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잘 살아 내고 싶은 마음

by 경이

다섯 살은 됐으려나. 아이가 뒷걸음질로 나아간다. 보이지 않는 곳을 향해 발을 힘껏 내딛는 아이의 얼굴이 해맑다. 곁에는 엄마가 있다. 엄마는 길에 아이가 걸려 넘어질 수 있는 돌이 있는지 살피고, 아이가 안전한 인도 안에서만 걸을 수 있도록 뒤를 봐 준다. 두려움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아이의 모습이 부럽다. 나도 옆에서 “더는 위험해, 여기까지만.” “그 방향은 아니야.”라고 말해 주는 사람이 있다면 한 치 앞을 모르는 시간으로 두려움 없이 발을 내디딜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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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6월 초였나, 5월 말이었나. 그날 밤 나는 8층 베란다에서 놀이터가 있는 아래를 빤히 내려다보았다. 여기서 뛰어내리면 저기까지 닿는 데 얼마나 걸릴까? 3초? 5초? 놀이터 바닥에 쓰러져 있는 내 모습을 상상했다. 머리에서 피가 얼마나 나오려나. 사람들이 바로 신고 안 해 주면 어쩌지?

문득 정신이 들었다. 나는 집 안으로 뒷걸음질 쳤다. 다리에 힘이 풀렸고, 그대로 주저앉았다.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왜 이러고 사니. 왜 이렇게밖에 못 사니. 무릎을 끌어안은 채 고개 숙인 나는 어깨를 들썩이며 한참을 울었다. 여느 때랑 별다를 건 없었다. 당시 나는 매일같이 울었다. 이것저것 던지다 울거나, 친구한테 하소연하고 울거나, 몸 안으로 술을 들이붓다 울거나. 울기 전 행동만 다를 뿐이었다.

요즘 심리 상담을 받고 있다. 상담사 선생님이 물었다. 그날 뒷걸음질 쳐서 주저앉았을 때 무슨 생각이 들었냐고. 나는 멍하니 상담실 천장을 바라봤다. 그날 무슨 생각이 들었을까.

“미안하다는 생각이요, 나한테. 그리고…… 살고 싶다는 생각이요.”

선생님이 잘했다고 했다. 그 힘으로, 그 용기로 살아가면 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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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안보다 바깥이 더 따뜻한 날이 찾아왔다. 집 주변 나뭇잎들이 빨갛고 노랗게 물들었다. 예쁘다. 이곳의 가을은 참 예쁘다는 걸 또 새삼 깨닫는다. 예쁜 것들을 보는 게 좋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쓸쓸해진다. 곧 겨울이 오겠지.

일을 쉰 지 1년 하고도 3개월이 돼 간다. 내가 다시 회사 생활을 할 수 있을까. 내가 다시 도서 편집자로 돌아갈 수 있을까. 다시 혼자만의 늪에 빠져 허우적댈 걸 생각하니 마음이 괴로워진다. 직업을 바꾸면 그나마 나을까. 아닐 거 같다. 아니, 아닐 게 분명하다.

직장인으로 지낼 때의 나에게는 직장인, 도서 편집자로서의 정체성밖에 없었다. 다른 정체성을 가질 만한 여력이 내게는 조금도 없었다. 일만으로도 내 삶은 너무 버거웠다.

나는 내가 만드는 책에 늘 내 모든 걸 쏟아부었다. 내 시간과 체력, 정신적 에너지 전부를. 프리랜서들은 작업비에 따라 작업물의 퀄리티를 달리한다고 한다. 작업비가 저렴하면 작업물의 퀄리티가 그만큼 낮고, 작업비가 높으면 그만큼 작업물의 퀄리티도 올라간다. 당연한 이치다. 하지만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궁금했다. ‘그런 조절이 어떻게 가능하지?’ 출판사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어떤 책은 빨리 나오는 게, 어쨌든 출간만 되는 게 목표인 책이 있다. 그런 책은 어쩔 수 없이 퀄리티를 낮출 수밖에 없다. 하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다. 그렇게 하는 것이 나에게는 불가능했다.

