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어진 겨울밤 우린 거의 매일 영화를 본다. 난 책 읽기를 좋아해서 영화는 주로 광민이 고른다.
"우리 오랜만에 다큐멘터리 하나 볼까?"
"브라질 정치에 관한 내용이야. 브라질에 대해서도 좀 알 겸."
"그러자. 코로나 끝나면 이번엔 남미 여행 차례니까."
'위기의 민주주의'는 이렇게 가벼운 맘으로 보기 시작한 다큐멘터리 영화였다. 그러나 영상이 계속될수록 괴기 영화보다 더한 공포가 밀려온다. 우리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거기 있었다. 결말은 참혹했다.
20년이 넘는 군부독재의 탄압을 이겨내고 어렵사리 정권을 잡은 룰라 대통령은 대통령에서 물러나면서도 87% 지지율을 얻을 정도로 국민에게 신망이 두터웠다. 그러나 이 전의 독재권력의 카르텔인 검사, 언론, 재벌들은 늘 호시탐탐 기회를 노렸고 결국 그의 후계자 지우마를 탄핵 한다. 지우마는 브라질의 독재 시절 모진 고문을 견뎌내고 오직 민주주의를 위해 삶을 바쳐온 투사였다. 그리고 이어서 룰라도 감옥에 갇히고 만다.
탄핵할만한 사유가 발견되지 않았지만 소수당이었던 집권당은 무력했고 다수 의석수를 가진 야당의 탄핵 진행은 너무 쉬웠다. 대통령 탄핵에 이어 공격은 룰라 전임 대통령에게 날아갔고 증거도 갖추지 못한 죄목으로 2년간 옥살이를 하고 정권은 보수당에게로 넘어간다. 룰라는 다시 대통령 후보로 나섰고 지지 1위 후보가 되었지만 검찰은 또다시 그를 감옥으로 보낸다. 검찰이 주장했던 범죄 증거는 나오지 않았지만 오히려 이것이 증거를 감추었기 때문이라는 논리로 결국 룰라는 유죄를 선고받았다. 기소권은 물론 수사권과 심지어 재판권까지 가진 브라질 검사는 부정한 권력을 심판한 정의의 사자로 브라질 영웅이 되었다. 룰라는 항고를 했지만 증거를 없앴다는 이유로 징역 9년 여 였던 판결이 최종에는 12년으로 늘어났다. 확실하게 정치적 생명을 없애버린 것이다.
수사권에 재판권까지 가진 검찰이 선출된 대통령을 탄핵하고, 대통령 1위 후보를 감옥으로 보냈다.
이것은 브라질 검찰이 브라질 국민의 선출권을 박탈해버린 사건이다.
수많은 민주시민이 그를 에워싸고 감옥으로 가는 길을 막아섰을 때 룰라 전 대통령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연설을 한다. 요지는 당신들이 모두 '룰라' 이므로 나는 감옥에 가도 '봄'은 다시 온다는 것이었다.
진짜 그럴 수 있을까?
한 번 지나간 봄을 다시 되돌리기는 더욱 어려울 것이다.
그 봄의 비밀을 알게 된 권력 세력들이 쉽게 자리를 내어 줄리가 없기 때문이다.
룰라와 그의 후계자 지우마는 그들을 고문하던 바로 그 사람들에 의해 다시 몰락했으며 브라질은 현재 다시 군부가 장악해 가고 있다. 정권의 요직은 모두 백인 남자로 채워졌으며 자신을 지키기 위한 '총기'를 가질 수 있다는 공약을 한 사람이 대통령이 되었다. 우리는 그런 위험한 브라질에는 가지 않을 생각이다.
진짜 공포
놀라운 점은 모든 재판 과정이 밀실에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내가 직접 이 영상을 보듯 사람들도 볼 수 있었다는 점이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은 검사, 언론, 재벌이 유포한 정보에 의해 그들의 의도대로 생각하고 있다. 보통 사람들은 일상에 치어 복잡한 정치와 사실 관계에 깊은 관심을 갖기 어렵다. 기득권 세력은 자신의 이해에 맞추어 가공하고 포장한 내용을 같은 이해당사자 언론을 동원하여 사람들에게 전파한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룰라에 대한 증오심으로 이어진다. 이것이 가장 공포스럽다.
우리는?
정경심 교수 재판 과정을 지켜보면서 판사들의 언행이 이해하기 어려움을 넘어 불쾌한 적이 많았다. 그래도 판결만큼은 최소한 논리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선에서 내릴 것을 기대했다. 그러나 브라질 못지않은 허무맹랑한 판결이 나왔다.
