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2일 토요일
난 유독 잠이 많다. 어릴 적 우리 아버지 하시는 말씀이
"세상엔 왜 잠 대회가 없을까?, 았다면 우리 숙경이가 1등 할 텐데.."
아버지는 전 날 술을 많이 드셨어도 언제나 새벽 4시에 일어나서 공원에 가셨다. 아무도 없는 공원에서 김구 선생님과 독립 열사들께 참배를 하시고 운동을 마치신 후 집으로 돌아오시면 우리 5남매는 아버지를 따라 공원에 가야 했다. 그 당시 이불속에서 나오기 싫었던 기억이 몇 십 년이 지나도록 생생하게 남아있다.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나의 무의식에서 반복되었는지도 모른다.
덕분에 나는 아이들을 깨우지 않는 엄마가 되었다. 학교 선생에게 욕을 먹으면서도 나의 트라우마가 아이들의 잠잘 권리를 지켜주는 엄마로 만들었다. 학교 선생님께 항의 전화를 받는 경우도 있었지만 결국 자기 스스로 기꺼이 일어나는 아이들로 키웠다.
그런 내가 새벽을 내 인생 가장 가운데로 가져오겠다고 결심할 수 있게 된 건 내 나이 덕분이다.
나이를 먹으면서 밤에 몇 번씩 깨는 일이 잦아졌다. 남들은 그게 불편하다는데, 나는 더 잘 수 있는 보너스를 받기분으로 다시 잠을 청하곤 했다. 나를 깨울 아버지도 안 계시고 일찍 출근할 직장도 없으니까.
하지만 오늘부터 나는 새벽에 이불속에서 나오기로 했다. 이제 아버지의 굴레를 벗어날 때도 되었고, 피곤하면 낮잠을 잘 수 있는 여유도 있다. 그보다 가장 중요한 이유는 내가 글 쓸 시간을 가지고 싶기 때문이다. 글을 쓰지 않으면 마음 한 구석이 허전하고, 하루하루가 의미 없이 사라져 버리는 것만 같은 조바심이 든다. 그리고 무엇보다 글을 쓰면 머리가 맑아지고 마음이 편안해지며 뿌듯해진다. 내 마음이 좀 더 명확하게 잘 보이기 때문이다.
해남에 내려온 지 5년이 지나자 이제 봄이 오면 무슨 일을 해야 될지 알게 되었다. 지역 아동센터 아이들 가르치는 일에다 지난해부터 맡게 된 부녀회장일도 나에겐 과분하다. 성격만 급하고 마음만 앞서서 우물쭈물하는 사이 하루가 쏜 살처럼 가버리고 말 것이다.
글을 쓰다 시계를 보니 4시다. 1등을 좋아하시던 아버지가 누구보다 먼저 공원에 가시던 시간이다. 아버지가 아무도 없는 공원에서 누리시던 그 행복을 이제야 좀 알 것 같다.
새벽을 사용해 보니 시간이 뜻밖에 천천히 간다.
새벽에 2시 조금 전에 일어나서 간단히 스트레칭 좀 하고, 따뜻한 물도 마시고, 세수도 하고, 책도 읽고,
내가 가장 하고 싶은 글도 썼다.
오늘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삶이 시작되는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