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가사키, 광화문, 그리고 동대문
예전에 가족과 함께 나가사키에 간 일이 있었다. 제2차 세계 대전 막바지에 미국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투하한 일이 있다. 일본은 원폭이 투하된 자리를 평화의 공원으로 꾸며놓았다. 원폭이 터진 지점에는 검은 돌로 만든 탑이 놓여 있었다. 조경이 아름다운 공원이라지만 그 탑 앞에 서면 왠지 모르게 섬뜩했다. 그들은 그 자리에 방사능 오염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땅에 흙을 덮었단다. 그리고 원폭 피해 당시의 땅과, 새로 흙을 덮어 돋아둔 땅의 지층 일부를 유리판으로 드러내 전시하고 있었다. 계단으로 내려가며 그 지층들을 살폈다. 흡사 어릴 적 개미집을 구경하는 느낌이었다. 지층을 본다는 것은 세월을 본다는 것이었다. 보이지 않는 세월이 저렇게 단단하게 쌓이고 다져지고 굳어져 층층이 땅을 이루고 있었다. 어쩌면 세월은 보이는 것인데, 인간이 그 세월을 보기에는 너무 짧게 사는 지도 몰랐다.
지층은 우리가 사는 땅이 예전에 사람들이 살던 땅이 아니었음을 보여주기에 신기하다. 어디었던가. 광화문 옆을 지나다가도 지층을 보았다. 투명한 유리판 바닥으로 예전의 땅을 보여주었는데, 예전 조선시대 초기의 땅과 후기의 땅이 층으로 나뉘어 있었다. 동대문 역사공원 복원 현장에서도 그런 지층을 보았다. 우리가 살던 땅은 조선시대의 땅보다 높았다. 과거의 땅과 지금의 땅이 달랐다니, 땅이 새롭게 보였다.
멜론 플레이어를 틀었는데, 마땅히 들을 만한 노래가 없었다. 밑으로 내리고, 또 내려보았다. 층층이 엮인 노래들의 목록을 내리고 또 내리다 보니, 새로운 층이 있었다. 내가 예전에 즐겨듣던 음악들. 다시 들어보니 알겠다. 그때는 내가 많이 슬퍼했음을. 그때는 내가 이별했었고, 그때는 내가 늦은 봄을 지나고 있었음을. 세월의 지층은 나가사키와 광화문, 동대문 역사공원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우습게도 나의 플레이 리스트에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