내 영혼까지 탈탈 털어 만든 작업물이 내 마음에 쏙 들었냐 하면 그건 또 아니다. 나는 내 작업물이 늘 불만족스러웠다. 불만족스러운 부분을, 나의 부족한 부분을 하나라도 더 발견하게 될까 봐 나는 내가 만든 책을 다시 펼치는 게 무서웠다. 완벽하게 해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완벽함’의 끝이 어디인 거지? 어디서 멈춰야 하는 건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새로운 일을 맡는 게 점점 더 힘들어졌다. 이 일을 하면서 나는 또 얼마나 나를 갈아 넣을까. 앞으로 벌어질 일들이 눈에 선했고, 그때마다 나는 공포 비슷한 것을 느꼈다. 일에서 뿐만이 아니었다. 전에는 아무렇지 않게 또는 조금 귀찮아하기는 해도 금방금방 해내던 일들도 조금씩 버거워졌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범위를 한정 짓기 시작했다. 지금의 나는 딱 이 만큼만 할 수 있어. 딱 이 만큼만 완벽하게 해낼 수 있다고. 그 범위는 점차 협소해져 갔고, 동시에 불안감은 커졌다. 얼마 있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완벽하게 구축하고 통제되고 있는 내 세계 안으로 예상치 못한 것이 불쑥 치고 들어올 때면 화가 났다. 예상치 못한 업무, 예상치 못한 지시, 예상치 못한 지적과 비판, 예상치 못한 사람 등등. 나의 완벽주의는 내 일은 물론 상사와의 관계 그리고 내 삶 전체를 뒤흔들었다. 흔들림의 강도는 점점 심해졌고 무자비해졌다.

내일이 오는 게 두려워졌다. 회사 문을 열지 못하고 근처에 숨어서 우는 날이 하루하루 쌓였다. 출근길 횡단보도 앞에 서서 차에 치이는 상상을 하는 날이 점점 많아졌다. 그리고 8층에서 저 아래 바닥을 내려다봤다. 지금의 이 늪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길은 죽음만이 유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심오한 고민 끝에 죽음을 생각해 낸 것도 아니다. 당시 나는 ‘죽음’이라는 단어를 일상 용어처럼 늘 마음에 품고 살았으니까.

나는 나를 살리고자 일을 그만두었다. 일을 그만둔 나에게 남은 것은 그동안 벌어 둔 돈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도서 편집자’라는 타이틀이 빠지자, 나는 스스로에게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되어 버렸다. 나는 나를 새로 정의할 수 있는 말을 찾으려고 애썼다. 동화도 써 보고, 그림도 그려 보고, 오픈 마켓도 운영해 보고, 편집 디자인도 배워 봤다. 그런데 잘 안 됐다. 그 어떤 것도 나를 정의할 수 있는 말로는 어울리지 않았다. 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도서 편집자는 돈을 많이 벌지 못한다. 박봉 업계 안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들지 않을까? 하는 일이 적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정말 오지게 많다. ‘뭐든지 다 해’를 의미하는 ‘MD’라는 말을 호로 붙일 수 있는 직업을 꼽으라면 나는 단연코 도서 편집자를 들겠다. 게다가 도서 편집자는 책 표지에 이름이 들어가지도, 아무도 보지 않는 판권 페이지에 그나마 작게 들어간 이름마저도 퇴사하면 빠지게 돼 어느 누구도 알아볼 수 없는, 알아봐 주지 않는 직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도서 편집자라는 타이틀을 정말 좋아했다. 사랑했다. 늘 자랑스러웠고, 멋져 보였고, 나에게 과분한 타이틀이라고 생각했다. 무려 책을 만드는 사람이 아닌가. 누군가의 마음을 울리고 일깨우고, 지식의 폭을 넓혀 주는 책을 만드는 사람. 글과 그림으로만 존재하는 작가의 작품을 책으로 만들어 사람들에게 내보이는, 작가의 작품이 얼마나 멋진 것인지 그 가치를 세상에 널리 알리는 사람. 나는 사람과 세상을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시키는 데 필요한 가치를 책에 담고 싶었다. 그런 책을 만들어 세상에 이로운 사람이 되고 싶었다. 내가 도서 편집자라는 사실은 나라는 존재에 대해 느끼는 자부심의 근원이자, 내가 ‘좋은 사람’이라는 걸 증명해 주는 증거와 같았다. 그때의 마음이 아직 내 안에 남아 있나 보다.

