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좋은 어른’이 되고 싶은 마음

드라마 <나의 아저씨>, 2018

by 경이

드라마 <나의 아저씨>는 소녀 가장으로 자란 어린 ‘지안’과, 지안을 도와주는 어른인 ‘동훈’의 이야기다. 지안은 엄마가 남긴 빚을 대신 갚으며, 엄마 대신 빚쟁이들과 폭력에 시달리며 그리고 장애가 있는 할머니까지 혼자 책임지며 가혹한 삶을 살았다. 지안은 이제 겨우 스물한 살이다. 갚아도 갚아도 끝이 없는 빚의 굴레와 가난에서 지안은 아직도 빠져나오지 못했고, 오랫동안, 아니 어쩌면 영원히 이 지옥을 벗어나지 못할 것만 같다.

지안의 몸은 왜소하고 파리하다. 핏기 없는 얼굴에서는 아무런 감정이 보이지 않고, 한번씩 내뱉는 말은 늘 날이 서 있다. 자신을 우습게 보지 말라는 경고인 것 같기도 하고, 자신의 곁에 아무도 오지 말라는 신호인 것 같기도 하도, 누군가가 자신에게 상처 주는 일을 애초에 차단해 버리겠다는 의지인 것 같기도 하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직장에서 지안에게 관심을 보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단기 계약직인 지안에게 상냥하게 대하거나 인사 한마디 건네는 일도 없다.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사람처럼, 어쩌다 지안의 존재를 알아채도 함부로 대해도 되는 사람처럼 지안을 대한다.

그러던 어느 날 지안은 회사 대표 이사와 거래를 한다. 같은 부서의 부장인 동훈을 회사에서 잘리게 해 주는 대가로 거금의 돈을 받기로 한다. 동훈은 대표 이사가 눈엣가시처럼 여기는 인물이다. 거래를 먼저 제안하는 지안의 얼굴은 무심하다. 그까짓 일이 뭐 대수냐는 듯 말하며 가볍게 웃는 지안의 모습은 섬뜩하기까지 하다.

지안은 밥을 사 달라며 동훈에게 접근한다. 동훈은 지안이 갑작스럽고 부담스럽다. 하지만 지안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한다. 앞서 지안에게 빚진 일이 있기도 하고, 사실 그 전부터 내심 지안이 신경 쓰였기 때문이다. 탕비실의 믹스 커피를 훔쳐 가던 지안의 모습이, 추운 겨울날 바지와 신발 사이로 드러난 시린 발목이, 두꺼운 옷 한 벌 없는 옷차림이, 누군가에게 맞아 생긴 듯한 상처들이 동훈은 신경 쓰였다.

동훈은 지안과 밥 먹는 시간이 쌓일수록, 지안이 살아온 시간을 하나둘 알아 갈수록 지안에 대한 안쓰러움이 커진다. 어린 나이에 기댈 곳 하나 없이 지옥을 버티며 살고 있는 지안이 가엾다. 지안은 그런 동훈의 마음이 불쾌하다. 네까짓 게 뭔데 날 동정하냐는 듯 화가 치민다. 하지만 지안은 곧 깨닫는다. 동훈은 지안의 처지를 진심으로 이해하고 존중하고 있다는 걸. 지안과 마찬가지로 지옥을 버티며 살고 있는 가엾은 사람이란 걸.

지안은 동훈의 퉁명스럽지만 따뜻한 친절에 점점 익숙해져 간다.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니게 돼.”라는 동훈의 말에 마음이 움직인다. 족쇄처럼 자신을 옴짝달싹 못 하게 하는 살인의 기억, 살기 위해 저질렀던 그날의 실수에서 벗어나 자신도 어쩌면 ‘사람답게’ 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작은 희망을 품는다.

나는 동훈을 보면서 영화 <벌새>의 ‘영지’가 생각났다. 영지는 영화의 주인공 열네 살 ‘은희’에게 한문을 가르치는 학원 선생님이다. 영지는 은희에게 한문만 가르쳐 준 게 아니었다. 아빠와 오빠의 폭력에 무방비로 노출된 은희에게 “너 맞고 다니지 마.”라고 말해 주며, 스스로를 지키고 사랑하는 마음을 알려 줬다. 기댈 곳이 되어 주며 괴로운 은희의 마음을 어루만져 줬다. 은희는 그런 영지 덕분에 더욱 단단한 사람으로 성장한다. 지안에게 동훈은 영지와 같은 사람이 아니었을까. 세상에는 이런 좋은 사람도 있구나, 세상은 어쩌면 살 만한 곳일지도 몰라, 하는 희망과 기대를 갖게 해 준 사람. 삶을 버틸 힘을, 살아갈 힘을 심어 준 사람.

