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사히카와 단상

홋카이도에 위치한 도시 아사히카와, 2019년 7월의 기억

by 김우중


지금까지 홋카이도는 2017년 1월 겨울에 한 번, 2019년 7월 여름에 한 번 총 2번 가 보았다. 처음엔 많은 눈들이 보고 싶어 갔는데, 막상 가보니 너무 좋아서 또 오고 싶었고, 여름에는 또 다른 매력이 있다고 들어 여름에 또 갔다. 두 번째로 홋카이도에 갔을 때는 처음에 가보지 않은 곳 위주로 가보려 했다. 어디로 갈까 고민하다가 찾은 곳, 아사히카와 시(旭川市)다.


홋카이도를 한 번쯤 여행해본 사람이더라도 아사히카와는 생소할 것이다. 보통 홋카이도 하면 삿포로, 오타루, 하코다테를 많이 가니까. 우리 부부도 처음부터 아사히카와를 가려던 것은 아니었는데, 겨울에 가 보았던 비에이-후라노를 한번 더 들르고, 렌터카를 타고 다시 삿포로로 돌아오려는 동선을 짜다 보니 아사히카와를 거치지 않을 수 없었다. 거기에 아사히카와는 동물원이 유명하다고 해서, 그럼 한번 가보자 하고 1박 할 숙소를 잡았다.


아사히카와는 홋카이도 중앙에 있고 주변에는 산들이 둘러싼, 분지형 평야 가운데 위치해 있다. 그러다 보니 강이 모이고, 평야가 드넓다. 자연스럽게 교통의 중심지가 되어 홋카이도 내에서는 삿포로에 이어 2위 인구를 자랑하는 도시다. 하지만 관광객, 특히 외국인 관광객에게는 그다지 유명하지 않은데, 그래서 더 홋카이도 특유의 느낌이 남아있다. 좋게 말하면 현지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를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거고, 나쁘게 말하면 관광지 특유의 세련된 맛은 없다고 할까. 하지만 그래서 더 좋았다.


관광지 특유의 세련된 포장이 없어서 좋았다는 건, 필자에게 한정된 일일지도 모른다. 남쪽으로는 오키나와에서 후쿠오카, 교토, 오사카, 도쿄 등을 거쳐 북쪽으로는 삿포로까지 일본 전역을 관광으로만 10번 드나들다 보니, 오히려 관광지스럽지 않고 그 지역 특유의 모습이 남아있는 곳이 더 기억에 남는다. 아사히카와가 그 어느 곳보다 그랬다.


아사히카와를 간 가장 큰 이유는 동물원 때문이다. 그렇게 크지도 않고, 일본 사람들 기준으로도 외진 곳에 위치한(일본 최북단) 아사히야마 동물원은, 한때 손님이 없어 폐업 위기를 맞았다. 그런데 동물원 직원들로부터 아이디어가 나왔고, 그 아이디어는 ‘동물의 생태 및 행동방식에 맞추어 동물들이 머무는 공간을 개조’하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물개는 수직으로 헤엄치는 습성이 있는데, 이를 따라 수직의 투명 튜브를 설치했다. 물개가 수직 튜브를 지나가면 관광객들은 바로 옆에서 위아래로 움직이는 물개를 볼 수 있는데, 관광객에게도 물개에게도 좋으니 일석이조다. 이런 식으로 펭귄 관은 자유롭게 헤엄치는 펭귄들을 터널 수조에서 관찰할 수 있고, 북극곰 관에서는 물로 다이빙하는 북극곰을 바로 옆에서 볼 수 있다. 동물을 조금 더 배려하면 관광객도 즐거운, 더 좋은 동물원이 될 수 있는 것이 핵심이다. (동물 입장에서는 동물원이 없어져야 한다는 입장은 논외로 하더라도) 이러한 동물 생태에 맞는 동물원 리모델링이라는 아이디어도 좋았고, 망해가는 동물원이 우리 같은 외국인 관광객도 오는 곳으로 변모했다는 점도 극적이어서, 한 번은 꼭 가보고 싶었다.

