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바비 덕분에 만든 수세미 요리

마을에서도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일곱 평짜리 우리 집은 평소에도 센 바람이 많이 분다. 올해 들어 가장 큰 바람이 분다고 하자 마을 어른들 모두 우리 집이 날아갈까 봐 걱정해 주신다. 평소에 바람이 많이 부는 날엔 캠핑카를 집 앞에 바람막이로 사용했지만 이번엔 차가 높아 넘어질까 봐 집 아랫마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저녁엔 늦게 까지 영화를 보며 시시각각 세지는 바람소리를 잊으려고 노력했다.


어제 밤늦게 까지 요란하던 바람 소리는 새벽부턴 아주 조용한 풀벌레 소리에 묻혀버렸다.

어제 태풍에도 마당 한가운데 혼자 피었던 가녀린 작은 꽃은 아직도 당당히 서있다. 며칠 만에 비를 맞아서인지 꽃 빛깔이 더 선명하다. 키 크고 가지가 무거운 꽃들은 거의 다 스러졌다. 어제 가지에 달렸던 수세미들도 궁금해서 가보니 가장 굵은 놈 하나만 떨어졌다.


xJqJohVGTOCr2C2HHcR8SA.jpg
es3E1swvT7GwdDfLbsn7kw.jpg
cLASALrrSRm23geWMRDFuA.jpg
태풍에 작고 가녀린 것은 살아남고 키크고 굵은 놈들은 스러지고 떨어졌다.

그래도 수세미는 크기에 비해 가벼워서인지 조금 금이 갔을 뿐 멋진 자태가 그대로다. 이 놈을 어쩐다? 난 아직 수세미에 대해 연구해 놓은 것이 없다. 사진으로라도 찍어 놓을 생각으로 가져와 광민에게 보여주니 느닷없이 금이 간 쪽을 톡 자른다. 난 아직 연구도 안 했는데 왜 자르냐고 했더니 썩은 줄 알았다고 한다.


그때 마침 토끼가 마당 한가운데로 와서 풀을 뜯어먹는다. 풀이 잔뜩 나있는 곳을 놔두고 먹을 곳도 별로 없는 마당 한가운데로 오는 것이 우리의 관심을 받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옆집 친구네서 먹이나 물을 주니 먹더라는 말이 생각나서 수세미 한 조각을 던져주었다. 처음에 흠짓 하더니 다가와서 먹기 시작한다. 얼마 먹더니 맛이 없는지 더 이상 안 먹는다. 토끼는 맛있는 건 끝까지 다 먹는 놈이다.


zqLzvqVYSve3H9gsDXLchg.jpg
%4ZqvtlrQwy3rHo1YHbcjQ.jpg
46dF6+X8R1edSFhSbVwOyA.jpg
어제까지 낯설었던 수세미로 오늘은 요리를 하고 피부관리 하겠다고 껍질까지 사용하게 될 줄이야.


역시 수세미는 맛이 없구나. 그러니 사람들이 먹지 않고 수세미로 사용했겠지. 설탕을 듬뿍 넣어 효소를 만들면 기관지, 비염 , 천식에 좋고 당뇨나 고혈압에도 약으로 쓴다는 말을 들었지만, 내가 관심을 두는 것은 약이 아닌 음식이다. 그런데 토끼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모습을 보니 왠지 나도 흥미가 떨어진다.


그래도 잘라진 채로 싱싱한 냄새를 풍기는 수세미를 그냥 버리기는 죄스러웠다. 인터넷으로 수세미 요리에 대해 검색해 보니 사포닌 성분이 풍부하고 기름기를 잘 흡수하는 성분이 있어 닭백숙에도 사용하고 어린것은 볶음이나 무침으로도 먹을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자세한 요리법은 나와있지 않았다. 그래도 아주 유용한 정보가 있었다. 요리를 할 땐 씨를 따로 제거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는 것이다.(난 간단하면서도 버리지 않는 요리법을 좋아한다.)

내가 사용할 수세미는 좀 굵어서 요리가 될까 의심스럽고 씨앗이 너무 커서 진짜 그대로 요리를 해도 되는지 걱정되었지만 그냥 한 번 해보기로 했다.


수세미 볶음 만들기

수세미 껍질을 벗기고 반을 갈라 반달 썰기로 썰어 저절로 떨어진 큰 씨앗들은 좀 버렸다.

수분이 많으므로 기름을 넣지 않고 센 불에 좀 볶다가

지글지글 소리가 나고 수세미에 물기가 생기며 익어갈 무렵에

작은 버터 조각을 넣고 뒤적 쥐적.

그리고 간장과 매실을 섞어놓은 소스를 한 수저 투하하고 잠깐 뒤적이며

불을 끈 뒤 소금, 후추 조금씩 솔솔.


걱정되었던 씨앗을 먹어보니 의외로 부드럽고 씹히는 맛이 괜찮다. 부드러운 젤리 같은 식감의 수세미도 매력적이다. 버터, 간장, 매실 소스와 아주 잘 어울린다, 큰 거 한 개를 볶았는데 양이 생각보다 적은 것도 좋았다.(요즘 더운 날씨에 야채들이 빨리 자라니 냉장고에 요리할 재료가 줄을 서있다.) 요리된 소스의 감칠맛이 볶음밥 요리를 생각나게 만든다.


그래서 수세미 볶음밥을 만들기로 했다.

삶은 감자 한 개와 양파 반개 절게 썰어서 코코넛 오일 한 술 넣어 볶다가

(미리 삶아놓은 감자를 사용하면 요리 시간과 전기를 많이 절약할 수 있다.)

볶아놓은 수세미 넣고

거기에 다시 달걀 하나와 밥 한 공기 넣고 1분쯤 볶다가

다시 간장 매실 소스 한 스푼과 후추 , 소금 솔솔

옆에 보이는 방울토마토 10개를 반씩 잘라 좀 다시 한번 볶아준 뒤 마무리.


브런치에 요리 방법을 쓰고 있으니

광민이 점심을 먹자고 한다.

맛은 어떨까?


글을 쓰는 동안

알맞게 식고, 간도 잘 배었다. 수세미는 다른 재료들과도 잘 어우러졌다.


아침에 넉넉히 끓인 애호박찌개를 나누려고 이웃에 배달갔다가 물물 교환(?)된 돼지갈비를 곁들이고, 늙은 오이 하얀 김치, 양배추 깻잎 물김치, 애호박나물. 호박 쌈에 듬뿍 담긴 여름을 먹으며 더위를 이겨본다.



수세미는 비누처럼 기름기를 잘 닦아내면서도 보습력이 뛰어나다고 한다. 벗겨놓은 껍질을 씻어서 냉장고에 넣어 놓았다가 세수 한 뒤에 한 개 꺼내어 문질러 보니 시원하면서도 상쾌한 기분.벌레 물렸을 때도 사용하면효과적이라고 한다. 내년엔 수세미를 더 많이 심게 될 것 같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우리가 '아로나' 시청에 들어간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