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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미 탐험가 이숙경 Feb 11. 2022

어른의 책임.

영화 '라이언'을 두 번째 보고 나서

몇 년 전 비행기 안에서 우연히 보았던 영화’라이언’을 최근 친구가 카톡으로 공유해 주어서 다시 보게 되었다. 어릴 때  미아가 되어 호주로 입양되었던 아이가 청년이 되어 다시 꿈에 그리던 고향집과 가족을 만나게 되는 아름다운 이야기다. 인도는 한 해 8만 명 정도의 미아가 발생하고 있다고 하며 이 영화는 그런 미아들에게 작은 희망과 위로를 주고자 만들어졌다고 한다.


이 영화를 보고  머릿속에 남았던 강렬한 기억은 어린 주인공이 집으로 찾아올 수 있었던 기적 같은 똑똑함이었다. 그런데 두 번째로 보니 영화가 좀 더 선명하게 보였다. 처음보다 아동학대가 훨씬 많이 보였고, 심지어 아동 성착취를 암시하는 장면도 더욱 확실하게 보였다. 그러나 시간이 많이 지나 당시에 가장 감동적이었지만 잊었던  대사가 이번엔 나에게 깊은 질문을 던졌다.


그것은  주인공을 입양했던 어머니의 대사였다. "세상엔 사람들이 너무 많아. 우리가 아이를 낳는 것은 보탬이 되지 않는 다고 생각했어. 오히려 그 기회를 잃어버린 아이들에게 좋은 기회를 주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믿었지."


요즘 같은 인구 감소 시대에 '사람이 너무 많다'는 것은 맞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도시보다는 지방에 그중에서도 도시와 거리가 먼 면단위 이하의 지역에서는 인구 절멸의 위기감이 심각하다. 그러나 나는 주인공 양모의 대사에 깊이 공감한다. 아직도  세상엔  좋은 기회를 충분히 얻을 수 없는 아이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내가 살고 있는  면 주민센터에서  몇 달 전 작은 학교를  살리기 위한 주민 대토론회가 있었다. 우리 부부는 토론회에 참석하여 지역주민의 목소리를 들어보기로 했다. 지역아동센터에 다니면서 느꼈던 지역사회 교육의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를 찾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토론 전 대표 발제자의 내용은 대체로 만족스러웠고, 특히  쓰레기 처리 문제를 예로 들며 주민자치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대목은 나를 설레게까지 만들었다. 그러나  말미에 이웃 면의 초등학교에서 도시학생을 유치한 성공사례에 대해 설명하면서 주민들을 고무시키는 결론은 너무 실망스러웠다. 도시에서 전학 온 아이들이 많아진 것만으로 성공했다는 결론을 내는 것 자체가 너무 성급하며 비교육적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여러 팀으로 나누어 토론을 했는데 내가 속한 팀엔 지역의 선생님과 학부모들, 그리고 공동체 활동가 한 분이 함께 했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가장 중요한 당사자인 학부모와 선생님들은 아이들에게 일어날 부작용을 걱정했고 기존의 '도시 유학생 유치방안'을 사실상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그 이유로 들었던 한 사례는 '예전에 읍에 사는 몇 명의 뜻있는 학부모에 의해 작은 학교가 살아난 경우였다.  외부에서 오는 아이가 너무 많아지자 정작 원주민 아이가 적응을 못하고 결국 전학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작은 학교는 살아났는데 정작 그 지역에 사는 아이가  다니기 어려운 학교라니 얼마나 불합리한가! 정말 충격적이었다. 지금 그 학교는 세월이 흘러 처음의 뜻있는 부모들이 학교를 떠난 뒤로 다시 학생들이 적어지고 있다고도 했다.


이 사례는 지금 학교에 다니고 있는 아이들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준다. '학교'가 아니라 '학생'이 중심에 있어야 한다.  아이들과  학부모가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들어봐야 그들이 만족하는 학교가 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가까운 읍에서부터 우리 마을의 학교에 보내고자 하는 부모가 늘어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하지만 그때도 우리 원주민 아이들이 소외될 정도의 인원은 안된다고 했다.


학부모들과의 이야기를 통해 작은 학교를 살리기 위해서 그동안 아이들이 겪었던 이야기를 들었다. 아이들이  할머니들과 수업을 해야 했던 이야기며, 도시에서  아이들의 요구에 맞춰진 체험 프로그램에 대한 불만도 나왔다.  기초학력 성취도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면 성적에 목을  극성 학부모로 매도당하기 일쑤라고 했다. 작은 시골학교엔 경험이 부족한 젊은 선생들이 많이 오시는데 그나마도 군입대나 출산 등으로 자주 바뀌는 것이 기초학력에 많은 영향을 친다는 원인분석도 나왔다. 우리 면에는  개의 초등학교가 있는데 학생이  적은 학교는 셔틀버스가 제공되지 않아 인도가 제대로 없는 위험한 시골길을 걸어 다니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학교  거리가 가까움에도 불구하고 셔틀버스를 공유할  없다니 얼핏 이해가 가지 않는다. 읍에서 면단위 이하의 학교로 다니고자 하는 아이들에겐 무료 택시까지 제공하고, 도시에서 오는 아이들에겐 살집과 부모의 직업까지 제공해 준다고 하니. 왠지 박탈감과 역차별이 느껴진다.