동훈이나 영지에게 지안이나 은희는 그저 스쳐 지나간 수많은 아이들 중 하나였을 수 있다. 그들이 베푼 친절은 어쩌다 내준 마음의 한 조각이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지안과 은희는 그 한 조각의 마음에서 진심을 보았으리라. 아무런 사심과 가식 없이 나를 걱정하고 위하는 마음을, 진정으로 나를 이해하고 가엾게 여기는 마음을. 나는 그 진심이 지안과 은희를 울렸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 진심이 동훈과 영지를 죽을 때까지 잊을 수 없는 어른이자 은인으로 남게 했으리라 확신한다.

내 삶에는 사는 게 참 거지 같다고 생각하게 한 어른이 대부분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도 종종 좋은 어른을 만났다. 마냥 보잘것없어 보이던 나도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을 알려 준 초등학교 담임 선생님, 나이프를 쓸 줄 몰랐던 나에게, 뭐든지 혼자서 해내야 했던 나에게 말없이 돈가스를 잘라서 건넨 중학교 과학 선생님, 페미니즘에 처음 눈뜨게 해 준 중학교 국어 선생님, 맞아서 생긴 멍을 어쩌다 생긴 거냐며 끈질지게 물어봐 준 미술 학원 선생님, 삶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는 일의 중요함과 즐거움을 알려 준 과장님, 내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사람같이 여겨져 울고 있을 때 그렇지 않다고 말해 준 팀장님과 부장님……. 이들이 있었기에 내가 지금 이 정도나마 사람 구실을 하면서 살고 있는 게 아닐까. 이들이 베푼 다정한 마음 덕에 내가 아직 죽지 않고 삶을 버티고 있는 게 아닐까.

나도 어느덧 삼십 대 중반의 나이가 되었다. 지금의 나는 어떤 어른일까. 몸만 어른이지, 마음은 아직도 어른이 한참 덜 된 거 같다. 아니, 어쩌면 나쁜 어른이 된 것 같기도 하고.

이번에 <나의 아저씨>를 보기 전, 유튜브에 떠돌아다니는 짧은 클립 영상들로 이 드라마를 본 적이 있다. 클립 영상으로만 봤을 때 나는 <나의 아저씨>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불우하게 자라 인성이 삐뚤어진 지안이 선량한 시민인 동훈을 협박하고, 양심의 가책 하나 없이 동훈에게 밥을 사 달라고 하는 모습이 너무 뻔뻔해 보였다. (무슨 밥 맡겨 놓은 것도 아니고. 요즘 밥값이 얼마나 비싼데.) 불우하게 자랐으면 양아치같이 굴어도 되는 건가? 동훈은 파렴치한 지안에게 왜 당하고만 있는 거지? 뭐 이쁘다고 지안을 불쌍하게 여기고 도와주는 거지? <나의 아저씨>를 정주행하고 있는 친구가 드라마를 재미있게 보고 있다고 하기에, 나는 “그 드라마 별로.”라고 말했다. <나의 아저씨>를 별로라고 생각하는 이유를 늘어놓으며, 너도 그 드라마를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식의 뉘앙스로 말한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드라마를 처음부터 끝까지 보고 난 지금은 생각이 다르다. 지안이 자라 온 환경이 얼마나 잔인했는지, 지안이 처한 상황이 얼마나 절박한지 알고 나니 지안의 행동이 이해됐고, 동훈의 마음이 이해됐다. 단편적인 부분들만 보고서 작품에 대해 잘 아는 양 평가했던 내 모습이 부끄러워졌다.

내가 정말 겁이 나는 건 이런 행동을 나보다 어린 친구들한테도 했을까 하는 것이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다 아는 것처럼 함부로 떠드는 것, 자신의 생각과 가치관을 남에게 강요하는 것은 내가 정말 싫어하는 어른의 모습이다. 그런 어른의 모습을 가까이서 지켜보면서, 역겨운 폭력을 지속적으로 당하면서 나는 다짐했다. 절대 당신 같은 어른이 되지 않겠다고. 그런데 설마 나, 내가 끔찍이도 싫어하는 어른이 되어 버린 걸까?

<나의 아저씨>를 보면서 처음에는 지안이 부러웠다. 나도 동훈처럼 좋은 어른을 만났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지만 곧 내 삶에 있어 준 좋은 어른들을 떠올리며, 그들이 나눠 준 마음을 되짚으며 나는 꽤 운이 좋은 사람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동훈처럼, 나의 좋은 어른들처럼 나도 좋은 어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안은 동훈의 바람대로 편안함에 이르렀을까? 어떤 어른이 되어 살고 있을까. 지안도, 나도 좋은 어른으로서 잘 살면 좋겠다. 좋은 어른들이 내준 따뜻한 마음의 씨앗을 잘 가꿔, 언젠가 다른 이에게 위로와 용기를 나눠 줄 수 있는 그런 진정한 어른으로서 말이다. (24. 6.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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