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 수 없는 밥벌이의 무거움

영화, '어쩔수가없다(NO OTHER CHOICE, 2025)' 감상평

by 김우중

먼저 극장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무척이나 이 영화를 기다렸음을 밝혀둔다. OTT 시대가 된 이후로, 영화는 어쩐지 가볍고 쉬워져서 도통 몰입하여 보기가 어렵다, 고 느낀다. 박찬욱의 이 영화처럼 다양한 레이어와 상징, 은유를 가지고 있으면서 완성도 높고 몰입할 만한 영화를 극장에서 보기가 어려워졌다. 쉽게 말하면, 다회차 관람하기 좋은 영화가 좀처럼 나오지 않는다는 말이다. 박찬욱도 그 무거움을 느끼고 있는 것 같다. 그의 영화 중에서는 가장 웃기고, 덜 잔인한 영화가 나왔다. (그게 흥행으로 이어질지는 두고 볼 일이다)


'어쩔수가없다'를 두 번 보았다. 시사회에서 한번, 내 돈 내고 한 번. 두 번 보니 안 보이던 것들이 보이고, 웃겼던 것들은 똑같이 웃기고, 좋았던 것들은 더 좋다.


제목은 일부러 띄어쓰기를 하지 않았다고, 감독은 밝혔다. 하나의 탄식처럼, 단숨에 '어쩔수가없다'고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진짜 어쩔 수가 없는 일을 마주했을 때에, 우리는 그런 장탄식을 뱉는다. 영어 제목은 No other choice, 이지만 영어로는 그 뉘앙스가 전달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이병헌이 주연이자, 분량이 압도적으로 많은 캐릭터다. 이병헌이 극 전체를 이끌고 나가는데, 그는 그럴 자격과 능력이 있는 배우다. 미묘한 표정과 적당한 코미디와 슬랩스틱 연기까지. 이 영화는 그의 모든 것을 보여주는 종합선물세트 같은 느낌이다. 그는 웃었다가 웃겼다가, 울었다가 울렸다가, 화냈다가 화나게 했다가, 슬퍼하다가 슬프게 만들다가, 진짜 별 걸 다 한다. 이병헌의 연기 하나로도 이 영화는 푯값을 한다.


하지만 그 외에도 연기를 지독하게 잘하는 배우들이 줄줄이 나온다. 손예진, 이성민, 염혜란, 차승원, 박희순. 모두 한 영화의 주연으로 나왔던, 그리고 나올 만한 배우들인데 누구 하나 빠뜨릴 수 없이 수준 높은 연기를 선보인다. 극장에서 가장 강렬했던 것은 이성민의 코미디 연기. 이병헌 다음으로 극 전반을 이끌던 것은 손예진의 주도적인 아내/엄마 연기였고, 가장 여운이 남는 것은 박희순의 술 취한 마초남 연기였다.


영화에는 다양한 상징과 은유가 나온다. 뱀과 사과나무라던가, 태양과 달(문 제지), 동물(돼지)과 식물(분제), 빨강과 초록이라던지, 서로 대응되거나 모순되는 것들이 뒤얽힌다. 박찬욱이 좋아하는 딜레마, 패러독스, 아이러니의 3종 세트가 여기저기서 나온다. 물론 '블랙 코미디'를 표방하는 만큼 영화의 전반에는 아이러니가 흐른다.


영화의 스토리는 스포일러를 피하기 위해 자세히 언급하지 않겠다. 다만, 초반에는 조금 천천히 움직이던 이야기가 이성민, 염혜란 커플의 등장과 함께 갑자기 급물살을 타면서 빠르게 전환되고, 그 뒤로는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 모르게 영화가 흥미로워진다. 다만, 영화의 엔딩은 어딘가 김 빠진 듯, 어색하고 뒷맛이 깔끔하지 못하게 허겁지겁 끝나는 인상을 받았다.


