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다우로스의 작은 음악회

2018년 12월 10일



아침 일찍 유적지로 가는 길에 일 찍 문을 연 제과점이 눈에 띄었다. 카페 안에서 빵을 파는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빵만 전문적으로 파는 제과점을 요 근래 처음 만난다. 너무 반가워서 무조건 들어가 이것저것 주문해 보는데 가격도 맛도 최고다. 이제 충분한 양식을 가지고 에피다우로스로 향한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하지만 나는 모르는 게 많아서 여행이 놀라움과 재미로 넘치는 것 같다.

가져간 빵보다 더 맛난 최고의 원형극장이 날 기다리고 있었다.


에피다우로스의 원형극장은 역사 속의 유적지가 아닌 아주 생생한 현재의 극장이었다. 원형무대는 오케스트라라고 불리는데 중앙에 한 사람이 설 수 있는 작은 원이 있다. 그 자리에서 내 목소리가 선명하게 모아져서 내 귀에 훨씬 낭랑하게 들린다. 마치 마이크를 들고 말을 하는 기분이다. 나의 발자국 소리마저 크게 울린다. 내 안에 어린이가 튀여나와 일부러 쿵쾅거리며 걷기도 하고, 그러다 신나서 춤도 춘다. 그러다 지치면 수많은 괜객 앞이라고 상상하면서 이야기도 하고, 낭독도 하고, 노래도 불러본다. 그러다 다시 신명 나서 춤추고...

아직 이른 아침 아무도 없는 곳에서 나는 무대의 주인공이 되었다.


광민도 내 요청에 망설이다 한 곡 뽑는다. 한두 명 관광객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광민이 노래를 마치자 근처에 있던 관광객들이 박수를 친다. 그리고 다음 사람이 무대로 올라온다. 그렇게 작은 음악회가 이어지고 끊어질 듯 다시 이어지길를 반복한다.


그러다 한 남자가 우리에게 다가온다. 그는 이 곳에 벌써 세 번째 방문하고 이 근처가 고향이라고 했다. 자기소개를 마친 남자가 대뜸 종이가 있냐고 묻는다. 어리둥절하는 사이 자신의 지갑에서 작은 종이를 꺼내어 찢는다. 그리고 놀랍게도 객석 끝에 자리한 그의 동반자가 그 소리가 들린다고 손 짓, 몸 짓을 동원해 반응한다. 정말 놀라운 일이다. 그렇다면 배우의 한숨소리마저도 놓지지 않고 들을 수 있다는 것. 무대에 관객이 꽉 차면 소리는 더 잘 들릴 것이다. 배우는 대사 전달에 대한 걱정 없이 감정에 몰입하기 좋을 것 같다.


고소 공포증이 있어서 꼭대기를 싫어했지만 광민이 적극 권유해서 시도해 보았다. 무대 끝까지 올라가 보니 무대도 잘 보이고 의외로 객석 사이에 넓은 통로가 있어 꼭대기 자리에서도 어지럽지가 않다.(이 경험 덕분에 많은 원형극장 꼭대기를 올라갔었는데 모두 어지러웠다.) 그리고 정말 신기하게도 소리가 잘 들린다. 그러고 보니 대사 전달이 중요해진 극작가들의 작품이 이런 기술을 고안하게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기원전 5세기 아이 킬로스, 소포 클래스, 에우리피데스와 같은 유명한 극작가들이 그리스의 역사와 신화를 바탕으로 작품을 만들었고 이 작품들은 의사전달이 중요했다. 이들의 인기가 높아져서 대규모 극장이 필요했고 대사 전달이 잘 될 수 있도록 원형극장은 고도의 주의와 기술이 요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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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렇게 평범해 보이는 곳에 14000명이나 앉을 수 있는 원형극장이 왜 지어진 걸까? 그리고 화려한 신전이나 대규모 숙소나 목욕탕을 비롯한 대규모 연회시설 등이 여기 왜 있는 걸까? 이 곳에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살았던 것일까? 광민이 질문을 던진다.


