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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우중 Dec 23. 2020

일희일비 하기

행운이 오면 이틀 기뻐하고, 불행이 오면 하루 슬퍼하자.

 한 달 전에 mbc 라디오 스타(토크쇼)에서, 배우 차태현이 그런 이야기를 했다. "연예인은 일희일비해야 하는 직업"이라고. 별생각 없이 본 예능 프로그램에서, 그 말이 오래도록 남았다. 그 누구보다 부침이 많고, 격차도 큰 직업이 연예인인데, 그 자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뜻 이리라. -차태현 스스로도 그랬지만- 잘 나갈 때는 인기를 온전히 즐기고, 인기가 없어지면 지나치게 분노하지도 후회하지도 말고 있는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뜻 같았다. 온 국민의 사랑을 받던 국민 mc가 어떤 사건으로 모든 TV 프로그램에서 하차하기도 하고, TV 프로에서 한번 불린 노래가 음원 차트 1위로 역주행하는 경우도 종종 있지 않나.


  소송을 수행하는 변호사도 그렇다. 모든 소송은 반드시 승, 패가 존재한다. 승자가 있으므로 패자도 있다. 소송에서 이긴 날은 정말 기분이 좋지만, 진 날은 며칠 동안 기분이 안 좋다. 이러니 직업상 '일희일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통계적으로 보면 모든 소송은 50%의 확률로 이기고, 50% 확률로 진다. 그러나 승패의 결과는 잔혹하다. 소송에 지면 의뢰인이 10억(혹은 그 이상)을 잃을 수도, 감옥에 갈 수도 있다. 의뢰인뿐인가, 변호사의 기분도 참담하다. 한동안 소송을 수행하며 의뢰인의 입장에 감정을 이입했다면 마음의 고통을 피할 수 없다. 의뢰인으로부터 듣는 비난도 온전히 자신의 몫이다. 물론 이기는 소송도 있다. (내 소송이 이기면) 정의가 이 땅에 실현된 순간처럼 느껴진다. 질 것 같은 소송에서 이기기라도 하면 그 날은 정말 기분이 좋다. 판결문을 액자에 걸어놓고 싶은 심정이다. 변호사가 된 보람을 느낀다. 이 모든 것이 며칠, 몇 달 사이에 왔다 갔다 한다.


 언제 승소할지, 언제 패소할지 예측할 수 없다. 그러다 보니 승소한 날은 온전히 그 기쁨을 누리고, 최대한 즐거우려 한다. 패소하면, 당연히 속은 쓰리고 기분이 우울하지만 '오늘 하루만 우울하자'하고 다음날은 잊어버리려 한다. 그래야 이 일을 계속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 인생이 그렇지 않나. 대부분의 사회인이 그렇지 않나. 언제 행운이 닥칠지, 언제 불행이 닥칠지 알 수 없다. 행운이 오면 빼앗길까 두려워하고, 불행이 오면 '내가 그럼 그렇지'하면서 한탄하는 삶을 살기보다, 행운이 오면 기뻐하고, 불행이 오면 최대한 빨리 '흘려버리는' 지혜가 필요하지 않을까.


 그런 면에서 차태현의 '일희일비 하기'는 '카르페디엠' 또는 '현재에 충실하자'는 말과 같다. 행 또는 불행이 언제 올지, 얼마나 올지 우리가 제어할 수 없다.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불행을 물리치고 행운만 오게 하는' 미신이 아니라, '불행이 오면 하루 슬퍼하고, 행운이 오면 이틀 기뻐하는' 요령을 갖추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 요령을 갖춘다면, 우리 인생이 보다 살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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