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맨 앞에 놓을 줄 아는 고양이,
한 수 배우고 싶다.
고양이들은
어떤 사람이 자기들을 좋아하고
어떤 사람들이 자기들을 싫어하는지
알고 있다.
하지만 별로 상관하지 않는다.
- 위니 프레드 카리에르 -
누가 나를 좋아하고
누가 나를 싫어하는지를
상관하지 않는다는 건.
그럴 수 있다는 건
내가 가장 중요함을 알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착한 여자 콤플렉스에 깊이 빠지면 내가 사라진다. 가령 내가 좋아하는 음식이 무엇이었는지, 무엇을 하고 싶었는지조차 희미해지는 것이다. 뒤늦게 나를 찾고 싶다며 내 마음 가는 대로 무언가를 해 보려고 하지만 도대체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낼 수가 없다. 힘든 것 같은데 당최 왜 힘든 건지도 알 수 없다.
내가 느끼는 감정의 원인을 찾고자 가만히 앉아 한참을 생각한다. 무엇이 힘든 걸까. 부모님, 시부모님, 남편, 그리고 아이들과 함께할 때면 그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것 같은데 정작 그 순간에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나는 그들이 원하는 틀에 갇혀 있다. 누군가와 함께 있으면 그에게 맞추려 하는 이 지독한 병으로 인해 나는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긴다.
고등학교 때 친구가 말한다. 그 시절의 나는 부처 같았다고. 그 시기 나의 마음을 정확히 말하자면 나를 둘러싼 사람들이 행복한 것이 좋았다. 그들의 행복을 보면 그저 좋았다. 그것이 나의 행복이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이 보였고 그것을 실현하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한 공간에서 보는 것이 아니라 각기 다른 시간 속에서 만나기에 욕망의 충돌을 볼 일이 없었다.
문제는 결혼과 출산 이후에 발생했다. 부모님의 웃음이 지상 최대 과제였던 나에게 새로운 부모님과 아이들이 생겼다. 난제였다. 각기 다른 욕구를 가진 이들이 모였고 각각의 마음이 보였기에 어찌해도 충족시키지 못한 누군가로 인해 난 불안했다.
눈치를 보아도 결국 불편한 누군가가 생기고 마는 이 구조 안에서 나는 무너졌다.
뽀글이 잠옷을 입은 어느 날, 내 품에 온 고양이의 발에 뽀글이가 단단히 걸렸다. 만약 내가 키우던 강아지가 같은 상황이었다면 아마도 낑낑 소리를 내며 내게 도와달라는 눈빛을 보냈겠지. 그런데 고양이는 날카로운 소리를 낸다. 거기다 앞 발을 드는 폼이 위협적이다. 그게 누구라 할지라도 자신을 아프게 한다면 앞발을 들어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상대에게 이빨을 내 보일 줄 아는 고양이.
왠지 모를 희열이 느껴진다.
나 혼자가 아니면
나는 평온하지 않았다.
그놈의 눈치는
왜 이리 발달한 건지
알 수 없었다.
종교에 귀의하거나
자연을 찾아 떠나야만
이뤄질 것 같던
유유자적한 삶
그런데
고양이는
어찌 속세에 있는데도
저토록 자신에게 집중하며
조용하고 평온한 삶을 살 수 있을까.
거기다
말도 통하지 않고
저와 다른
저보다 큰
네 명의 동물이
같은 공간에서 숨 쉬는데
어찌 저렇게 차분한 눈빛을 할 수 있을까.
반갑다는 손길도
행복함을 표현하는 소리도
놀고 싶다며 걸어오는 장난도
지나치지 않다
의사표현이 명확하되
상대에게 부담스럽지 않다.
대립이나 집착을 떠나
한 편에 치우치지 않는다.
어딘가로
늘. 떠나기를 꿈꾸던 나는
고양이를 보며
바로 지금 여기에서
나 역시
편안할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이곳이 어디인지는
중요하지 않은 것이다.
좁은 집안에서 지내는 고양이에게
광활한 자연 속에서 몸과 마음을 닦는
도사님의 기운이 느껴진다.
우리집에는 도사님이 산다.
2022년 6월의 어느 날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