직접 가보니 명불허전이었다. 규모가 큰 곳은 아니지만 알차고 볼게 많았다. 동물원은 어릴 때부터 몇 번 가보았지만, 그렇게까지 가까이서 펭귄, 북극곰, 물개, 원숭이와 퓨마를 본 적은 없었다. ‘피딩 타임’이라고 해서, 먹이 주는 시간이 정해져 있는데 이것만 잘 맞추면 활발하게 움직이는 동물들을 1~2미터 앞에서 볼 수 있었다.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좋아했는데, 필자가 갔던 때가 평일이어서 그런지 동물원에는 노인들이 더 많았다. 노령화 사회의 단면인가도 싶었는데, 노인분들은 어린아이처럼 신나 하면서 동물들을 구경했다.


삿포로에만 있을 때는 몰라도 아사히카와를 비롯한 홋카이도 들판을 차를 타고 다니다 보면, 상당히 미국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오키나와처럼 미군 부대가 오래 주둔해서 느껴지는 미국스러움이 아니라, 서부개척시대를 거친 미국의 한적한 교외 도시를 볼 때 느껴지는 미국스러움 말이다. 실제로 홋카이도는 일본 사람들 입장에서 신대륙이나 마찬가지였다. 살고 있던 원주민 아이누족은 미국 인디언처럼 관광지 내지 박물관 자료로만 남아있고, 이제는 터전을 잃었다. 미국 중서부의 너른 들판에 비할 바는 아니나, 국토 대부분이 산지인 일본에서는 손에 꼽히는 평야 지대가 홋카이도에 있다. (그래서 홋카이도는 일본 내에서도 쌀을 비롯한 농산물 생산지로 유명하다)

메이지 시대부터 ‘식민지화’ 내지 ‘개척’이 시작되었는데, 메이지 정부는 1869년에 ‘홋카이도 개척사’라는 국영회사를 설치하여 개발을 강력하게 추진했다. 우리가 즐겨먹는 삿포로 맥주도 정부 주도하에 홋카이도 개척사가 독일의 기술지원을 받아 만들어낸 맥주다. 삿포로 맥주의 ‘별’ 모양도 그 당시 홋카이도 개척사의 마크였고, 현재 홋카이도 주기도 이것을 따서 별 모양이다.


사실은 이 말을 하고 싶어서 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 2019년 7월 4박 5일에 이르는 홋카이도 여행 중에서 문득 이 순간이 기억이 나서 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 아사히카와에 예약한 숙소에 짐을 풀고 저녁을 먹은 뒤(유명한 된장라면집이 있는데 정말 맛있다), 주변을 산책하다 공원을 하나 발견했다. 구글 지도로 보니 토키와 공원이 있었는데, 아사히카와에서 가장 큰 공원이라기에 가 보았다.



과연 크고 작은 연못과 나룻배, 정자, 큰 나무와 새들이 노니는 고요한 곳이었다. 평일 저녁 먹을 시간이어서 그런지 사람도 별로 없었다. 해가 지고 있었고, 숲은 조금씩 주황빛으로 물들고 있었다. 공원을 계속 걷다 보니 강변이 보였다. 강둑 너머로 노을빛이 비쳤다. 강둑으로 올라가 보기로 했다. 강둑을 오르자 너른 강이 있었고(찾아보니 이시카리 강이라고), 양 옆으로 깔끔하게 정리된 둔치가 있었다. 발갛게 타오르는 해가 지면서 서쪽 하늘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주변에는 자전거를 타는 사람 한 명, 벤치에 자전거를 놓고 앉아서 쉬는 할아버지 한 명이 있을 뿐이었다. 그 고요함, 붉은 노을, 적당한 온기의 공기와 습도, 아내와 손을 잡고 걸었던 산책길에 우연히 볼거리를 마주했다는 기쁨, 낯선 곳에서 느껴지는 기분 좋은 긴장감, 그 긴장감을 한결 씻겨주는 한가한 공원의 풍경. 그것들이 문득 떠올랐다.



스마트폰 사진첩을 뒤적이며 떠올려 보니 그때가 작년 7월 8일. 이맘때쯤이었다. 어쩌면 행복한 추억들은 내 몸 곳곳에 남아서 겨울잠을 자다가, 그 계절이 돌아오면 눈 녹듯 스며 나와 나에게 그 풍경을 다시 한번 보여주는 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게 내가 여행을 떠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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