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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미 탐험가 이숙경 Feb 13. 2022

부다페스트  여행 작전.

헝가리 여행을 책임진다고 큰소리를 쳐놓았지만 사정이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가장 중요한 날씨가 여행 내내 좋지 않을 거란 예보가 있었고, 모처럼 기대했던 길거리 음식은 최악이었다. 그래도 끝까지 여행을 성공시켜 보겠다고 최선을 다했고, 부다페스트 카드가 그걸 도와주었다.


2019년 4월 13일 토요일 부다페스트 여행 작전 1일 차

 


어제부터 부다페스트 여행이 시작되었지만  흐리고 비가 뿌리는 날씨여서 아쉬움이 많다. 예보에 따르면 내리 나흘간 좋지 않다. 구도심이 가까운 강변에 아주 좋은 곳에 정박을 하였기 때문에 광민에게  며칠 시내 구경을 하며 휴식한 뒤 여행을 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제시했으나 예상대로 광민이 반대했다.  아침에  시간을 조금이라도 늦춰보고자 노력했지만 나의 첫 번째 작전은 헛수고였고 결국 11시경에 길을 나섰다.

내가 알아본 대로 부다페스트 카드를 샀고  박물관부터 여행이 시작되었다. 1000년 경부터 시작된 역사를 펼쳐 놓았지만 왠지 허전한 느낌. 선사시대 유적도 조금 있었지만 터키 아나톨리아 박물관 이래로 우리는 감흥을 잃은 것 같다.


조금 싱겁게 박물관 여행을 마치고 점심을 먹으러 내가 어제 눈여겨봐 둔 길거리 식당으로 갔다. 소시지와 빵, 닭꼬치를 주문했는데 자그마치 7000 포린트, 20유로 이상( 우리 돈 28000원)이다. 시커먼 기름에 꼬치를 데워주는 장면은 끔찍했고 꼬치에 들어간 돼지고기엔 푸석하고 맛없는 비게까지. 최악이었다. 소시지는 순대에 가까운데 놀라울 정도로 맛이 없었다. 외식 작전도 실패. 두 번째 코스인 미술관 가는 길 식당 앞에  9유로짜리 점심 메뉴 입간판이 보인다. 속이 쓰리다. 헝가리에서 사과 1킬로에 800원 돼지고기 1킬로에 4000원인데  정식 식당도 아닌 곳에서  형편없는 음식을 바가지 썼다. (내 여행 경험을 통틀어서 가장 나쁜 음식이었다.)


미술관은 박물관보다 괜찮았다. 전시도 좋았지만 더 좋은 건 미술관 건물 자체였고 그 보다 더 좋았던 건 미술관 창문으로 바라다 보이는 전망이었다. 강과 다리, 아름다움을 뽐내는 중세 건물들이 서로 어우러져 어느 그림보다 멋진 풍경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림을 감상하러 온 많은 사람 중에 손자를 데리고 온 할아버지가 눈에 띄었다. 손자를 커다란 그림 앞에 세우고 이런저런 포즈를 요구하신다. 할아버지가 생각보다 빨리 자신과 헤어진다는 사실을 모르는 천진난만한 손자의 모습을 보며 애틋해진다. 우리 여행도 곧 추억의 장면이 될 거라 생각하니  내가 마치 영화 속 주인공이 된 기분이다.


나를 신비스런 상상 속으로 빠뜨렸던 풍경과 작품들

미술관에서 나와 광민은 바로 옆 궁전에 가자고 했다. 전시관을 두 곳 방문하느라 난 조금 지쳤고 하루라도 멋진 날씨의 부다페스트를 보고 싶다는 욕망을 포기하지 못한지라 내일 가면 안돼냐고 다시 한 번 틈새 공략. 그리고 이쯤 해서 24시간 이내 달성해야 할 '배 타기'를 시도해 봐야 할 것 같았다. 퍼블릭 페리 보트( 교통수단으로 쓰이는 배라 가격이 저럼하고 부다페스트 카드 안에 사용료가 포함되어있다.)가 주말에는 제외라는 어느 블로거의 말이 있어 물어보았지만 현지 여행안내하는 사람들도 잘 모른다. 하지만  사이트에서 오늘 날짜와 시간이 뜨는 것을 봐서는 가능성이 있다. 보트를 타고 야경을 보는 편이 멋있을 것 같은데 내일은 오전까지 밖에 시간이 남지 않기 때문에 어차피 매력이 떨어지니 무조건 시도해 봐야 한다.


그러나 광민은 가까운 궁전을 바로 옆에 두고 그냥 갈 수 없다며 배는 반드시 안타도 되는 것 아니냐고 한다. 세상에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이 그렇게 흔하지는 않다. 하지만 나는 24시간 티켓을 샀으면 반드시 그 안에 배를 타야 한다고 생각했다. 결국 시간 끌기 틈새 작전은 다시 실패하고 궁전을 구경하고 배를 타러 가기로 합의했다.


어부의 요새와 궁전은  언덕 위에 있고 가는 길에 간식거리를 파는 아저씨가 보인다. 맛있는 빵과 따끈한 커피가 비싸지 않은 가격이다.  우리가  딱 원했던 길거리 음식이다. 이럴 땐 예상치 못한 선물을 받는 기분이 든다. 언덕 위에 오르니 새로운 세상이 펼쳐진다. 동화 속의 한 장면 같았는데 알베르 벨로의 지붕이 생각나는 뾰족 지붕이 귀여웠다.


