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원래 이 노래를 좋아하지 않았다. 올해 초 탄핵 정국 때 자꾸 듣다 보니, 나도 모르게 호감(?)이 생겼다. 이 노래를 부르며 행동한 시민들이 너무 멋지고, 그들에게 감사해서.
그 뒤 이 노래가 더 좋아진 계기는, 노랫말에 위로받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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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나는 마음이 많이 성장했다. 그만큼 많이 힘들었다. 짝사랑했던 사람을 잊지 못해서 계속 떠올리고, 또 혼자 상처받고, 혼자 착각하고 설레발쳤던 내 모습에 부끄러워지고, 그리고 다시 그 사람을 떠올리고.
나는 지난해 스스로가 정말 재미있어하는 일을 찾았다. 아주 잘하는 건 아니지만 재능도 있는 거 같고, 디자인이라면 내가 나를 해치지 않으면서 지속 가능하게 할 수 있을 거란 확신이 들었다. 올해 디자인을 더 깊이 있게 배우면서, 다시 사람들과 어울리며 일할 용기가 ‘마침내’ 났다. 하지만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은 없는 거 같았다.
이 마음은, 이 힘든 시간은 언제쯤 끝날까. 끝나기는 할까? 마음을 다잡지 못하는 내가 한심했다. 밤마다 울었다. 스스로를 괴롭히는 내가, 여전히 나를 미워하는 내가 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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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도 눈을 떠 울었다. 그리고 간신히 몸을 일으켰다. 화장실 거울 속 눈이 퉁퉁 부은 나를 보며 말했다. “진심이어서 그래.”
그 사람한테 나는 진심이었고, 지금 배우고 있는 일에 대해서도 진심이어서 그런 거다. 그래서 더 잊지 못하고, 그래서 더 서운한 거다. 진심을 다한 게, 뭐 나쁜가? 다시 눈물이 쏟아졌다. 내가 가여워서, 나한테 미안해서. 나를 더 잘 돌보고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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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전하다. 문득문득 그 사람을 떠올리다 웃고, 운다. 아무것도 예측 안 되는 미래 때문에 불안해서 또 운다. 하지만 이제 울고만 있지 않는다. 누워만 있지 않는다. 몸을 일으켜 오늘을 산다. 오늘을 살아 낸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아. 느려도 괜찮아. 앞으로 나아가려고 오늘도 걸음을 뗐잖아. 그게 중요한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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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랫말처럼 나는 ‘희미한 빛’을 쫓아가고 있다. 그 빛을 쫓아가다 보면 언젠가 더는 그 사람 생각 안 하고, 불안해하지 않을 수 있지 않을까. 아니지, 그 사람 생각 좀 하면 어때서! 불안해할 수도 있는 거지, 뭐.
다행이다. 올해 초보다, 지난달보다 나는 조금 덜 슬퍼진 거 같다. 내가 조금 더 좋아진 거 같다. (25. 12.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