그것은 원형극장이 지어진 기원전 3~4세기경 고대 로마의 쇠퇴기에 관계가 있다. 세상이 어지러워지자 병을 치료하여 죽음에서 벗어나게 해 주는 의술의 신 아스클레피오스가 아버지인 아폴론을 능가하는 숭배를 받게 되었고 심지어 제우스보다 도 위대한 신으로 여겨지기도 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리스 전역에 아스클래피오스의 신전이 만들어지는데 에피다우로스는 아스클레피오스의 탄생지로서 최고의 명성을 얻게 되며 이로 인해 도시는 환자들을 위한 대규모 의료시설과 숙박시설을 갖춘 종합 레저타운을 만들게 된 것이다. 그 번영기에 원형극장이 지어졌을 것이다.


그러나 아스클레피오스 신전이 로마 쇠퇴기에 최초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기원전 6세기경에 아스클레피오스에 대한 숭배가 시작되었으나 신전에 건설된 것은 고고학적인 연구에 의하면 미케네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신전이 유명해진 것은 기원전 5세기 4년마다 경기가 열리면서 경기장들이 명성을 얻었고 기원전 4세기에 최고의 전성기를 맞이한다.


에피다우로스는 당시 아스클레피오스의 여러 신전 중 가장 유명한 곳이었다.

원형극장을 만들 당시는 6000명을 수용할 수 있었으나 기원전 2세기에 좌석을 21줄 더 늘려 지금의 규모로 확장 하였다고 하니 에피다우로스의 전성기는 그때까지도 계속 이어진 것 같다.


6세기에 일어난 지진으로 깊은 흙더미 속에 갇힌 채 잊혀갔던 이 극장을 찾아낸 고고학자와 그 고고학자의 단서가 될 글을 남겼던 2세기의 그리스 지리학자 파우사니아스에게 감사하다. 그는 로마의 극장들은 더 거대하고 웅장하지만 그 아름다움과 균형미에서 에피다우로스 극장과 견줄만한 건축물은 없다고 썼다. 그리고 거의 2천 년이 흐른 뒤 그리스의 고고학자 파나기스 카바디아스는 이 단서를 가지고 이곳의 언덕들에 비밀이 있을 거라고 확신하였다. 그리고 6년간의 힘든 발굴작업 끝에 흙더미 속에서 원형이 그대로 보존된 이 아름다운 극장을 찾아낸 것이다.


자연재해는 모든 것을 파괴하는 줄만 알았는데 때로는 과거를 있는 그대로 보존하는 역할도 한다는 것을 폼페이 이후 다시 한번 실감한다. 2천5백 년 전 작은 소리 하나도 놓치지 않는 음향 시설을 설계한 폴리클래이토스의 위대함을 내가 오늘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이 놀랍고, 감사하다.


이제 유적지로 가야 할 시간 고양이가 광민의 무릎으로 뛰어오르더니 내려올 생각을 안 한다. 나도 여기 더 머무르고 싶다. 에피다우로스 원형극장에서 몇 시간이나 보내고도 미련이 남아 유적지에 다녀온 후 다시 들르기로 약속했다.(하지만 이 약속은 지켜지지 못했다. 유적지에서 읽어야 할 내용이 너무 많았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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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다우로스는 의료의 도시로 유명한 곳이었고 치유를 받으러 온 사람들이 묵었던 대규모 게스트하우스를 비롯해 신전들의 터들이 있다. 유적지를 돌아다니면서 나의 다리도 치유받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진다.(무리하게 걸은 탓에 다리가 고장 난 것이라 생각하고 더 나빠지지만 않기를 바랐는데 몇 개월 후에 말끔히 나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동안의 운동부족이 원인이었던 것 같다.)


이곳에서 발견된 여러 비문을 통해 이들의 기적적인 치료과정도 알려지게 되었다. 처음 정화과정으로 성역에 있는 샘에서 목욕을 하고 신께 재물을 바친 뒤 취침실인 아바톤에서 잠을 잔다. 꿈을 통해 신으로부터 어떤 치료법을 쓸지 충고를 얻은 다음 사제와 꿈을 놓고 구체적으로 상의한다. 치료요법으로는 목욕요법, 긴장완화요법, 수술과 약물 요법,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쓰는 요법이 있었는데 극장에서 연극을 보거나 도서관에서 책을 읽는 것도 일종의 치료요법으로 생각했다.


독서나 연극감상을 치료요법으로 쓰다니 최근에 새롭게 유행하고 있다고 여겼던 치료요법들이 실은 2천 년 5백 년 전에 이미 이루어진 것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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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완전히 새로운 것이 과연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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