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비아에서 쓰는 밀라노 일기
2018년 11월 17일 토요일
파비아에서 쓰는 밀라노 일기.
지금은 파비아, 난 방금 주말 마켓에서 산 2유로짜리 예쁜 니트를 두르고 일기를 쓰는 중이다. 시장엔 이민자로 보이는 장사꾼이 많이 보였는데 오스트리아를 시작으로 보이던 비참한 이민자 모습들 중 처음으로 제법 자리를 잡은 이민자들을 만나 기분이 좋다. 그들에게서 아주 마음에 드는 옷을 골랐다. 둘 다 상태가 좋은 게 새 것 같다. 게다가 이태리 제품이다. 우리도 이제 이태리 패션이다. 광민은 피곤한지 쿨쿨 자고 있다. 광민이 쉬는 시간이 나 혼자만의 자유시간이다.
금요일 아침 차에서 일기를 쓰고 바로 밀라노 시내에 갔었다. 두오모 대성당 앞에서는 입이 딱 벌어졌다. 화려함의 극치. 성당 둘레를 촘촘히 장식한 섬세하고 아름다운 첨탑들을 보고 웨딩드레스의 레이스가 떠올랐다. 파란 하늘이 바탕색이 되어 부드러운 대리석 건물과 장식들이 더욱 빛났다. 하지만 안에 들어가지는 않았다. 한 번에 입장할 수 있는 인원에 제한이 있어서 줄이 너무 길었고, 긴 줄을 서는 건 광민과 내가 별로 좋아하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아름다운 걸작을 되도록 편안하게 오랫동안 즐기고 싶었다.
광민에게도 늘 얘기하지만 '산이 아무리 멋있어도 그 안에서는 산이 보이지 않는 법.'
두오모 성당이 내려다 보이는 곳으로 이동했는데 수녀님들의 모습도 많이 눈에 띄었다. 나처럼 성당을 밖에서 감상하기로 하셨나 보다. 커다란 성당에 대한 반감이 있는 나지만(친구들과 처음 유럽 여행을 하며 너무 한꺼번에 많은 성당들을 보며, 그 건물을 짓기 위해 희생당하고 착취당했을 사람들이 떠올랐었다. 특히나 큰 성당일수록 푸근하고 성스럽기보다는 위압감이 느껴졌다.) 아름다운 성당의 레이스들이 나의 발을 붙잡는다.
우리는 야경이 켜진 뒤에 다시 감상하러 오기로 하고 두오모 성당을 대신하여 산 주세페 성당에 들어갔다. 조용한 시간을 보내며 쉬기에 참 좋은 곳이다. 잠시 후 흑인 청년과 백인 아가씨 둘이 들어와 촛불을 켜고 기도를 한다. 예쁜 두 젊은이를 위한 축복의 기운이 가득 차오른다. 그리고 다시 그 기운을 받아 밀라노의 거리 구경에 나섰다.
한쪽에선 축구 강국답게 음악에 맞춰 축구 묘기를 하는 남자가 있고, 다른 쪽에선 속옷 패션모델이 화보 촬영을 하는 여자가 있다. 내가 진짜 밀라노에 왔다는 것이 실감된다. 그들의 열정이 나에게 옮겨졌는지 발걸음이 더 가벼워지고 흥이 난다.
그리고 맘에 드는 작은 식당을 찾아 들어갔다. 러시아에서부터 익숙해진 자율식당이다. 이런 곳을 카페라고 부른다.(우린 주로 커피나 차를 파는 곳을 말하는데) 이런 가게들이 은근히 맛있고, 가격도 착한 편이다. 관광지라 외국인들도 많지만 주로 내국인들 단골이 더 많이 이용하는 곳을 찾아내면 그 나라의 전통요리를 맛볼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내국인 단골인 줄 어떻게 아냐고? 분위기상 짐작이 간다. 처음 온 사람이나, 처음 요리를 먹어보는 사람은 티가 난다.( 앞에 있는 요리를 신기하게 바라보는 눈빛, 한 입 먹을 설레는 표정이 내 눈에 느린 촬영 장면처럼 보인다. 그리고 그 모습은 곧 내 모습이기도 하다.)
요리 중에 새로워 보이면서도 맛있는 걸 찾는 시간, 이것이 가장 재밌으면서도 어려운 시간이다. 오늘 고른 요리는 열량면에서는 최우수이나 많이 짰다. 물을 들이켜느라 힘들었지만 여행 에너지는 충분히 저장하고 나왔다.