들판 위로 거대한 바람이 인다. 빠른 속도로 회오리 치는 바람이. 바람은 이것저것 집어삼키면서도, 어떤 건 뱉어 낸다. 또 어떤 건 바람 속에 딸려 들어가는 듯하다 바람의 외벽에 튕겨 나온다. 나는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내가 바로 그렇게 튕겨 나온 돌 같다는 생각. 그렇게도 동경하던 도서 편집자 세계에 진입하려고 했지만 결국 제대로 들어가지 못하고 튕겨 나온 돌. 가야 할 곳을 찾지 못한 채 데굴데굴 굴러다니는 돌. 나는 언제까지 이렇게 굴러다닐까. 내가 멈추는 곳은 어디일까. 걱정이다. 매서운 바람이 부는 겨울이 곧 올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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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직장 생활을 할 엄두가 나질 않는다. 프리랜서로 일할 깜냥은 못 되는 거 같고. 내 마음 안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직장인으로 돌아가는 일이 불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심리 상담을 받기 시작했다.

상담사 선생님에게 말했다. 나는 직장에 다닐 때 늘 내 쓸모에 대해 생각했다고. 내가 쓸모없는 사람인 거 같아서 회사를 나왔다고. 선생님이 물었다. 나에 대한 상사들의 평가가 어땠느냐고. 나는 곰곰 생각하다 대답했다.

“일정을 잘 못 맞추는 것에 대해 혼날 때가 많았어요. 그리고…….”

나는 더 곰곰 생각하다 덧붙였다.

“회사를 나올 때 저는 다 자의로 나왔어요. 상사 분들이 늘 잡기는 했는데…….”

스스로 내 쓸모없음에 대해 털어놓고도 너무나 부끄러워서 조금이나 면피하고자 한 말이기는 했으나, 사실이었다. 선생님이 말했다. 회사는 철저한 이익 집단인데, 내가 정말 쓸모없는 사람이었다면 나를 왜 붙잡았겠느냐고.

인스타그램을 보다가 이런 내용의 게시물을 보았다. 내가 회사에서 일을 잘하는지 여부는 퇴사한다고 말할 때 가장 정확히 알 수 있단다. 그동안 수고 많았다, 잘 챙겨 주지 못해 미안하다며 좋은 말만 한다면 내가 일을 못한 거고, 뭐가 힘든 건지 이야기나 한번 해 보자며 붙잡는다면 그래도 내가 1인분은 했다는 뜻이란다.

상담사 선생님의 말도, 인스타그램 속 글도 어쩌면 위로에 지나지 않는 말일 수 있다. 나도 안다. 나는 일을 잘하지 못했다. 상사들이 나를 붙잡았던 이유 중에는 당장 경력자 구하는 게 쉽지 않으니까, 게다가 어린이책 편집자는 더 구하기 힘드니까라는 점도 컸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래도 말이다, 나 적어도 1인분의 몫은 해냈던 거 아닐까. 스스로를 망가뜨려 가며 일하기는 했어도, 회사 입장에서는 ‘쟤, 제 할 몫은 해내고 있네.’라고 여기지 않았을까?

지난여름 완벽주의자 모임에 나갔다. 내가 일하면서 좋은 성과를 내도 그 성과가 내 실력으로 정직하게 얻은 게 아닌, 행운이 따라서 얻은 거 같아 불편했다는 내 고백에 한 분이 말했다. “그 행운, 만약 실력이 정말 없는 사람이었다면 행운이 찾아왔어도 못 잡았을 거예요. 그래도 어느 정도 실력이 있으니까 행운을 잡은 거죠.”

