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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우중 Mar 08. 2016

스포트라이트가
비추지 못하는 곳에는.

스포트라이트가 비추지 못하는 나머지 공간, 그 맹점을 이야기하는 영화.

 스포트라이트 spotlight.

 말 그대로 어느 한 부분(spot)에만 빛을 비춘다(light)는 뜻이다. 연극 영화에서 무대의 한 부분/인물만을 비추는 조명 방식을 말하기도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기자들의 '집중취재'라는 의미로 쓰인다. 


 영화는 스포트라이트의 의미를 여러 각도에서 보여준다. 어느 한 곳만을 집중적으로 비춘다면, 그렇지 못한 쪽은? 완전한 어둠이다. 한 부분만을 비추어야 스포트라이트는 의미가 있으니까. 결국 어느 곳을 비추고, 다른 나머지를 어둠으로 할 것인가는, 전적으로 저널리즘의 몫이고, 기자의 책임이다. 탐사 저널리즘의 명과 암을 이토록 간결하고 흥미롭게 보여주는 영화가 또 있을까. 


 좀 더 깊이 들어가면, 이 영화는 인간사회를 이야기한다. 그것이 어느 단체일 수도, 작은 동네일 수도, 영화에서처럼 보스턴이라는 큰 도시일 수도 있다. 모든 사회는 어떤 방식으로든 소외된 사람들이 생기기 마련이고, 그들의 희생을 딛고 유지된다. 소수자의 희생을 어느 정도까지 용인해야 하는가. 희생되는 것이 아이들이라면, 희생의 대가가 종교적 위안과 지역사회 발전이라면? 


 어찌 보면 이 영화에서 가장 큰 사건은 스포트라이트 팀이 가톨릭 사제의 아동성폭행을 밝혀냈다는 것이 아니다. 보스턴이라는 유서 깊고 풍요로운 도시에서 몇십 년 동안 아동성폭행을 묵인했다는 것이 가장 큰 사건이고, 충격적인 범죄다. 이러한 묵인과 방조에는 그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다. 또한 영화의 인물들이 이야기하듯이, 피해자가 자신이 되지 말란 법도 없었다. 모두 평범한 사람들이다. 누구나 피해자가 또는 방조자(심지어 가해자도)가 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무한한 보편성을 띤다. 


 기자는 누구나 선망할 만한 직업이다. 권력과 돈에 맞서서 진실을 밝히고 정의를 추구하는 직업만큼 '멋진' 직업이 어디에 있으랴. 그런 바람직한 기자의 모습을 이 영화가 잘 보여준다. 

 영화에 등장하는 배우들이 히어로 무비에 한 번쯤 출연한 경력이 있다는 점이 이채롭다. 스포트라이트 팀의 팀장으로 분한 마이클 키튼은 배트맨(1989)을, 열혈 기자 마이크로 분한 마크 러팔로는 헐크(2015)를, 편집장으로 분한 리브 슈라이버는 울버린의 형 빅터(2009)를 연기한 바 있다. 이렇게 과격한 액션 영웅(?) 세명이 모인 이 영화는, 때로는 분노하지만 전체적으로 담담하게 이야기를 이끈다는 점에서 훌륭하다. 이 영화에서 이들 각자가 영웅은 아니지만, 한데 모여 영웅적인 일을 이뤄내는 과정을 잘 그렸다. 


 평범한 사람들이 큰 노력 없이 저지른 범죄를, 

(또 다른) 평범한 사람들이 비범한 노력으로 이루어낸 성과가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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