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죽고 새로 태어나는 우리처럼

영화, 미키 17(Mickey 17, 2025) 감상평

by 김우중

봉준호 감독의 오랜 팬이다. 미키 17을 제작한다는 소식부터, 곧 개봉한다는 이야기까지 관심 있게 지켜봐 왔다. SF이고, 복제인간(?) 이야기라고 했다. 이번에는 한국인이 전혀 나오지 않는 할리우드 영화라는 소식. 한국인 감독이 영어만 쓰고 영어권 배우만 나오는 영화에서 그만의 색채를 제대로 담을 수 있을까. 실패한 다른 감독의 사례는 많다. 봉준호는 "옥자", "설국열차"에서 증명해 준 바 있지만, 기대와 우려는 있었다.


영화를 보고 나니 여러 가지 생각이 든다.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수작이고, 충분히 천만 관객은 들 만한 오락성을 가졌으며, 작품성이나 그 안에 든 철학도 봉준호의 다른 영화들에 비해서 상위권이다. 다만 감독의 과거 영화에 비해 좀 더 "따뜻"해졌다는 점, 좀 더 "부드러워"지고 "온건"해 졌으며 보다 "희망"적이라는 점이 인상 깊었다.

외계 행성에 첫 도착한 미키


영화를 보면서 인상 깊었던 것들을 그 강도와 빈도 순으로 늘어놓아 보려 한다. 가장 인상 깊은 것은 할리우드의 프로덕션과 배우들이 안정적으로 영화를 펼치는 가운데, 봉준호만의 삐뚤어지고 어딘가 부족한 듯한 유머가 도처에 깔려있다는 것. 그래서 위급한 장면이나 잔인한 장면, 심지어 슬픈 장면에서도 웃음이 새어 나오는 것을 멈추기 어려웠다는 것이다. 봉준호 영화를 오랫동안 좋아해 온 사람일수록 그 웃음이 더 자주 나올 텐데, 외국 영화처럼 보이는데 내가 아는 한국 감독의 색채가 묻어 나온다는 게 계속 신기했다.


두 번째로는 영화 자체의 소재다. 죽고 다시 태어난다(영화에서는 "프린트"된다고 표현한다). 그 몸은 쓰레기 용광로에서 나온 재료로 한다. 기억은 데이터베이스에 저장되었다가 매번 업데이트하며, 새로 태어날 때마다 업로드시킨다는 것. 처음으로 떠오른 물음은, <그렇게 미키가 죽고 새로운 미키가 새로 "프린트"되면, 그 미키는 이전의 미키와 같은 미키인가?>이다. 과거의 미키는 엄연히 죽은 것이고, 새로 프린트된 미키는 그냥 미키의 흉내를 낸 복제품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새로운 미키는 완성도 높은 복제인간이자 과거 미키의 기억을 복사해서 가지고 있을 뿐, 과거의 미키는 영영 죽은 것이 아닌가? 이 물음은 영화의 중반까지 지속되었다.


그러나 이 물음은 영화의 중반부부터 해소되었는데. 첫 번째로 영화는 이 물음에 대해서는 답해주지 않고 그것이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듯 행동할 뿐만 아니라, 영화를 보다 보면 관객인 나조차 그것이 중요한 문제가 아님을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과학적으로, 우리의 세포는 매일 죽고 매일 새로 만들어진다. 사람의 몸은 7년을 주기로 모든 세포가 바뀐다고 한다. 다만 그것이 일부 세포일 뿐 전체가 아니라는 점에서 미키와 같다. 이른바 "테세우스의 배"라는 철학적 난제다.


이 철학적 난제와 미키 17을 겹쳐서 보자면, 미키처럼 17번 죽고 태어나는 것은 7년 주기로 모든 세포가 바뀌는 사람과 무엇이 다를까? 심지어 우리의 기억은 불완전하다. 데이터베이스에 저장해 두었다가 업로드되는 미키가 더 완전한 기억을 가졌다. 그렇다면 미키는 불쌍한 존재가 아니라, 오히려 부러워해야 할 존재가 아닌가? 육체는 처음 업로드한 데이터 그대로 프린트되니, 늙지도 죽지도 않는 불멸의 삶이 아닌가 말이다. 그렇다면 미키는 우리들과 같은 존재 아닌가? 미키처럼 우리도 매일매일 죽고 새로 태어나지 않나?


영화의 중반쯤 되면, 위에서 한 생각과 미키의 불쌍한 삶이 겹쳐지고, 계속 발생하는 의외의 사건들로 이 철학적 질문은 잊힌다. 관객은 이제 이 세계관에 동화되고, 미키의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처음에는 멸시받고 가장 위험한 업무를 온몸으로 하던 미키는, 의외에 사건에 휘말리면서 좀 더 복잡한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것이다. 스포를 막기 위해 예고편에 나온 것만 말하자면, 미키 18과 협업하는 일 등등.


