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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우중 Mar 05. 2016

세계를 구한 남자의 이야기

이미테이션 게임과 킹스맨


 이미테이션 게임(2014)과 킹스맨(2015)이 동시에 영화관에 걸린 때가 있었다. 두 영화 모두 세계전쟁을 다루고, 배우들이 영국 억양을 쓰며, 조연으로 마크 스트롱(Mark Strong)이 나온다. 이름도 강력한 이 남자는, 50살이 넘었음에도 여전히 멋지고 중저음이 섹시한 영국 배우다. 심지어 그는 두 영화 모두에서 정보국 요원으로 나오고, 주인공의 상급자로 나온다.

 사실 차이점이 더 많다. 이미테이션 게임은 진중하고 차분한 드라마고, 킹스맨은 (모두가 알다시피) 신나고 경쾌한 액션 영화다.

 이미테이션 게임의 주인공 앨런 튜링(베네딕트 컴버배치 분)은 2차 세계대전의 종전을 2년이나 앞당겼지만, 이는 그의 삶 내내 국가적 기밀로 남고, 그는 평생을 외롭게 살아간다. 마치 다크나이트(2012)의 배트맨 같다. 튜링은 사교성이 없고 대부분이 그를 비호감으로 여기며, 그도 사람보다는 기계에 더 마음을 쏟는다.
 하지만 킹스맨의 주인공 에그시(태런 에저턴 분)는 다르다. 영화의 끝에 그는 모든 악당을 물리치고 외국 공주와 침대에 뛰어들며(전래동화가 아니다) 환호한다. 에그시는 마치 영화 전체를 상징하듯이, 톡톡 튀고 발랄하며 좌절하지 않는다.

 두 주인공 모두 세계를 구했지만, 끝은 이렇게 다르다. 아쉽게도 전자가 실화고, 후자가 픽션이다.


 한국 극장가에서 킹스맨의 인기는 가히 폭발적이다. 19세 이상의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관객 377만 명을 동원하고 있다. 이미테이션 게임의 경우 138만 명의 그쳤다(2015/3/8 현재). 킹스맨의 교회 학살(?) 장면은 다소 불편했지만, 뒤이어 나오는 위풍당당 행진곡 장면에서 그 불편은 웃음으로 덮였다. '감독이 원래 또라이구나'하고 웃어넘기면 되었다. 유쾌하게 웃고 즐길 수 있었다.


 하지만 마음에 남는 영화는 여전히 이미테이션 게임이다. 앨런 튜링의 비극적인 결말 때문이기도 하고, 그를 연기한 베네딕트 컴버배치의 뛰어난 연기 때문이기도 하다. 담담하게 이야기를 이어간 감독의 선택도 좋았다.
 어찌 되었든 간에,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죽어간 킹스맨보다 단 한 명의 죽음만을 보여준 이미테이션 게임이 더 잊히지 않는 것은 아이러니하다.


 앨런 튜링은 세상을 구하는 임무를 완수한 뒤에 일상에 복귀하지만, 결국 동성애자임이 밝혀져 재판에서 성호르몬 치료요법을 강제당한다. 당시 영국은 남성 동성애자가 질병이라고 보고, 여성 호르몬을 주입했기 때문이다. 그는 결국 자살했는데, 사과에 청산가리를 주입한 후 그 사과를 먹는 아주 특이한 방식으로 죽었다. (영화에서는 이를 보여주진 않고, 간접적으로 청산가리와 사과가 따로따로 등장한다)


 역시 영화에서는 나오지 않았지만, 그의 유언이 무척 인상적이다. '이 사회는 나를 여자가 되도록 강요했으므로, 나는 순수한 여자가 할 만한 방식으로 죽음을 택한다.' 어쩌면 가장 남자다운 죽음 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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