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온천 체험기

여행을 하는 동안 확신하게 된 것이 있다면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확실히 알고 있다면 그것은 대부분 꼭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가 여행을 하면서 얻은 대부분의 것들은 꼭 필요한 순간에 거짓말처럼 나타났다. 그렇다 해도 스위스에서의 온천은 꿈꿔보지 않았었다. 너무도 물가가 비싸기로 유명한 나라이기 때문이다.


러시아 횡단을 할 때는 대부분 차로 이동하는 시간이 길어서 다리에 무리가 온 적이 없었는데 발트 삼 국을 지나는 동안 내 저질 체력, 그중에서도 오른쪽 발목이 심각하게 아파오기 시작했다. 오스트리아 할슈타트는 치유 온천으로 유명했고 마침 여행 날짜에 결혼기념일이 들어 있어서 핑계 김에 온천을 하고 싶었지만 1인당 비용이 너무 비쌌다. 차라리 그 돈이면 욕조 있는 호텔에 숙박하면서 푹 쉬는 편이 났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웬일인지 욕조 있는 호텔을 검색하는 것이 어려웠고, 오스트리아는 캠핑카의 편의 시설이 잘 갖춰져 있어서 우리 집 아톰을 전망 좋은 호텔로 만들곤 했다. 결국 족욕 정도로 만족하며 온천여행은 점점 더 우리와 먼 얘기가 되어갔다..


그런 이유로 우리가 가는 지역에 스위스에서 유명한 온천이 있다고 했을 때도 별로 귀담아듣지 않았다. 저녁이 다 돼가는데 정박지를 찾지 못하며 남편이 같은 자리를 몇 번 도는 것 같다. 남편이 찾던 대형 리조트는 포도밭 사이 작은 길 속에 숨어 있어서 찾기가 힘들었다. 큰길을 멀리 벗어나 있어서 아주 조용한 데다 광활한 주차장에 제법 많은 캠핑카가들이 있었고 호텔 앞 쪽에 일반차들이 많아 보였다. 멀리 보이는 호텔 문에 사람들이 드나드는 모습도 보인다. 비수기인데도 이런 곳이 있다니 꾀 유명한 곳인가 보다 생각하며 바람님과 탐색에 나섰다.


지금까지 호텔을 이용하지 않으면서 온천만 할 수 있는 호텔은 만나보지 못해서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여기는 대형 온천장을 따로 운영하고 있는 호텔이었다. 수영복 판매점을 비롯해 온천장 입장을 도와주는 접수대가 있었다. 팸플릿을 가져와서 보니 6시 이후 일이 끝나고 오는 직장인을 위하여 할인해 주는 프로그램도 있었다. 가격도 할슈타트보다 저렴하다. 사실 할슈타트에서 온천을 못한 이유 중의 하나는 가격의 부담도 있었지만 우리의 여행길에서 좀 벗어나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런데 여기는 바로 온천 장 앞이다.


망설이는 바람님을 설득했다. 새로운 문화체험이기도 하고, 이제 여행으로 쌓인 피로도 풀어야 할 때가 된 것이다. 우리는 둘 다 수영복이 없긴 하지만 여행자 아닌가. 수영복 대용으로 반바지와 티셔츠를 입기로 했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나 혼자 들어가기엔 용기 내기가 힘들다. 이때 우리의 여행친구 별이님네가 도착했다. 별이님은 외국 생활을 오래 하셔서 이런 낯선 곳에 익숙하시다. 나의 제안에 바로 오우케이! 하지만 조 선생님은 끝내 가지 않겠다고 하셨다. 결국 셋만 들어가기로.


안으로 들어가니 거울과 헤어드라이기들을 갖춘 화장대들이 있고 한쪽에 커튼으로 둘러진 1인용 탈의실들이 줄지어 있다. 들어가 신발을 벗고 수영복을 갈아입고 반대편으로 나오면 락커가 있어 물건을 넣어두는데 남자들도 한 공간에 있어 당황스럽다. 그다음 샤워실로 가서 샤워를 하고 수영장으로 들어간다.


수영장 밖에 야외 온천장에서 바람님을 만나기로 했으나 젖은 머리가 춥다. 온천이 약간 따뜻하거나 미지근한 정도라서 몸이 더워지지 않는다.