그런데, 그런 인상은 2회 차 관람에서 달라졌다. 결론만 말하면 2번 볼 것을 권한다. 두 번 보니 영화가 좀 더 상세히 보이고, 좀 더 상세히 보이니 좀 더 다채롭게 보인다. 뭔가 어색한 것 같은 결말도 다시 보니 어색하지 않다. 하다 만 것처럼 끝나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그 사이사이 보이는 은유와 상징을 보니 알려주어야 마땅한 것을 관객에게 모두 알려주고 끝나 있었다. 아래에서는 잠깐 스포일러.



(*사실 스포일러 해도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영화이긴 하다)





----스포일러 시작----


영화는 주인공(만수)의 완전 범죄로 끝나는 것처럼 보인다. 만수가 죄책감을 느끼는 것 같지도 않다. 그래서 그 뒷맛이 씁쓸했던 것인데, 자세히 보니 그렇지 않다.


만수가 죽이는 3명의 인물은 모두 만수의 일부분을 그대로 닮았다. 아내를 사랑하지만 아내의 바람을 목격하는 부분은 범모와 비슷하고, 딸을 사랑하지만 딸과 멀어지는 부분은 시조와, 일과 자연을 사랑하지만 술에 빠져서 가족과 떨어진 것은 선출과 닮았다.


이동진 평론가는 범모, 시조, 선출을 죽이는 만수의 모습은 만수의 현재, 과거, 미래를 죽이는 것과 닮았다고 평했다.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범모, 시조, 선출은 모두 (이 영화가 끝난 후) 만수의 미래 모습이다. 만수는 어렵게 새 직장을 얻었지만, AI와 자동화 기계의 등장으로 머잖아 실직할 것이고, (이미 낌새를 보이고 있는) 만수의 아내 미리는 만수와 점점 멀어져 외도할 것이며, (엔딩에서 리원의 연주를 혼자 듣지 못한 만수는) 점점 더 딸 리원과 멀어져서, 결국 술과 분재만을 상대하다 (아마도 자살로) 외롭게 죽어갈 것이다.


따라서 이 결말은 해피엔딩이 아니다. 영화의 말미, 미리가 만수에게 '집 내놓은 거 취소했어. 사과나무도 심었잖아'라는 대사는 이미 '당신의 살인을 은폐하기 위해서라도 이 집에서 계속 살아야 한다'는 말로 들린다. 이는 만수를 향한 비난이기도 하고, 만수의 잘못을 함께 안고 가겠다는 말로 들리기도 했다.


개인적으로는 이 컷이 이 영화 전체를 설명해 준다고 생각한다. 빨강과 초록이 모두 섞인 고추나무, 그리고 그 아래 묻혀서 고추나무의 거름이 될 유만수.


---스포일러 끝----




영화의 초반, 만수의 실직으로 만수와 미리가 실의에 빠지는 모습은 다시 보아도 가슴 아프다. 요즘 사회, 현대화된 사회, 여성의 사회진출이 활발한 사회, 남성성이 점점 불필요해지는 사회에서, 실직한 가장 보다 초라한 것은 없다. 여자처럼 아이를 낳을 수도 없는 남자에게 실직이란 곧 '쓸모없음'과 같기 때문이다.


재취업을 위해 살인을 한다는 어처구니없는 영화의 소재는 어쩌면 '이 사회에서 쓸모를 잃은 자들의 몸부림'을 보여주는 것 같다. 노동과 자본의 층위로도 해석되고, 기업가를 두고 노동자끼리 죽고 죽이는 아수라장을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한 이 영화는, 아무리 보아도 결국은 가족 영화다.


만수는 가족을 위해 이 모든 악행을 벌였다고 생각하고, 가족을 위해 자신을 희생했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가족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그를 두려워하고 경멸할 것이다. 아마도 그의 가족은 꽃피우고 열매 맺겠지만, 그 순간에 만수가 함께 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영화는 넌지시 보여준다.


가족의 가장家長으로서 성실한 노동자를 가장假裝해서라도, 어떻게든 집을 지탱하려고 애썼던 나무가 있다. 그 나무의 뿌리를 살피기 위해 땅 속을 파보면 다른 자들의 시체 몇 구쯤은 들어가 있을 것이다. 그것이 가장家長 자신의 시체일지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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