다음은 브레라 미술관에 갔었는데 처음엔 입구를 헷갈려서 아카데미를 헤매고 다녔다. 입구가 바깥쪽에 있는 것도 아니고 아카데미 안 쪽 건물의 2층에 있으니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건물 입구와는 너무 거리가 멀었다. 작품 수나 규모는 러시아 상트의 미술관과 비교할 수 없지만 그림을 전시하는 기술이나 방법이 더 나은 것 같았다. 러시아는 대부분 자연조명이라 그림자가 지거나 유리에 햇빛이 반사돼서 그림을 제대로 감상하기 힘든 경우가 있었는데, 브레라에서는 배경 색감이나 조명이 그림을 더욱 빛나고 생생하게 살려주었다. 미술에 둘 다 문외한이지만 그림이 그려진 당시의 역사적 배경을 바탕으로 우리끼리 멋대로 상상하고 해석해보며 마음껏 즐겼다. (여행이 지속되면서 점점 내가 학교에서 배웠던, 누군가 틀 지워 놓았던 베일이 아주 조금씩 벗겨지는 느낌이다.)
미술관을 나와 조금 걸으니 넓은 공원이 나오고 커다란 성으로 이어진다. 그 성을 지나니 이번엔 개선문이 나온다. 이태리는 발길 닿는 데로 다녀도 아무데서나 멋진 장면을 만날 수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이렇게 멋진 장면 속에 우리를 따라다니는 무거운 현실이 있었다. 여기저기 보이는 호객꾼들. 그들은 성 안으로 들어가는 우리에게 팔찌를 권하기도 하고 개선문을 감상하며 공원에 앉아있을 때 장미꽃을 들고 오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는 팔찌도 장미꽃도 사지 못했다. 특히 장미꽃을 파는 사람들이 딱했다. 나중에 팔 수도 없는 장미꽃을 내가 지켜보는 동안 한 송이도 팔지 못했다. 시들어가는 장미꽃을 보며 안타까운 마음이 들면서도 어쩔 수가 없었다. (근본적인 도움이 되지 못하는 개인적인 자선에 대해 난 회의적이다.) 그들이 빨리 안정된 삶을 살 수 있는 길이 열리길 바라는 수밖에...
여기저기 쏘다니다 다리가 지치면 트램을 타면 된다. 일일 자유이용권이 4.5유로라서 교통비 걱정 없이 마음껏 다닐 수 있다. 우리는 트램을 이용해서 다시 한번 두오모의 야경을 감상하고 집으로 향했다.
그런데 트램을 반대로 탔다며 광민이 내려야 한다고 했다. 난 차라리 잘 됐다며 반대쪽 거리도 구경삼아 가자고 했다. 그러나 몇 정거장 가자 거리가 점점 외져지는 분위기라 내려서 다시 트램을 타기로 했다. 그때 메트로 표시가 눈에 띄어 지하철로 가는 건 어떠냐고 광민에게 물었다가 철없는 초등학생 취급을 당했다. 아직 여섯 시 전이었고 강력한 열량이 뱃속에 가득 남아 있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에 문제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광민이 아주 예민하게 반응한다. 마치 잔소리꾼 꼰대처럼.. 광민은 나에게 철없는 찌질이라고 했다.
꼰대와 찌질이 참 잘 어울리는 한쌍이다.
저녁에는 별이님 내외 분에게 미역국과 과일주, 와인을 대접하며 또 한 번의 만남과 이별식을 동시에 가졌다.
러시아에서부터 만났다 헤어지길 벌써 몇 차례. 그러나 이젠 여행이 끝나고 한국에 돌아가서야 만날 것 같다. 지금부터의 여행루트가 정 반대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터키에서 겨울을 나기 위해 남진을 하고 두 분은 영국에서 겨울을 나신다고 한다. 사실 우리는 오늘 하루 종일 가벼운 옷차림으로 다녔는데 별이님은 패딩에 에스키모 모자가 달린 외투까지 입으시고 춥다고 하시면서 북쪽에 있는 영국이나 아일랜드에서 겨울을 나신다고 하니 참 걱정이 된다. 우리 여행의 은인 별이님 부부가 건강하고 행복한 여행 일정을 마치시길 빈다.
(두 분은 다시 북쪽으로 향하시다가 추위 때문에 결국 영국을 포기하고 우리가 권유해 드렸던 모로코에서 겨울을 나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