친구들과 캐나다의 벤프로 여행 갔을 때 작은 리조트의 야외 온천장에서 따뜻한 물속에서 비를 맞기도 하고 별을 바라보기도 했었다. 그런 낭만을 남편과도 나누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머리를 먼저 젹셔놓은 바람에 밖으로 나갈 엄두가 안 난다. 발목 치료 때문에 왔는데 잘못해서 감기라도 걸리면 낭패다. 결국 꼼짝없이 실내 온천만 하게 되었다.


멀리 바람님은 벌써 온천을 마치고 나가는 모습이 보인다. 우리가 어떻게 하기로 한 온천인데 금세 나가버리는 남편 덕분에 나의 '온천 낭만'더욱 허무하게 끝나버리는 느낌이다.

이게 아닌데......


그런데 풀장 끝에 사람들이 줄지어 있고 반짝반짝 불빛이 보인다. 알고 보니 그곳은 종류별로 마사지를 할 수 있게 만들어진 곳이고 사람들이 차례로 옆으로 가면서 공평하게 마사지를 받는 것이다. 이런 규칙을 모르고 있는 데다 옆으로 가면 계속 깊어지는 물이 무서워 자꾸 다른 사람에게 양보를 하며 한 자리를 지키고 있는 나에게 어떤 노신사가 설명을 한다. 그런데 영어도 아니다. 답답한지 손가락으로 맞은편을 가리키며 말을 하는데 정확한 노신사의 발음과 일치하는 단어가 보인다.


어밴던스(내 기억에는 AVENDENCE 였던 것 같은데 스펠링은 정확히 기억이 안 난다.) 그것은 아치형으로 된 네온사인 간판이었고 불빛이 바뀌는 것을 신호로 사람들이 움직인다. 다른 사람들이 미처 불빛에 신경을 못쓰기라도 하면 심지어 사람들이 합창으로 그 단어를 말하기도 한다. 신기하게도 그것을 알기 전까진 그 소리조차 듣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는 만큼 보이고 아는 만큼 들린다를 다시 한번 실감했다.


문제는 내가 계속 옆으로 가는 것은 무리라는 것이다. 물이 무서워서 지레 숨이 안 쉬어지기 때문이다. 대학 때 억지로 수영을 해서 학점도 받았지만 다시 물이 무서워진 나는 내 발이 닿지 않는 곳에서는 공포가 너무 커진다. 하지만 아까 그 엄격한 노인은 내가 다시 거꾸로 가는 것을 규칙에 어긋난다며 용납해 주지 않는다. 대신 나를 풀 장 밖으로 나가게 도와주었다.


바로 그곳을 나오고 싶었지만 별이님이 이 물 마사지를 너무 좋아하셨고 나도 오른쪽 다리를 좀 더 회복시켜야 한다는 생각에 다시 용기를 내어 2차로 도전해 보았다. 별이님이 용기를 주셨고 우리 앞에 레이스를 나누는 줄이 있어서 그 줄을 잡고 조금만 둥둥 떠서 걸어가면 다시 내 발이 닿을 수 있는 곳에 갈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도전해 보기로 한 것이다. 잠시 계산을 해보니 당황하지만 않는다면 숨을 쉬지 않고도 충분히 버틸 수 있는 시간이다.


아무것도 아니지만 밖으로 바로 나갈 수 있는 벽을 잡고 걷는 일과 그곳에서 떨어져 물속에 있는 줄을 잡는다는 것은 깊은 물 한가운데로 가는 두려움을 극복해야 하는 일이었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깊은 숨을 쉰 후 줄을 잡으러 벽에서 손을 떼었다. 그리고 한 발 한 발 앞으로 나가 드디어 무사히 발이 닿는 곳에 도착하였다. (주변에 자유자재로 수영하는 사람들이 보이고, 어디에도 나 같은 겁쟁이는 없을 것 같다는 창피함에 더욱 용기를 낼 수 있었다.) 그리고 이 모험을 한 번 더 하였다.


그 사이에도 별이님의 물사랑은 끝날 줄 모르고 점점 더 황홀경으로 빠지시는 모습이다. 하지만 나는 이미 온갖 의지를 사용한 터라 기진맥진해져서 먼저 샤워장으로 갔다. 따뜻한 샤워를 하고 나니 이제야 살 것 같다.

내 오른쪽 발목은 힐링이 되었을지 모르지만 내 온몸과 정신은 전쟁을 치렀다.


온천장을 나와서도 어밴던스라는 단어는 계속 머리에 박혀 있다. 일생동안 잊지 못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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