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보통의 나비.

.. 를 아직 못 정했습니다.

by 경주ist

회사 로비에서 나비를 보았다. 무심코 지나쳤을 법하지만 꽤나 가까이 다가가도 미동이 없기에 눈길이 갔다. 주변 환경에 무덤덤한 나비를 보자니, 나랑 닮은 구석이 있다. 사진을 찍었다. 우연히도 회사 로고와 함께 찍힌 나비. 사진 속에 내가 있었다. 주변에 꽃도 나무도 많은데 너는 왜 여기로 왔을까. 이 공간은 너에게 어울리지 않는다. 멈춰있는 나비의 날개는 버거워 보였지만 크고 화려했다. 날다 지쳐 힘이 없는 건지. 날아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목적지가 있을 텐데 왜 여기 있니. 잠깐 쉬는 거니, 더 이상 날지 않을 거니. 언제까지 여기 있을래. 그렇게 돌아오지 않는 대답에도 여러 말을 건네 보았다.


회사 출입문 가장 가까이에 앉아 퇴사하는 날만 기다리는 직장인이 있다. 대부분 직장이 그렇듯 처음에는 괜찮았다. 새로 지어진 건물, 2차 전지 관련회사, 맛있는 구내식당, 친절한 상사, 적당한 월급, 1인 기숙사, 아름다운 경주. 꽤나 만족스러운 회사였다. 중고 신입 특유의 밝은 모습으로 웬만한 일에는 웃어넘기며 한번 해보겠다 말했다. ‘너는 참 긍정적이다’라는 말을 종종 들었다. 업무가 익숙해지던 3개월 차, 정부 사업인 ‘내일 채움 공제’를 알게 되었고 냉큼 가입했다. 내일 채움 공제란 한 회사에 2년/3년 재직하며 일정 금액을 모아 정부 지원금이 포함된 목돈을 받는 제도다. 청년에게는 자산 형성을, 기업에게는 우수 청년 인력 확보를 지원하는 제도란다. 장기근속과 함께 목돈을 만들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다.


여느 회사와 다르지 않게 1년이 지나니 질렸다. 가장 정확한 해결 방법인 퇴사를 고민했다. 아름다운 경주의 경치를 제외하고 모든 상황이 변했다. 변한 것은 내 마음가짐 일지도 모르겠으나, 분명 그 변화에 흔들리기 시작했다. 회사는 제품 개발에 번번이 실패했고, 그로 인한 자금 상황이 나빠져 복지가 축소되었다. 맛있던 구내식당도 이젠 그저 그랬고, 상사는 모두에게 친절하여 업무가 많아졌다. 적당했던 월급은 제자리를 굳건히 지켜서 더 이상 적당하지 못하다. 퇴사를 마음먹은 가장 큰 이유는 기숙사 현관 CCTV로 감시하는 (코로나 감염에 예민해하던 회사) 과도한 사생활 침해 문제이다. 회사에서의 감시야 어쩔 수 없지만 퇴근 후 기숙사에서도 이어졌다. 특히나 여직원의 늦은 귀가와 잦은 외출은 가십거리를 만들었다. Work와 LIfe는 균형 필요하다. 거리를 좁히는 회사는 나에게 공포였다.


-어제 집에 있었던 거 아니야? 왜 전화 안 받아?

-6층 불 꺼져 있던데? 어젯밤에 술 마시러 갔어?

-어디 다녀와?


퇴근 후에도 끊어지지 않는 회사 때문에 스트레스가 끊이지 않았다. 기숙사를 나서면서 불을 켜두고 방에서는 때때로 불을 껐다. 회사를 속이는 거짓된 말과 행동으로 자신까지 속이며 이중적인 성격이 되어갔다. 웃음과 긍정을 잃어가고 무기력하며 퉁명스러워졌다. 무례한 질문에는 “네?”라는 반문과 함께 초점 흐린 눈을 보여줬다. 어디를 다녀왔든 '마트요'라고 대답했다. 모든 대답에 ‘더 이상 대화가 이어지지 않길 바라’는 태도를 비춰냈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는 법인데 떠날 수 없었다. 내일 채움 공제를 해지하면 재가입이 불가하고 그동안 적립해 온 정부지원금을 받을 수도 없다.


돈. 그것 때문에 그만두는 것을 주저했다. 힘들면 퇴사하면 되지 않느냐고? 누가 칼 들고 협박하냐고? 돈으로 스스로를 수없이 협박했다. 내일 채움 공제. 난 이 제도를 발목 채움 공제라고 부른다. 그래서 죄수가 된 기분이다. 죄수번호 191014. 입사했던 그날을 잊지 않으려 컴퓨터 비밀번호로 설정했었다. 3000만 원을 받기 위해 남은 2년간 어디까지 참을 수 있을까. 돈과 자유의지 사이에서 수없이 갈등하고 괴로워했다. 돈보다 중요한 것은 나라고 단언했었던 스물. 그때가 그립다. 돈보다 중요한 것은 나지만 나를 보살피기에 필요한 것은 돈이었다. 딜레마에 빠졌다. 행복하기 위해 돈을 벌지만 돈을 벌면서 행복하지 않은 현실. 그 평균대에서 무게중심을 잡아야 했다. 도중에 내리면 상처뿐이라는 생각에 악착같이 버텨냈다. 약속된 그날에 약속된 돈과 함께 훌훌 떠나는 상상을 반복했다.


마침내 그날. 작성해 뒀던 사직서를 제출했다. 말도 안 되게 퇴사해도 곧장 행복하지 않았다. 금융 치료가 되지 않아서 그런 걸까. 여행, 명품 가방, 자동차 등등 돈으로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상상하고 고민했다. 꼬리를 무는 생각 끝엔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다고 결론 내렸다. 3년간의 회사 생활을 보상받을 만한 것이 없었다. 기대했던 행복은 오지 않았다.


“힘들어하더니 끝까지 견뎠구나. 축하해”

“지금은 퇴사했어. 돈만 남고, 나를 잃어버린 것 같아.”

“그래도 돈은 남았잖아. 나는 그때 그만둔 거 아직도 후회 안 해.”


비슷한 시기에 가입했던 친구의 축하였다. 1년 전 중도 포기했다며 밝게 웃던 그는 여전히 같은 표정으로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후회..? 나는 조금 후회스럽다. 괜스레 시무룩해졌다.


지금은 또 다른 비슷한 회사에 다니고 있다. 적당한 월급, 아름다운 경주, 친절한 상사. 다른 점이라면 기숙사가 아닌 은행과 공동명의의 나의 집이 생겼다는 것이다. 내일채움공제만 끝이 나면 자유롭고 밝은 내 모습으로 돌아올 거라 기대했었다. 자유의지를 스스로 억압한 시간이 길었던 탓인지, 해가 바뀌어도 자연스러운 웃음은 지어 보이기 여전히 힘들다. 회사를 다니기 즐거워했던 모습은 더 오래된 지난날이 되었고. 회사에서의 삶은 여전히 잔잔하고 단조롭다.


돈과 나의 거리. 행복과 나의 거리. 돈과 행복의 거리. 그 모든 것.. 을 아직 못 정했다. 전과 같이 회사 출입문 가장 가까이 앉아 비슷한 하루를 보낼 뿐이다. 이전 회사에서 마주했던 나비가 떠올랐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고 자리를 지키던 나비 사진에 내가 있다. 나비야. 행복의 좌표가 정해지면 크고 화려한 날개로 꼭 힘차게 날아가야 해. 가만히 있으면 천적이 너를 물어갈지도 몰라. 꼭 날아야 해. 너무 늦지 않게.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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