내가 일할 때 스스로에게 이런 말을 해 줬더라면, 나의 노고를 스스로 조금이라도 인정해 줬더라면, 나를 위로하는 말을 한마디라도 건넸다면 나는 직장에서 조금 더 오래 버틸 수 있었을까. 도서 편집자 일을 그만두지 않을 수 있었을까? 책을 만들며 지냈던 시간이 조금은 덜 고통스러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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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 상담을 받으면서 ADHD 의심 소견을 들었다. ADHD 환자는 심하게 정리를 못하고 덤벙대는 사람 아닌가? 나는 ‘꼼꼼하다’는 말만 들었지, 살면서 단 한 번도 ‘덤벙댄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는 사람이다. 내 집은 정리가 지나칠 정도로 완벽하게 돼 있어 문제이지, 어질러져 있는 것과는 거리가 아주아주 먼데…….
ADHD를 가진 사람은 둘로 나뉜단다. 집 안이 아주 어질러져 있거나 완벽하게 정리돼 있거나. 조용한 ADHD의 사람은 과거 자신의 실수에 대해 큰 수치심을 느껴서 더는 실수하지 않으려고 자신을 강하게 통제하게 되고, 강박적인 행동을 하기도 한단다. 그리고 이어진 증상 설명이 모두 나에게 들어맞았다.

선생님이 말했다. 자신이 이야기하고 있을 때 내 눈을 보면 잠시도 생각이 멈추고 있지 않는 게 눈에 보인다고. 아……, 들켰네. 나는 자기 조절 능력이 부족하다. 전부터 알고 있었다. 선생님은 스스로 그 사실을 알기 때문에 강박적으로 행동하는 것일 수 있다고, 내 완벽주의의 원인이 어쩌면 ADHD에 있을 수 있으니 병원에서 검사를 받아 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말했다. 사실 나에게 ADHD 이야기를 꺼낸 사람이 상담사 선생님이 처음은 아니다. 다니던 정신과의 주치의 선생님도 지난해 나에게 ADHD 검사를 받아 보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때 주치의 선생님에게 말하지는 않았지만, 나는 ‘내가? 정리 완벽하게 하고 약속 한번 까먹은 적 없는 내가? 집중력이 좀 떨어지기는 해도, 내가 어딜 봐서 ADHD가 의심된다는 거야?’ 라고 생각했고, 그날 이후 나는 병원에 가지 않았다.

지난주 다시 병원에 가서 주치의 선생님을 만났다. 그동안의 일을, 병원에 발길을 끊게 된 이유에 대해서도 솔직하게 말씀드렸다. 말하면서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선생님이 화내시면 어쩌지? 전문가인 자신을 왜 믿지 못하느냐며 불쾌해하시면 어쩌지?

선생님은 온화한 얼굴로 말했다. 다시 오기로 결정하기까지 고민이 많았을 텐데, 잘 생각했다고.

어제 ADHD 검사를 받았다. 콘서타 18mg을 처방받았다. 약 먹는 시간을 알람으로 맞춰 두고, 오늘 아침 처음 약을 먹었다. 효과가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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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 출판사에 입사 지원서를 냈다. 다시 도서 편집자 자리이다. 상담사 선생님에게 걱정을 털어놓았다.

“입사 지원서를 내기는 했는데, 무서워요. 제가 다시 직장 생활을 할 수 있을까요? 다시 회사에 다니면 또 같은 늪에 빠져 허우적거릴 거 같은데…….”

선생님은 아직 지원서만 냈을 뿐인데, 왜 일어날지 안 일어날지도 모르는 먼일을 지금부터 걱정하느냐고 말했다. 그리고 잘했다고 칭찬해 주셨다. 회사에 다니게 된다면 어쩌면 다시 같은 어려움을 겪게 될 수 있지만, 어려움을 대하는 그때의 나는 과거의 나와 다를 거라고 말해 주셨다. 맞다. 맞는 말이다. 지금의 나는 나를 살리고자 그 방법을, 옳은 방법을 적극적으로 찾고 있고 실천하고 있으니까. 과거의 나는 나를 어떻게 살려야 할지 몰랐고, 도망치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잘 살고 싶다. 이제 더는 어디로도 도망치고 싶지 않다. 나의 세계, 나의 우주를 건강하게 돌보며, 정말 잘 살아 내고 싶다. (24. 10.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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