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첫 출근, 올림피아 유적지

12월 7일


박물관

아침 일찍 출근길에 나섰다. 바로 개울만 건너면 올림피아 유적지 박물관이다.(유네스코 기록을 보니 올림피아는 이 곳의 계곡 이름이라고 한다.) 박물관 직원들도 지금 막 출근하는 모습이다. 그들이 준비할 때까지 근처를 돌아봐야겠다. 박물관 앞 커다란 건물엔 대규모 화장실이 있다. 박물관 입장과 상관없이 사용할 수 있는 곳이다. 청소도 아주 잘 돼있다. 바로 옆 이탈리아나 심지어 잘 사는 서유럽 국가에서도 관광지에선 무료 화장실을 볼 수 없었다.(가난한 여행자들에게는 이런 것들이 유독 잘 보인다.ㅎㅎ) 손님으로 대접받는 기분이다.


박물관으로 들어서니 관람객은 우리뿐이다. 너무 많지도 적지도 않은 전시물들에 마음이 더 여유로워진다. 그동안은 뒷사람 생각하느라 제대로 읽지 못했던 설명이나 해설을 읽을 수 있다. 광민은 사진을 찍어 두고 나중에 읽으면 된다고 하지만 그 날 여행을 마치고 차에 돌아오면 일기 쓸 여유도 없이 잠들어 버리기 일쑤다.


많은 유적지를 돌아다니기보다 하나라도 제대로 알고 제대로 느끼고 싶다. 광민은 나보다 빠른 읽기가 돼서 저 앞에서 지루해하며 날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나는 내 읽기 속도에 맞춰 천천히 읽을 것이다. 이렇게 출근을 일찍 했고 우리 집은 코 앞에 있으니 점심때까지 시간은 충분하다. 오래된 이야기들을 전해 주고 싶어서 안달이 난 전시물들이 내게 말을 걸어오는 것 같았다.(그렇게 열심히 읽었지만 지금 기억에 남는 건 거의 없다. 그래도 계속 호기심을 가질 수 있는 계기가 되어 그리스 여행이 끝날 무렵에는 그리스의 기원 전역사가 손에 잡힐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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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지

점심을 먹고 다시 출근, 집 앞에 유적지로 가본다. 유적지로 가는 넓은 들판에 흐드러진 들꽃들에 마음을 빼앗긴다. 12월에 만나는 들꽃이라니. 그리고 그 가녀린 들꽃들과 대조를 이루는 굵직한 제우스 신전 기둥이 떡 버티고 있다. 몇 개 밖에 안 남은 기둥으로도 위엄이 느껴진다. 나보다 언덕 위에 먼저 도착한 광민이 손을 흔든다. 가 보니 올림픽 주 경기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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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의 올림픽에 대하여 무관심했던 나는 이런 구체적인 공간을 상상해 본 적이 없었다. 사실 마라톤 이외의 종목이 존재하는 줄도 몰랐다. 그런데 비스듬히 경기를 관람할 수 있는 드넓은 언덕 스타디움을 갖춘 운동장 앞에 서니 자연스럽게 시간 속에 빠져들 수 있을 것도 같다. 그러나 아무래도 이런 산 골에 저 넓은 관객석을 채울 만큼 사람들이 넘쳐났다는 게 실감 나지 않는다.


그런데 마이크로 사용되었다는 에코 건축물이나, 경기 한 달 전부터 심사위원들과 선수들이 모여서 여러 가지 준비를 하고 회의를 하던 숙소, 김나시온의 흔적들을 만나는 동안 조금씩 그 시절이 구체화되기 시작한다.


이제 막 그 시절에 발을 들여놓기 시작할 무렵 난데없는 호루라기 소리가 내 시간 여행을 훼방 놓는다. 처음엔 단체관람온 학생들의 선생님이 부는 소리인 줄 알았다. 그러나 그것은 관리인이 마감시간을 알리는 소리였다. 아직 세 시밖에 안 된 시간인데 조금 야속하다.( 대신 그리스는 비수기에 입장료를 반값에 할인해 준다)


서운한 맘으로 유적지를 나서는데 입장할 때부터 환한 미소로 맞아주던 정문 앞 직원이 다시 환한 미소로 재밌게 봤냐며 친근하게 우리를 배웅한다. 야속한 마음이 스르르 녹는다.

미소의 힘 나도 배우고 싶다.


카토사미코 해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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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 집 앞 마당은 드 넓은 해변이다. 처음 도착했을 때 아웃한 까탈스러운 프랑스 여인 덕분에 더욱 호젓하고 아늑한 구석으로 이동해서 훨씬 풍경이 좋아졌다. 이런 데서 며칠씩 쉬었다 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 그렇게 하면 되지. 우리에겐 집이 있으니 얼마든지 가능하지 않은가? 이제 며칠 씩 묵을 수 있는 여유 있는 마음까지 챙겨 산책을 나간다.


해안선을 따라 모래사장을 걷는 동안 어느덧 해가 기울고 있다. 아기를 데리고 산책 나온 부부의 뒷모습에 노을빛이 아름답다. 작은 차를 개조해서 캠핑카를 만든 우리의 새로운 이웃이다. 그리고 바다 바로 위까지 내려와서 더욱 커진 붉은 해가 모래사장 작은 웅덩이에 하나 더 보인다. 내가 좋아하는 장면. 그리고 순식간에 물속으로 사라진다.


이제 차로 돌아가야 할 시간. 차에 올라타 문을 닫으려고 뒤돌아서니 다시 하늘이 붉게 타오르고 있다. 이럴 수가. (이렇게 뒤 돌아볼 때 생각지 않은 아름다운 풍경을 만날 때가 많다. 그래서 가끔씩은 걷다가 한 번씩 뒤돌아 보는 습관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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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엔 저녁노을처럼 장관은 아니지만 연분홍빛 하늘색이 모래사장의 하얀 배와 너무 잘 어울린다. 창문에 걸린 파스텔톤 그림을 바라보며 마시는 커피 한 잔이 참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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