구경을 마치고 드디어 배를 타러 가기로 했다. 중간에 여행 안내원을 만나 장소 확인도 했으나  선착장이 썰렁하다.  잠시 후 배가 도착하긴 했으나 자신들의 배는 클로즈했다며 옆 선착장으로 가라고 한다. 나는 여행의 책임자답게 그 직원에게 다시 한번 장소를 확인하고 옆 선착장으로 갔다. 하지만  옆 선착장은 사용하지 않는 곳처럼 썰렁했을뿐더러 출입구에 자물쇠까지 채워져 있었다. 그 직원을 원망했지만 마침 보이는 국회의사당 건물이 배 타기 실패를 잊을 만큼 아름답다. 사진을 찍고  건물을 구경하다 돌아서 가는 길에 예쁜 모습을 다시 보려고  잠깐  뒤를 돌아보았는데 야경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나는 배 타기 대신 야경이라도 즐기자고  했으나 광민이 쌩하니 가버린다. 어두워서 별로 사진이 잘 안 나올 거라면서. 나는 좀 더 여유 있는 맘으로 여행하고 싶은데 광민은 언제나 야박하다. 속상한 맘이 되어 집으로 돌아가는 길. 우리가 처음에 왔던 선착장에 도착할 무렵 혹시나 하는 맘으로 발걸음을 멈추었다. 그런데 거짓말처럼 선착장으로 배가 들어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우리는 얼른 내려갔다. 선착장에는 몇 사람이 더 있었다. 카드를 보여주니 직원이 안쪽을 향하여 우리 얘기를 한다. 타도 좋다는 얘기가 들렸고 우리는 마법처럼 배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환상열차를 탄 기분으로 배애 오른 우리는  황홀한 야경에 흥분해서 사진을 찍느라 정신이 없었다. 어부의 요새도 국회의사당도 우리가 직접 다녀온 곳이라 그런지 더 잘 보인다. 그곳에서 보낸 시간들이 벌써 추억이 되어  더 예쁘게 보이는 것 같다.


영원할  같은 아름다운 순간이 지나고 배에서 내리니  앞이 우리 집이다. 풍경만 즐긴 것이 아니라 진짜 교통수단으로써의 배를 이용한 것이다. 결국 광민의 반대를 무릅쓰고 오늘 여행의 하이라이트를 내가 완성했다. 부다페스트 퍼불릭 페리 보트 타기는 여행  내가 세운 자랑스러운 업적 중의 하나가 되었다.


 4월 14일 일요일 부다페스트 여행 작전 2일 차

 

약효가 좋기로 유명한 루카치 온천은 부다페스트 카드로 무료 이용할  있는 곳이다. 도심을 조금 벗어나 있어서 아침 일찍 버스를 타고 다녀오기로 했다. 온천은 생각보다 깨끗하고  정돈된 호텔, 혹은 병원 같은 분위기였다. 프런트에 보이는 수많은 메뉴(?) 보다가 우리의 카드를 내밀며 무엇을 이용할  있냐고 물으니 모두 무료라고 한다. 우리는 우선 온천 시설들을 구경   수영복이 필요한 사우나와 수영장은 이용하지 않고  동네 사람들이 모인  같은 소박한 대중탕을 이용하기로 했다.


다양한 물 온도를 체험(32, 40, 24)하고 현지 할머니의 적극적 권유로 40도와 24도를 오가며 내 일생 처음으로 냉온욕을 했다. 발목부터 무릎, 허리까지 나중엔 현지 할머니의 반 강제적 도움을 받아 물속으로 들어갔다. 할머니가 내가 더 들어가도록 지그시 등을 밀어서 좀 무서웠지만  할머니가 놀라실까 봐 당황한 티를 안 내려고 노력했다. 몸에 전혀 무리가 없이 냉온욕이 가능하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처음 발목을 담글 때가 가장 힘들었고 마지막 입수 때는 왠지 두려웠다.


잠시 헤어졌던 광민과 만나 사자 입에서 나오는 온천물도 마셨는데 사람들이 패트 병에 담아 가는 모습에 불가리아가 다시 떠올랐다. 광민은 꺼림칙한지 아주 조금만 마셨다.

 

(이 온천을 포함하여 지금까지 8번의 온천을 한 뒤 우리는 드디어 헝가리의 마트에서 수영복을 구입하였다. 앞으로 날씨가 점점 따뜻해지니 수영복이 필요해질 것이라 예상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름엔 생각보다 물놀이를 많이 하지 않았다. 노르웨이 등 북유럽의 수온은 발을 담그기도 어려울 정도로 차가웠다.)


온천에서 돌아오는 길에 헝가리에서 가장 크다는 시립 공원에 들르기로 했다, 거기에는 혁명광장과 드라큘라 성을 따라 만들었다는 궁전과 호수 등이 있었다. 넓은 만큼  많은 단체관광객들이 있었다. 가끔씩 해가 나와서  예쁨 꽃들을 넣은 사진을 찍을 수 있어서 더 기분 좋은 산책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 가기 위해 내가 타기를 원했던 귀여운 1호선을   있었다. 120년이나된 지하철이 궁금했었다. 플랫폼 벽에 붙여놓은 거울  신기한 구경거리를 사진에 담는 나를 보고 제복에, 완장까지   사람이 다가와 굳은 표정으로  사진을 찍냐고 물어보았다. 깜짝 놀라 당황했는데 알고 보니 관리인 아저씨가 장난을  것이다. 놀라는  모습에 호탕하게 웃으며 자신의 완장을 벗어  팔에 끼워준다. 얼떨결에  재미있는  기억과 사진까지 남길  있게 되었다.



공원 구경을 마치고 나서 집에 오는 길 지하철 1호선을 한번 더 탈 수 있었다. 그러고도 카드 사용시간이 20분이나 남았다. 너무 뿌듯하다.


부다페스트 여행 성공 작전의 일등 공신은 뭐니뭐니해도 ‘부다페스트 카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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