주연배우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여주인공 나오미 애키의 연기도 좋았지만 당연히 로버트 패틴슨의 미친 연기를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영화마다 전혀 다른 모습으로 등장해 왔는데, 처음에는 "해리포터와 불의 잔(2005)"에 나온 곱상한 소년인 줄만 알았고, 트와일라잇(2008) 시리즈는 보지 않았지만 그가 성인 배우가 된 것은 알았으며, "테넷(2020)"에서 연기 잘하는 배우라는 걸 처음으로 실감했다. 그 이후 "배트맨(2022)"에서 원숙한 연기력을 보여주는가 싶었는데, 이 영화에서는 거의 독주하다시피 한다.

영화의 두 주인공, 나오미 애키와 로버트 패틴슨

어찌 보면 그의 연기력을 마음껏 뽐낼 수 있는 1인 18역이 주어진 셈인데, 놀랍게도 미키 17과 미키 18이 동시에 등장하는 장면에서 그가 보여주는 제스처 만으로도 우리는 17과 18을 구분할 수 있다! 이것은 나만의 평이 아니라 대부분의 관객이 공감했다. 말과 행동, 그 사이의 제스처로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보이게 한다는 것은 어렵다. 심지어 이 영화처럼 완전히 같은 옷과 헤어스타일을 하고 다른 사람으로 보이기는 더 어렵다. 그런데 그것을 로버트 패틴슨은 해낸다. 어딘가 나사 빠져 보이고 불쌍한 듯 보이지만, 결코 쉽지 않은 사람. 포기하지 않고 여러 번 죽고 다시 태어나면서 성장하는 미키를 패틴슨은 잘 표현해 냈다. (미키 17은 찌질한데, 미키 18은 너무 멋져서 그의 전작 배트맨이 겹쳐 보이기까지 한다)


영화를 보다 보면 봉준호의 전작이 겹쳐 보인다. 외계 행성으로 가는 우주선에서 4년이나 머물면서 하찮은 보존식을 먹는다는 점에서 "설국열차(2013)"가 생각나고, 외계 생물과 마주하는 장면에서는 "옥자(2017)"가 생각나며, 미키 17과 미키 18이 공존하는 장면에서는 "기생충(2019)"가 언뜻언뜻 보이기까지 한다. 이것은 봉준화의 취향과 철학이 확고하기 때문에 겹쳐 보이는 것으로서, 작가주의 영화에서 매우 자연스러워 보인다.


그런데 영화의 후반에서 가장 겹쳐 보이는 영화는 의외로,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바람계곡의 나우시카(1984)"다. 여기에 나오는 "오무"라는 거대한 곤충이 외계 행성의 생물들과 매우 닮았다(예고편에도 나오는 그 벌레 같은 생물들이다). 감독은 크로와상을 본떠 만들었다고 했는데, "오무" 혹은 실제 생물인 아르마딜로, "곰벌레"를 섞어놓은 듯한 디자인이다. 그런데도 "오무"가 가장 생각나는 것은 영화가 제시하는 생태적인 메시지가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와 가장 닮았기 때문이 아닐까. 후반부에서 미키가 입는 방한복/작업복이 나우시카의 복장과 닮은 것도 한몫한다.

외계 행성의 생물들은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에 나오는 오무를 생각나게 했다

마지막으로 꼭 언급하고 싶은 것은, 영화 속 독재자 부부로 나오는 케네스 마샬, 일파 마샬이 놀랍도록 요즘과 겹쳐 보인다는 점. 꼭 집어서 이야기하자면 윤석열, 김건희 부부가 생각나고 윤석열의 계엄령이 생각날 수밖에 없는 장면들이 여럿 보이는데, 계엄령 이전에 만든 영화가 이토록 일치한다는 것은 봉준호의 사회과학적 지식이 이제는 미래를 예측하는 수준이 될 정도로 정교하다고 평가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케네스 마샬은 트럼프와 더 닮았다)

한국인이라면 그들 부부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이제 이 감상평을 마무리지어야겠다. 영화를 보고 나면 들었던 많은 생각들이 스쳐 지나가거나, 떠올랐다가 가라앉는다. 이 영화처럼 재미있으면서도 고민하게 만드는 영화는 몇 없다. 미키는 매일매일 죽어나가는 건설노동자들, 화력발전소에서 죽은 노동자 김용균, 구의역 스크린도어 정비 중 사망한 19살 남성을 생각나게 한다. 영화는 미키를 익스펜더블로 마음껏 소모시키는 잔인함을 적나라하게 드러내지만, 사실 지금의 현실이 더 잔인하다. 이미 죽은 그들은 돌아올 수 없지만, 적어도 미키는 다시 살아날 수 있지 않나. 죽은 기억을 가지고 새로운 삶을 살아낼 수 있지 않나. 이 영화의 잔인함에 놀라지만, 실제로는 영화 밖의 현실이 더 잔인하다는 것을, 감독은 꼭 말하고 싶었으리라.


영화는 끝나고, 다시 현실로 돌아올 수밖에 없는 우리들은, 죽은 그들을 생각낼 수밖에 없으며, 그들이 나 자신과 다를 것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게 한다. 그런 면에서 이 영화는 자본주의 최하층에서 위험한 일을 하다가 돌아가신 그분들을 위한 장송곡처럼 보이기도 한다. 어제의 잘못은 죽고, 과거와는 다른 삶, 보다 나은 삶이 떠올랐으면 한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지루한, 그래서 한번 더 보고 싶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