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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우중 Sep 19. 2023

괴물, 변희봉, 그리고 육아

  변희봉 선생님께서 돌아가셨다. 대단한 팬은 아니더라도, 그가 나왔던 영화 '괴물(2006)'을 기억한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 중 하나이고, 극장에서 2번 본 유일한 영화이기도 하다. 변희봉 선생님의 걸걸하고 허스키한 톤이 지금도 귓가에 맴돈다. '살인의 추억(2003)'에서도, '옥자(2017)'에서도, '더 게임(2007)'에서도 그의 연기는 모두 좋았지만 역시 괴물에서 보여준 아버지의 모습이 가장 어울렸다고 할까. 


  괴물을 본 지 16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간간히 기억나는 장면들이 있다. 내 인생 여정에 따라 그 장면들은 달랐는데, 요즘 기억나는 장면은 희봉(그는 극 중에서도 희봉이다. 봉준호가 그에 대한 존경을 표시한 것이라고 한다)의 가족이 한강에서 하염없이 현서를 찾다가, 지친 몸을 이끌고 밤늦게 희봉이 운영하는 작은 매점에 도착한다. 어둡고 좁은 매점인데도, 각자 익숙한 듯이 자리에 앉아 여기저기에서 과자와 컵라면 등을 뒤지고 물을 끓여 라면에 물을 부은 뒤 허겁지겁 먹어치우는 장면. 4명의 인물들이 말도 없이 식사를 하는데, 탁자 밑에서 현서가 갑자기 나타난다. 현서의 할아버지 희봉, 아버지 강두, 삼촌 남일, 고모 남주는 그런 현서를 보고 놀라지 않는다. 심상히 각자 자기가 먹던 것을 하나씩 떼내어 현서에게 준다. 현서는 말없이, 그러나 맛있게 그 음식들을 먹는다.


  관객은, 그리고 극장에서 영화를 보던 나는 당연히 놀랐다. 현서를 찾아 헤매던 이들인데, 갑자기 매점 구석에서 현서가 나타나다니? 물론 환상이었다. 영화는 4명의 머릿속을 보여준 것이다. 현서는 밥을 잘 먹고 있을까? 우리도 이렇게 배고프고 힘든데 현서도 그렇지 않을까? 하면서 자신의 주린 배를 채우는 것이다. 그게 가족이고 식구다.


  아이를 키우면서 느낀다. 아이는 생선을 좋아한다. 지난 주말, 생선구이 집에 가서 미역국과 생선을 먹였다. 아내는 고등어를 발라서 작은 가시라도 있는지 유심히 살펴본 뒤에야 아이에게 먹였고, 나는 미역국 국물에 밥을 말아 잘 식힌 뒤, 아이에게 먹였다. 아이는 미역국과 고등어를 교대로 먹었다. 아기새처럼 잘도 받아먹었다. 내가 "아기새처럼 잘도 먹네" 하니까, 바로 알아듣고 웃으면서 "짹짹"하고 농담도 칠 줄 아는 네 살배기가 되었다. 일요일 오후의 그날, 우리 부부가 주는 음식을 잘 받아먹는 아이를 본 날이 지금도 선명하다. 아이를 낳기 전에는 느껴보지 못한 만족감이다. '자식 입에 밥이 들어가는 걸 보면 안 먹어도 배부르다.'는 내 부모님의 말이, 옛 말이 틀린 것이 하나 없다.


  다시 '괴물'을 생각한다. 그들은 그런 마음이었겠구나. 지금은 내 눈앞에 없는 현서에게 뭐 하나라도 먹이고 싶었겠구나. 현서가 맛있게 음식을 먹는 모습이 더할 나위 없는 만족감을 주었겠구나. 그리고 그 매점의 한가운데에서 현서와 현서의 아비 강두를 생각하던, 희봉을 떠올린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이번 주말에는 '괴물'을 다시 한번 더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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