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리이와 팝아트

교토 신사에서 앤디 워홀을 떠올리다

by 김우중
센본도리이(千本鳥居). 영화 게이샤의 추억(2005)에 나왔고, 외국인에게 가장 인기많은 일본의 관광명소 1위(from 트립 어드바이저)다.

센본도리이(千本鳥居). 1000개의 도리이가 한 줄로 늘어선 이 광경을 보기 위해 교토에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제로 보면 사진보다 더 멋지다. 과연 그 기대에 값하는 광경이었다. 주홍색의 도리이는 선명하게 빛을 뿜고, 삿된 모든 것들을 내쫓을 듯했다.

센본도리이는 2m 정도 되는 도리이가 1000개도 넘게 늘어서 있는 길을 말한다. 농경의 신 이나리를 모시는 이나리 신사의 총본산으로, 교토에 위치한 후시미 이나리 타이샤 신사(伏見稲荷大社)에 있다. 처음 보면 무척이나 생경하고 강렬한 색채에 눈이 혼란스러울 정도다. 그곳에 들어서면, 머리에 닿을 듯 낮은 도리이들이 늘어서서, 마치 터널을 지나는 듯도 하고, 다른 시공간으로 향하는 차원문 같기도 하다.

이 도리이들은 이나리稲荷 신사와 이나리稲荷 산 정상을 잇는 길에 늘어서 있는데, 정상까지 올라갔다 내려오면 3시간은 족히 걸린다. 그렇게 긴 산길에-모든 구간에 있는 것은 아니지만- 도리이가 저렇게 빽빽이 나 있다. 경이로울 밖에 없다.

도리이가 난 길을 다시 걸으면 재수가 없다는 속설이 있어서, 한번 올라갔으면 다른 길로 내려와야 한다. 다시 말하면, 저 주황색 터널에 발을 들이면 무조건 전진해야 한다는 것이다. 되돌아가려고 뒤도는 순간 이미 걸은 길을 다시 걸은 셈이니까. 우리의 나이먹음과도 같다. 좌측과 우측, 갈림길도 없이 오직 직진뿐이다.

도리이란 무엇인가. 일본 토속신앙인 신토(神道)에서, 불경한 곳(일반적인 세계)과 신성한 곳(신사)을 구분 짓는 경계이다(출처 나무위키). 불교에서 부처님의 세계와 일반적인 세계(사바세계)의 경계를 이루는 천왕문(天王門)과도 같다. 그렇다면 터널과도 같다는 감상은 실제로도 맞다. 인간의 세계에서 신의 세계로 통하는 차원문이기도 한 것이다.

위의 정보들은 이곳을 다녀온 뒤에 인터넷에서 찾은 것이고, 이나리 신사에 갈 당시에는 오직 주황색 도리이의 시각적인 아름다움을 보러 갔다. 과연 새벽 6시에 도착했는데도, 이미 몇몇 외국인들이 삼각대에 사진기를 놓고 열심히 도리이들을 찍고 있었다.

처음에는 잠깐만 보고 가려했는데, 도리이들을 보며 걷다 보니 1시간 가까이 산을 올랐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도리이는 보이지 않았다. 그냥 주황색 기둥 문일뿐이었다. 그것도 하나같이 똑같은. 그렇게 걷다 보니 문득, 앤디 워홀의 '마릴린 먼로 1967'이 떠올랐다.

앤디 워홀, 마릴린 먼로 1967

똑같이 생긴 사물이 여러 개 있고, 그것을 반복해서 본다고 치자. 아무리 아름답고 멋있는 사물이라도 수십 개, 수백 개를 계속 보다 보면, 시각적 자극은 질리고, 지루해지기 마련이다. 같은 겉모습을 가진 사물이 수백 개씩 있다면, 그 겉모습은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한다. 주황색 도리이가 그랬다.

1시간 동안 걸으면서 본 도리이가 그랬고, 앤디 워홀의 마릴린 먼로가 그랬다. 마릴린 먼로의 얼굴을 색깔만 다르게 해서 바둑판처럼 늘어놓은 그림, 그 그림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고민하던 때가 있었다. 미술 문외한이 알 리 없었고, 그러다 잊었다.

그런데 이 그림이, 도리이가 늘어선 산길을 걷다가 생각났다. 혹시 앤디 워홀의 그 그림은, 겉모습에는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게 아니었을까. 구글링 해보니, 비슷했다. 대중들이 생각하는 마릴린 먼로의 이미지와 실제 그녀의 내면은 다른 것이었음을 말하고 싶었다고.

산 중턱까지 가서, 산 밑으로 펼쳐진 교토의 전경을 한번 눈에 담고, 다른 산길로 내려왔다. 이번에는 도리이가 하나도 없는 길로 말이다. 주변에 펼쳐진 낙엽과 나무, 지저귀는 새들을 보면서 걸었다. 그중에는 어느 하나 똑같은 것이 없었고, 모든 것에 의미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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