험난한 스위스 도로와 스위스 여성의 참정권은 관계가 있을까?
스위스 둘째 날부터 시작된 모험
베른 호수에서 평화롭게 별이님네와 헤어진 지 불과 바로 몇 분 후에 우리는 믿기 어려운 낭떠러지 길을 만났다. 나는 공포 속에서 우리의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장면을 비디오로 찍으며 기록했다. 이렇게 아름다운 경치 속에서 지옥 같은 아찔한 공포를 겪으니 입에서는 연신 신들을 향한 기도가 나온다. 돈을 아끼느라 고속도로 패스를 사지 않았던 것을 마음껏 후회하며, 한 번만 기회를 주신다면 바로 사겠다고 내가 아는 모든 신께 약속드렸다. 그러나 점점 더 좁고 험한 길이 계속되고 이제는 돌아갈 수 조차 없는 길에 들어서자 오히려 지금 이 순간까지의 나의 인생을 감사히 여기는 담담한 마음이 생기기도 했다. 이 풍경 속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죽는다 해도 억울할 것 없다며 오히려 지금 살아 있는 이 마지막 순간을 즐기자고 마음먹으려 애썼다,
그렇게 천국과 지옥을 오가며 천신만고 끝에 고속도로로 이어지는 길까지 나왔으나 숨을 고를 여유도 없이 더 큰 난관이 우리 앞을 가로막았다. 길은 단 하나인데 고속도로로 진입하는 길목에 작은 굴다리가 떡 버티고 있는 것이다. 굴다리엔 높이도 표시돼 있지 않았다. 만일 우리 차가 조금이라도 높아 통과할 수 없다면 차를 돌릴 공간조차 없는 이곳에서 지금까지 지나온 아슬아슬한 절벽길을 후진으로 가야 한다. 목숨이 살아난 것만도 다행으로 여기며 차를 버리고 가는 편이 나을 수도 있는 상황이다.
절벽 끝에서 만난 천사
절벽을 지나느라 몸과 마음이 지칠 대로 지친 우리는 이 난감한 장벽 앞에서 속수무책이었다. 바로 그때 우리 앞에 또 천사가 나타났다. 고속도로에 마침 공사가 있어서 일을 하던 인부 중 한 명이었다. 사실 그 순간 우리는 도움을 받는 다기 보다 누군가 우리를 발견해 준 것만으로도 감사했다. 그는 영어가 서툴렀으나 우리 상황을 아주 잘 이해했다. 그리고 바로 자를 가지고 와서 높이를 재 주겠다고 했다. 너무도 감사하게 아주 아슬아슬한 차이로 우리 차가 지나갈 수 있는 높이였다. 그는 우리 차가 굴다리를 안전하게 빠져나올 수 있도록 차를 유도하며 도와주었다. 잠시 사이에 그는 우리의 은인이 되었다. 여행 중에는 어쩔 수 없이 위기를 만나고 신기하게도 그때마다 어김없이 천사가 나타난다. 그들은 자신이 천사인 줄도 모르지만 그들을 만난 사람은 확실히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순간을 기억할 때마다 마음이 따뜻해진다. 여행에서 만난 어떤 아름다운 경치도 그만큼 나의 마음을 지속적으로 황홀하게 만들어 주지는 못한다.
고속도로로 나와서 우리는 바로 고속도로 티켓을 샀다.( 스위스는 고속도로 티켓을 1년 단위로 팔기 때문에 잠시 방문하는 외국인한테는 너무 부담스럽다.) 그렇다고 스위스의 절벽 길이 우리에게 끝난 것이 아니었다. 고속도로는 갑자기 끊기고 절벽길이 나오기 일쑤였다. 그런 험난한 길을 커다란 트럭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다닌다.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에서 며칠 묵었을 때도 커다란 마을버스가 산꼭대기 꼬불꼬불한 길을 거침없이 다니는 것을 보며 신기했는데 스위스는 한 술 더 뜬다. 우리는 대롱대롱 매달리는 것같이 아찔한 급경사를 오르기도 하고 절벽같이 가파른 길을 내려오다가 타이어가 타서 연기가 나기도 했다. 게다가 스위스에 들어갈 때 절정에 이르렀던 가을은 산꼭대기에서 느닷없이 한겨울이 되기도 했다. 계절도 길도 아슬아슬한 순간들이 스위스를 나올 때까지 계속 이어졌다.
여행기를 쓰다가 갑자기 드는 엉뚱한 생각
스위스는 1971년에 이르러서야 유럽에서 가장 늦게 여성에게 투표권이 주어졌는데 혹시 이 험난한 자연환경과도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닐까?
이 질문에 문득 내 '스위스의 용병'이 떠올랐다. 유럽 최강을 자랑하고 지금도 교황청의 근위대를 맡고 있는 스위스 용병들이 다른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칠 수 있는 까닭이 항상 궁금했었다. 스위스의 험난한 길을 떠올리며 관련된 자료들을 읽다보니 조금씩 의문이 풀리기 시작한다. 용병은 단순한 돈벌이가 아니었다. 국토의 대부분이 험준한 산지여서 가난한 데다 군사적 요충지라는 지리적 요건으로 주변의 끊임없는 침입을 받던 스위스에서 용병은 그들의 살 길이었다. 자신의 용맹과 헌신, 신뢰와 충성심은 그들 공동체가 공유한 자산이었다. 가족과 이웃 그리고 후세의 목숨이 걸린 문제였다. 공동체를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칠 수 있었던 스위스 용병들의 심정이 이제야 이해된다.
*너무 많은 것을 바쳐야 했던 남성들의 보상심리가 여성 차별의 역사를 더 길게 만들었을지도 모른다는 추론은 지나친 걸까?
*그리고 한 가지 더 스위스의 여성 참정권의 역사를 알 수 있는 '거룩한 분노'라는 영화도 알게 되었다. 오늘 저녁에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