처음 정경심 교수 사건의 핵심은 사모펀드였다. 가족 펀드라는 이름으로 조국의 권력형 비리를 수사한다는 보도가 연일 언론을 뒤덮었다. 자신의 증거를 보존하기 위해 컴퓨터를 가져가는 장면은 마치 몰래 자신의 권력형 범죄를 은닉하려는 모습으로 보도되어 사람들을 호도했다. 그러나 그렇게도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사모펀드는 재판 과정에서 거의 무죄임이 드러났고 더욱이 권력형 범죄와는 매우 거리가 먼 것으로 증명되었다.
그리고 남은 것은 표창장. 표창장 위조 사건 기소는 온 나라를 들썩이게 만들었던 상징적 사건이었지만 이 기소는 무죄로 판결 났다. 범죄 증거 없이 기소를 한 것이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1심 재판 결과는 조국 장관 청문회 당일 검찰의 기소가 확실한 범죄 증거가 없는 상태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검찰이 선출 권력자의 인사권에 개입한 정치적 사건임을 증명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책임은 누가 져야 하는가? 그러나 언론과 검찰은 아예 눈을 감고 있다.
브라질의 경우처럼 검찰이 국민이 뽑은 대통령의 선출권에 정면 도전한 것이다. 검찰은 처음과 완전히 달라진 증거로 다시 기소했으며 법원은 이를 승인한다. 한 가지 범죄에 대한 두 개의 기소와 재판이라는 무리함을 감수하면서. 판사는 이 재판에서 일방적으로 검찰의 의견만을 반영했으며 심지어 변호인의 증인조차 피고인이 강제로 증언하게 했다고 단정했다. 판사는 무슨 근거로 그런 판단을 내린 것인가?
재판 과정에서 강제로 증언을 하게 했다는 어떠한 증거도 제출된 적이 없다. 우리나라 재판부는 수사권이 없다. 그런데 재판부는 어떠한 증거를 가지고 위증을 했다는 판결을 내린 것일까? 정말로 증거에 의한 재판이 이루어진 것일까? 증거도 없이 위증이라고 단정하고 위증을 교사했다고 판단하는 사법부(난 개별 판사가 아닌 사법부의 태도로 본다.)에 의해 정경심 교수는 4년 6개월의 징역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되었다.
설사 검사가 기소한 모든 내용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표창장 위조는 징역을 살 만한 일이 아니다. 그것도 법정구속을.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아이들 체험학습이나 다름없는 지극히 사소한 문제로 조국 전 장관까지 권력형 비리로 역어내는데 거의 성공한 것처럼 보인다.
그들의 최종 목적지는 문재인이고, 나아가 민주 정권이다.
결국 대한민국 국민의 선출권을 무력화시키겠다는 것이다.
이것은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핵심적인 내용이다.
검찰에서 사법부 사찰 문건이 발견되었을 때 나는 사법부에 한가닥 자존심을 기대했었다. 그러나 이번 재판으로 또한 윤석열에 대한 징계 중지 명령으로 검찰과 법원은 이해가 같은 집단 임이 한층 명확해졌다.
민주 정권은 전에 없이 180석이라는 힘을 가졌지만 여전히 기득권 세력의 권력을 약화시키지 못했다. 검찰과 언론, 재벌 등 기득권 세력은 모든 힘을 다하여 민주 정권을 공격한다. 그들의 논리로 가공된 뉴스에 세뇌된 사람들은 바로 기득권의 시선대로 세상을 본다. 특히나 재판 결과는 민심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
브라질에서, 한국에서 재벌과 언론은 한 편이며 보수당은 이들의 힘을 이용해 정권 창출을 도모한다. 그리고 그들의 가장 꼭대기에 무서운 군부독재가 보다 더한 권력을 쥔 검찰이 있다.
인사권자인 대통령도 건드릴 수 없는 검찰은 이제 괴물로 변해 가는 중이다.
이 괴물을 상대할 수 있는 유일한 힘은 깨어 있는 민주 시민의 실천이다.
내가 여행기를 쓰다 말고 이 글을 쓰는 이유이다.
내가 살고 싶은 세상은 내가 만들어야 하니까.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검찰과 언론이 브라질로부터 많이 배운 것이 아닌가 기시감이 들었다.
이제라도 우리가 더 많이 브라질로부터 배워야 한다.
다큐멘터리 '위기의 민주주의'를 더 많은 사람들이 보게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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