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트라스

시간이 없다!

오늘(2018.12.8) 우리의 목적지는 미스트라스. 그리스에 처음 도착했던 파트라스처럼 끝이 라스로 끝난다. ‘라스‘ 어떤 장소를 뜻하는 말인가 보다. 광민이 미스트는 ’ 경이로운 ‘이라고 알려 준다. 그 말에 궁금증과 설레는 마음을 가득 안고 도착했다. 그러나 겨울철 비수기에 일찍 문을 닫는 정책 때문에 남은 시간이 두 시간밖에 없다고 한다. 미리 알았더라면 조금 더 서둘러 어젯밤을 보낸 아름다운 해변을 떠나고 싶었을 것 같다.(난 여행지마다 늘 떠나기 아쉬워 미적거리고 광민은 한 톨의 아쉬움도 없는 듯이 금세 떠날 준비를 마친다.)


미스트라스 유적지에서 안내하시는 분이 우리가 시간을 효과적으로 쓸 수 있는 경로를 열심히 설명해 주시지만 그래도 야속하게만 느껴진다.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 시간에 쫓기는 마음으로 다녀야 하다니. 광민은 내 다리도 아프고 하니 꼭대기에 있는 성은 포기하자고 한다. 왠지 서운하지만 하나를 포기하고 나니 조금 여유가 생긴다.


'라스'라는 이름이 궁금했는데 설명문을 읽어 보니 이 지역의 옛 이름이 모레아였다. 찾아보니 모레아는 떡갈나무라는 의미로 펠로폰네소스의 옛 이름이다. 모레아 즉 펠로폰네소스는 '라스'의 옛 이름인가? 전혀 발음이 다르면서 같은 의미를 갖는다면 언어가 다른 사람들이 살게 되었다는 뜻이겠지. 서로 빼앗고 싶을 정도로 탐나는 지역이었나 보다. 미케네, 코린토스, 스파르타 등 세계사에 문외한인 나에게 조차 귀에 익숙한 장소들이 다 이 지역에 있다.


미스트라스를 만든 사람

설명문 중에 이 도시를 만들었다는 왕의 기다란 이름에 월리엄 2세라는 영국식 이름이 눈에 띈다. 영국과 관련이 있는 사람인가? 왜 이렇게 산속에 왕궁을 지었나? 들어간 입구도 산인데 멀리 까마득히 높은 곳에 성이 보인다. 왕은 산속에 지은 왕궁도 불안하여 저 꼭대기 절벽에 요새를 지어놨나?. 방금 기원 전의 유적지를 보고 와서 인지 1200년대에 만들어져 천 년 가까이 된 역사가 훨씬 가까이에 느껴진다.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궁금한 걸 다 알아낼 수 있을 것만 같다.


동로마는 같은 기독교 세력인 십자군의 제국이라고 할 수 있는 라틴제국에 의해 멸망하여 57년간 지배를 받다가 다시 제국을 탈환한다. 월리엄은 동로마를 몰락시켰던 라틴제국의 강력한 지배자 중 한 사람이었고 그의 몰락은 라틴제국 몰락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그리고 그가 10여 년에 걸쳐 완성한 미스트라스는 아이러니하게도 동로마의 부활에 결정적 역할을 하게 된다.


동로마제국의 최후의 도시

동로마가 이슬람 세력인 오스만에 함락당한 뒤에도 제2의 수도로서 7년간이나 끈질기게 명맥을 유지해 온 곳도 미스트라스였다. 그러나 결국 오스만에 빼앗기며 동로마제국의 최후를 맞이하게 장소이기도 하다.


성 디미트리오스 교회에는 복잡하고 정교한 목조 옥좌와 바닥의 대리석 판에 비잔틴의 상징인 머리가 두 개인 독수리가 새겨져 있다. 미스트라스의 군주였던 콘스탄티누스 11세가 이 교회에서 왕관을 받고 비잔틴의 마지막 황제가 된 곳이다. 그는 비록 비운의 마지막 황제였으나 그리스인들로부터 아직도 성스러운 대접을 받는다. 자신의 목숨을 바쳐 끝까지 항전했기 때문이다.


동로마가 진짜 적으로 여긴 것은?

콘스탄티누스 11세가 서로마와 힘을 합쳐서라도 제국을 지키려 했을 때 대주교가 반대했다고 한다. 이교도 보다 더한 십자군의 약탈과 살육의 참혹함을 기억하며 제국을 잃더라도 종교를 더럽힐 수는 없다고 했다고 한다.


동로마가 진짜 적으로 여긴 것이 같은 형제 기독교인 서로마였다니!


그가 원했던 대로 제국은 잃었으나 오스만은 교회를 지켜 주었다고 한다.( 오스만은 밀레트 제도를 통해 그리스 정교뿐만 아니라 유대교나 아르메니아 기독교도를 포용하는 정책을 폈다. 이희수 저 터키 사) 십자군의 무자비함과 오스만의 종교적 포용의 역사가 대비되는 부분이다.


수녀들이 지금도 사용하고 있는 수도원의 모습이 과거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다. 높은 벽들도 둘러싸인 곳에 화려하고 아름다운 옛 모습을 상상할 수 있는 교회도 인상적이다. 안에 그려진 성인들의 모습이 절의 보살들의 모습과 매우 닮았다. 지금의 교회의 모습과 사뭇 다르다. 도시가 산 꼭대기에 만들어지다 보니 페허사이를 걸어 다니는 동안 어느 결에 멀리까지 전망이 한눈에 들어온다. 페허가 되어 역사의 뒤편으로 가 있는 이 곳과 달리 현재의 삶이 진행되고 있는 곳이 눈앞에 신기루처럼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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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꼬불 고불 이어지는 작은 골목길을 지나며 수많은 흔적들을 지나는 길 오르막길, 무너진 돌 틈 사이 가득 찬 파란 하늘이 아름답다.


도시를 원형극장의 형태로 만들었다고 하는데 오르막이나 내리막 길 어디에서나 전망이 아름다워 자꾸 발길이 멈춰졌었다. 이 곳을 한 번도 다녀간 적이 없는 파우스트가 이 곳에 대한 이야기를 읽어보는 것만으로 감동해 자신의 두 주인공이 재회하는 장소로 썼다고 하니 그 글이 있다면 나도 읽어보고 싶다. 난 그 아름다움을 전할 말을 찾아낼 재간이 없다.


동로마를 약탈한 힘으로 라틴제국이 심혈을 기울여 만들었으나 그 제국을 멸망시킨 도시. 그리고 마침내 2천 년이 넘는 로마 역사의 종지부를 찍은 곳. 미스트라스라는 이름만큼이나 경이로운 곳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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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이로운 이 도시에서 하룻밤 묵기로 했다. 겨울 해는 짧아져서 오히려 여정은 더 여유로워지는 것 같다. 그리스 여행은 더 많이 머물 수 있는 여행이 되기를...



여행일기를 다시 정리하다 보니 내가 가지고 있던 이슬람과 기독교에 대한 편견과 오해가 얼마나 깊었는지, 아직도 깊은지 새롭게 보인다. 이 글을 쓰면서 참고가 되었던 좋은 글과 책을 소개하고 싶다.


한양대 문화 인류학과 이희수 교수님의 '터키사'

브런치의 이아인 작가님의 브런치북 '고요한 순례'에 미스트라스에 관한 글 다섯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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