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한 삶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

공기의 흐름을 바꾸는 고양이

by 경주

불행한 삶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그것은 음악과 고양이다.

- 알버트 슈바이처 -



고양이 시지는 슈바이처의 왼손에서 자는 것을 즐겼다. 왼손잡이였던 슈바이처는 그의 고양이를 깨우지 못하고 오른손으로 처방전을 쓰곤 했다. 그로 인해 양손잡이가 된 슈바이처. 그만큼 슈바이처는 엄청난 애묘가였다.



우리집에도 못지않은 고양이 예찬론자가 있다. 딸은 고양이를 키우고 싶어 했다. 나는 아들과 딸 키우기도 벅차서 고양이까지 키울 수는 없다고 했다. 남편도 고양이를 키울 공간이 마땅치 않아 현재는 불가능하다고 했다. 우리 부부는 딸에게 졌다. 우리집에 오게 된 고양이. 상상하지도 못했던 일. 우리집에 고양이가 왔다.



나는 어릴 적 강아지를 키웠다. 그리고 개가 가진 충성심과 발랄함을 사랑했다. 아무도 없는 집에 홀로 남겨져 문득 두려운 마음에 쪼그리고 앉아 눈물을 흘리면 저기서 뛰어나온 나의 강아지는 눈물을 핥아주었다. 아이였던 나는 가족 소개를 하라고 하면 언제나 나의 강아지를 꼭 이야기하곤 했다. 그만큼 나에게 나의 강아지는 너무 소중했다.


나의 개에게 치명적인 단점이 하나 있다면 나보다 먼저, 그것도 너무도 빨리 이 세상을 떠났다는 점이다. 그 외에 단점은 전혀 없었지만 15년을 키운 나의 개가 죽기 전 슬픈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던 그 순간을 잊지 못해 울고 또 울어 보아도 개를 다시 키울 용기는 생기지 않았다. 스물셋의 나는 다시는 나보다 먼저 죽는 동물을 키우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그래도 다시 키운다면 물론 강아지였다. 고양이는 싫었다. 나는 길냥이를 도둑고양이라 부르던 시절의 사람이다. 어린 시절 고양이가 가진 분위기가 싫었고 소리 없이 걷는 모양새도 무서웠다. 어느 날 임신한 길고양이가 우리집 옥상에서 새끼를 낳아 엄마가 우유며 먹을 것을 한참 올려다 주었는데 갑자기 사라지자 역시 고양이에게 정을 주는 것은 안 될 일이라는 생각을 했다.


고양이를 키울 수 없는 나는, 딸의 마음을 달래기 위해 매주 고양이가 많은 곳을 함께 찾아다녔다. 그렇게 매주 한 번씩 딸이 충분히 고양이를 볼 수 있도록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고양이에 대한 마음은 우습게도 단 한순간에 바뀌었다. 나를 설득해보겠다고 딸이 데려간 고양이가 가득한 그곳에서 만나게 된 고양이가 사뿐히 뛰어올라 내 무릎에서 잠든 것을 경험한 순간, 내가 그동안 가진 모든 생각이 바뀌었다.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았다. 고양이의 애교 섞인 눈빛과 행동은 자발적인 집사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우리 집에 오게 된 고양이.


고양이가 우리집에 오자 우리집 공기의 흐름이 바뀌었다. 누구보다 바뀐 건 어이없게도 고양이를 원했던 아이들이 아닌 우리 부부였다. 아이들이 어릴 때처럼 콧소리를 달고 산다.


고냥아 고냥아
우리 고냥이 어디 가쩌?

남편이다. 들어오자마자 덩치에 맞지 않은 아기 같은 목소리로 우리의 크림이를 찾는다.


참 우리 고양이 예뻐.

세상에
이렇게 예쁜 고양이가
우리집에 있다니.


고양이는 절대 안 된다던 남편이 고양이를 지그시 보며 말한다


남편은 우리집 고양이의 생김새와 행동을 하나하나 열거하며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나 역시 고양이의 매력에 놀랄 정도로 푹 빠져있다. 내가 화장실에 들어가면 고양이는 어서 빨리 나오라며 문을 긁어댄다. 내가 얼른 문을 열어 보이면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갑작스레 식빵을 굽는다.


(목을 움츠리고 다리를 모아 앉아있는 모양이 마치 식빵 같다. 이 자세를 하고 있는 고양이를 볼 때 집사들은 식빵을 굽는다고 표현한다.


화장실이라는 공간은 고양이가 싫어하는 물이 있어서 그곳이 고양이에게는 위험해 보이는 걸까. 내가 화장실에 들어가기만 하면 나오라고 아우성이라 나는 가능한 상황이라면 최대한 문을 열고 해결한다. 문을 열어두면 우리 고양이는 내가 화장실에서 나올 때까지 그 앞에서 보초를 선다.


어쩌다 문을 닫고 화장실에 들어가면 문을 긁어대는데 막상 문이 열리면 마치 아무 일도 안 했다는 듯 갑자기 건조한 눈빛으로 식빵 굽는 자세를 취하는 고양이이다.)


맙소사! 상상하지 못했던 귀여움.


내가 걸어가면 다가와 내 몸에 자신의 몸을 슬쩍슬쩍 스친다. 내 주변을 거닐며 조심스럽게 내게 온다. 부드럽게 와닿는 고양이의 따뜻함.


이 조심스러운 행동에 담긴 사랑스러움.


아침에 일어나면 고양이는 밤새 기다렸다는 듯 서둘러 다가와 내게 비비댄다. 그래도 바쁘게 아침을 준비하려 하면 녀석의 필살기. 내 앞에 벌렁 드러눕기! 아! 크림이의 부비부비, 부드러운 스치기, 까슬까슬한 혀로 핥아주기를 모두 버티고 아침밥을 하려고 했는데. 내 앞에 벌러덩 누워 나를 바라보는 그 눈빛에는 K.O.



삶의 여유를 알게 해 주는 고양이. 덕분에 나는 아침 시간에 자리 잡고 앉아 고양이와 시간을 보낸다. 삶의 쉼표를 찍어주는 고양이.


아프리카에서 의사로서 헌신하는 삶으로 노벨상을 받은 슈바이처가 왜 고양이를 좋아했는지 알 것 같다. 그는 고양이가 불행한 삶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준다고 했다. 그렇다. 슈바이처의 말을 증명하는 매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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