹은 애국주의다. 나와 다른 존재를 차별적 존재로, 가치 없는 존재로, 없애야 할 존재로 만들어 버리기 십상이다. 그리고 이것이 '인종청소'의 명분이 되어왔다.

거리의 맥주 가게에서  오랜만에 호사를 누리기로 했다. 다양한 색깔의 맥주를 세트로 주문해서 마셔보는 것이다. 서로 다른 일곱 가지 빛과 향이 어우러져 보기만 해도 부자가 된 기분이 들었다. 우리는 한 모금씩 천천히 일곱 가지 맥주를 음미했다. 다르니까 더 재밌고 더 풍요로운 세상. 발칸의 나라들은 서로 다른 빛깔의 보석 들일지도 모른다. 그 서쪽  끄트머리에 있는 크로아티를 마지막으로 발칸의 아쉬운 여정을 마쳤다.

아무도 없는 작은 해안에서 고동과 소라를 채취해서 먹고,  저녁놀을 가울에 담은 풍경 속에서 잠이 들었다.


고운 바다 빛깔과 아름다운 도시가  예뻐서 관광객을 즐겁게 만든다.

크로아티아의 풍경들

잠을 깨자마자  나를  설레게 만들었던 아침노을들


작가의 이전글 내 재산은 무엇일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