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답지 않은 것이 없다.
경주의 봄에 있어서 아주 보통의 꽃은 벚꽃이다. 새해가 되며 가장 먼저 피어오르는 꽃은 따로 있겠지만. 경주의 봄을 인지할 즈음 가장 흔하게 펴있는 꽃은 벚꽃이지 않을까. 벚꽃이 피기도 전에 전국은 벚꽃 개화 시기가 적힌 지도를 공유하느라 바빠진다. 사람들은 부산을 시작으로 제주, 경주, 전주, 강릉, 서울까지 가장 예쁜 벚꽃을 볼 수 있는 날을 손꼽아 기다린다. 벚꽃이 만개하고 흩날리는 삼월, 혹은 사월은 봄에 어울리는 옷을 구매하거니 꺼내 입는다. 한 해가 지나가서 언제 아쉬워했냐는 듯 삼월을 반긴다. 두꺼운 겨울 이불을 걷어내고 꽃을 보기 위해 나갈 채비를 해야 하지만 아직 조금 추운 것 같다.
경주에는 관광하기 좋은 벚꽃명소가 많다. 보문정. 보문호. 대릉원 돌담길. 월정교 등등. 이 중 최고는 대릉원 돌담길을 꼽는다. 차량을 통제할 정도로 많은 관광객이 오는 곳인데. 경주스러운 돌담길과 한 품에 품어지지 않는 오래된 벚꽃나무들이 잘 어우러진 곳이다. 낮에도 밤에도 아름다운 곳이다. 나는 이곳을 좋아하지만 잘 찾지 않는다. 이유는 벚꽃나무만큼이나 사람이 많아서다. 부산에서 시기를 놓쳐 벚꽃을 보지 못한 사람들과 조금 일찍 보고 싶어 경주로 내려온 사람들이 한데 어우러져 북적거린다. 황리단길과도 인접해 있으니 사람들이 정말 많다. 자주 막히던 도로는 주차장이 되어버린다. 나에게는 경주가 사는 곳이고 그들에겐 경주는 여행지다. 그래서일까. 벚꽃놀이 중인 사람들은 대부분 아주 들떠있다. 연인. 가족. 친구 등등 다양한 대화주제로 왁자지껄 하다. 나는 재작년 대릉원 돌담길에서 벚꽃을 온전하게 보지 못했다. 그 대신 소란스러운 사람들을 보았다. 이후로 이맘때쯤이면 벚꽃 명소를 피해 생활한다.
가벼운 외투를 꺼내 입고 모자를 푹 눌러쓰고 혼자 집을 나섰다. 봄은 사람들이 찾는 곳에만 오는 것이 아니다. 이어폰의 음악이 한곡이 채 끝나기 전에 짚 앞 작은 개천가에 도착했다. 겨울 내내 맥주를 사러 가는 편의점 길에 있는 이 나무를 지켜봤다. 봄이 오기 전까지 어떤 나무인지 알지 못했다. 그저 수분기가 없고 앙상한 겨울나무였다. 그로부터 여러 날이 지나고 분홍색 꽃봉오리가 하나둘 맺히기 시작했을 때 벚나무 인걸 알아차렸다. 기온이 조금 따뜻해지며 꽃잎은 하나 둘 피기 시작했고, 이내 잔잔한 나뭇가지가 보이지 않을 만큼 꽃잎이 나무를 뒤덮었다. 경쟁하듯 먼저 피어난 꽃은 떨어져 있고, 비슷하게 피어난 꽃들은 하나둘 더해지니 더욱 풍성하고 아름답다. 아직 피지 않는 꽃봉오리를 보니 이 나무를 조금 더 오랜 시간 볼 수 있겠다 싶다.
내가 이 나무의 꽃잎이라면 나는 어디쯤에 있을까. 혼자 나온 탓인지 벚꽃구경을 얼마 하지 못하고 생각에 잠겼다. 나는 성질이 급해 먼저 피고 먼저 떨어진 꽃잎일까.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시기에 피어나 꽃잎들 속에 보호색을 띄고 흐드러지게 펴있는 꽃잎일까. 아직 피지 못하고 머물러 있는 꽃봉오리 일까. 어쩌면 꽃봉오리도 되지 못했으려나. 마땅히 해야 하는 일을 우선적으로 하고 온종일 해야 하는 일을 생각하는 걸 보면 성질이 급하긴 하다. 다수의 사람들과 있을 땐 나서지도 뒤처지지도 않는 중간을 차지하려 애쓴다. 연애든 친구든 관계에 있어서는 쉽게 마음을 열지 않으며 수동적이고 느리다. 누군가 나를 깊게 알고자 하면 건드러진 고동처럼 쏙- 제 집으로 숨어 버린다. 내 삶은 모든 벚꽃잎들과 닮아있다. 어떤 모습이든 그 모든 게 '나'이다. 남들과 다를지라도 틀린 구석이 하나 없기에. 아름답지 않은 것이 없다.
하얀색에 가까운 붉은 벚꽃 잎은 언제 봐도 이맘때와 참 잘 어울린다. 새로운 시작. 시작의 설렘.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모든 것이 떨어진다. 누구나 꽃이 활짝 핀 모습에 눈길을 둔다. 특별한 기념일엔 사랑하는 사람에게 피어있는 꽃을 선물한다. 반면에 지는 꽃을 보러 여행을 떠나는 사람은 없다. 생기를 잃어가는 꽃은 늘 아쉽고 쓸쓸하다. 지는 꽃을 가두려 꽃다발을 말리기도 하고 비누나 양초에 봉인하기도 한다. 하지만 어떤 것으로도 피어있는 꽃을 대체할 순 없다. 아쉬워하지 않기로 했다. 피고 지는 벚꽃 잎이 내 모든 삶과 닮아있기 때문이다. 떨어질 꽃도 다시 앙상해질 나무도 그 모습 그대로 의미가 있다. 한동안 출퇴근길이 즐거울 것 같다. 개화한 벚꽃을 구경하느라. 며칠 지나지 않아 벚꽃잎의 낙화를 구경하느라. 꽃잎이 다 떨어지고 또 사디 겨울이 온다고 해도 편의점 맥주와 함께 기다리다 보면 또 꽃이 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