학부모들과 선생님들은 아이들에게 좋은 학교를 만들어내기 위한 구체적인 아이디어들도 많았다. 아이디어뿐 아니라' 달빛 가족 운동회' 와같이 학부모들이 주체가 되어 실효를 거두고 있는 프로그램도 있었고, 없어졌지만 다시 하고 싶은 오케스트라에 대한 이야기도 나왔다. 작은  학교가 함께 연합할  있는  프로그램이고 졸업생도 자부심을 가지고 함께   있는 프로그램이라며 선생님과 학부모들이 신이 났었다. 이미 좋은 악기들을 갖추고 있어서 당장이라도 시작할  있다고 했다. 아이들이 학교에 오고 싶을 만큼 창의적이고 재밌는 놀이터를 만드는 방안도 나왔다.  


그러나 우리 팀의 이야기는 토론회에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못했다. 토론회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우리 팀의 의견은 작은 학교 살리기를 자신들의 방식으로 진행시키려는 대세(?)에 묻혀 버리고 말았다.


토론회가 끝날 무렵 다른 팀의  어떤 분이 잔뜩 고무되신 모습으로 도시에서 우리 마을의 학교로 오면 송아지  마리씩을 주겠다고 하셨다. 당연한  송아지를 받는 도시 아이들을 바라보는 우리 지역 아이들의 모습이 떠오르자  나도 모르게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도시 아이들에게도 우리 아이들에게도 교육적이지 않다.


토론회가 끝나고 그분에게 다가가서 그러면  송아지는 지금 우리 마을에 사는 아이들에게 먼저 주시면 좋지 않을까요?라고 물었다. ㅇㅇ면에 사는 아이들은 송아지  마리씩은 가지고 있다는  알려지면 여기 아이들도 자랑스러워할 테고 우리 면으로 오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아질  같은데요. 멋쩍은 미소를 짓는 그분을 뒤로하고 씁쓸하게 토론회장을 나왔다.


그다음 날 면 밴드에 올라온 사진과  기사가 더욱 씁쓸했다.  학부모들이나 선생님들은 자신들과 전혀 상관이 없는 토론회의 주인공으로 연출되었다. 토론회가 끝나고 사진을 찍을 때 진행자는 학부모가 가장 중요하다며 맨 앞, 그중에서도 가운데 자리에 있어야 한다고 했던 것이 기억났다. 그러나 이 토론회는 처음부터 학교의 주인공들 의견엔 관심이 없었다. 단지 작은 학교 살리기 공모사업에 선정되기 위해 치러진 절차였을 뿐이었다.


토론회를 주도하던 사람들은 왜 우리 마을 아이들이나 학부모의 이야기엔 관심이 없을까? 아니 그보다  사회자의 말대로 토론회의 주인공은 학부모들인데, 왜 학부모들이 토론회를 주도하지 못했을까? 그들은 한창 생업으로 바쁘기 때문일까?  마을의 유지분들은 이미 아이들이 장성해서 학교와 관계가 없고, 면사무소 직원들이나 학교 선생님들 조차 읍이 생활권인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들은 자신의 재임 시절을 빛내 줄 결과물만 필요한 사람들일지도 모른다. 그들의 일자리를 위해,혹은 편의를 위해 아이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마저 든다.


나는 작은 학교를 살리기 위해 도시에서 새로운 아이들을 데려오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답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라이언의 양부모가 자신들의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는 대신 라이언을 선택하고 돌봤듯이  우리 어른들은 새로운 도시의 아이들을 받아들이기 위한 노력에 앞서 지역의 아이들이 좋은 기회를 가질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고 노력해야 한다. 사라질 학교만 걱정할 것이 아니라 거기에 다니고 있는 아이들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 이 지역에 살고 있는 아이들에게, 학부모에게, 선생님에게  먼저 관심을 가지고 귀를 기울이는 것이 순서다.


그래도 토론회에서 학부모 분들이나 선생님들을 통해 희망을 볼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외지인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지만 그분들을 열심히 응원하고 싶다. 어쩌면 그것이 이 글을 쓰는 이유인지도 모르겠다.


'아이들이  보다 좋은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  남은 인생 동안 잊지 않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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