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김효재 | 가장 어려운 것에 답이 있다

거절당할수록 확신이 생기는 사람

by 유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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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인

효재 님을 처음 만난 건 건국대학교 창의관에 마련된 사무실이었습니다. 정리되지 못한 브랜드 굿즈들과 박스들이 쌓여 있어 제법 어수선한 공간이었지만, 벽 한쪽을 가득 채운 포스트잇과 시즌별 메모들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그중에서도 보드에 붙어 있던 '팀쭉'의 규칙이 인상적이었어요. 첫 번째 규칙은 주 55시간 지키기. 네 번째는 '항상 미쳐 있고, 함께 더 미칠 수 있게'. 전원 20대로 이뤄진 열정 넘치는 사무실 분위기와 꽤 잘 어울리는 문구였습니다.


김효재_중간삽입1.jpg 사무실 한편에 붙여진 팀 규칙 ©지금여기



'쭉(ZOOC)' 김효재 대표

김효재 대표는 '쭉'이라는 회사를 통해 제조업의 새로운 형태를 만들고 있다. 브랜드 부스트 서비스는 기업과 브랜드가 제작 과정에서 겪는 모든 마찰을 제거하는 것이 목표다. 1대 1 맞춤형 지원을 통해 비교 견적, 제안서, 의사결정 문서까지 함께 만들며, 담당자의 효율화와 기업의 성장을 돕는다. 팀은 6명, 전원 20대. 180개 공장을 직접 방문했고, 2026년 목표는 글로벌 진출과 국내 시장 수면 위로 떠오르기다.



Part 1. 나의 문제에서 인류의 문제로


Q. 지금 하고 계신 일을 한 문장으로 설명해 주신다면요?


제작을 자유롭게 만들어서 새로운 제조업의 형태를 만들려는 회사입니다. 제작을 자유롭게 하면 제작 수요가 많아질 테고, 그 수요를 원동력으로 제조업의 새로운 형태를 만들겠다는 비전을 가지고 있습니다.


단순히 제품 제작을 중개하는 것을 넘어서, 기업을 성장시키고 담당자분들을 효율화시키는 목적이 더 큽니다. 그래서 서비스 내부에는 담당자분들을 위한 비교 견적, 최적의 의사결정을 돕는 기능들이 녹아 있습니다. 제작을 자유롭게 만들기 위해서는 브랜드가 쓰는 소프트웨어부터, 제작 의사결정을 해주는 에이전트, 공장의 소프트웨어, 공장의 운영 방식까지 모든 것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희의 최종 비전은 이 모든 것을 구현해서 제조업을 최적화시키고, 새로운 형태의 제조 공장을 미국과 유럽에 만드는 것입니다. 지금의 제조업은 엔지니어가 많은 공수와 노하우를 투입해야 하지만, 저희가 만드는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가 완성되면 매니지먼트 관리만으로 작은 규모의 공장을 운영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브랜드 부스트는 그중에서 브랜드와 기업을 위한 첫 번째 서비스입니다.



Q. 지금 풀고 있는 문제는 언제 어떻게 발견하셨나요?


문제 발견 의식의 흐름은 굉장히 간단했어요. 지금 회사 '쭉'의 시초는 강아지 굿즈를 만들어주는 것이었어요. 우리 집 강아지가 노령이 되어가고, 강아지 티셔츠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시작했죠. 만들어보니 부모님이 너무 좋아하셔서 한강에서 산책하는 분들에게 물어봤더니 10명 중 8명이 산다고 하셨어요. 니즈가 있다고 판단하고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티셔츠를 만들면서 좀 더 본질적인 문제를 발견했어요. 티셔츠 발주 자체를 사람들이 어려워한다는 것을 깨달았고, 제작 발주 전반이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런 식으로 문제가 점점 깊어졌어요.


김효재_중간삽입2.jpg 인터뷰를 진행 중인 김효재 대표 ©지금여기


Q. 반려동물 굿즈 만드는 서비스(핏어펫)에서 어떻게 브랜드 중심 서비스로 확장하게 되었나요?


2024년 CES에서 '핏어펫'이라는 서비스를 전시했어요. 강아지·고양이 사진 10장을 업로드하면 AI가 눈·코·입을 학습해서 축구하는 강아지, 해리포터 강아지 등 다양한 모습을 만들어 티셔츠, 케이스, 그립톡으로 바로 배송받을 수 있는 서비스였죠.


그런데 실리콘밸리 VC 한 분이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너무 좋은 서비스다. 너희는 너무 유능하다. 근데 왜 너희의 유능함을 강아지 티셔츠 만드는 데 쓰고 있냐? 인류가 공통적으로 느끼고 있는 문제를 해결할 생각이 없냐?"

그 질문에 답을 못하겠더라고요. CES에서 4일간 1,500개 정도의 기업을 만나는데 웬만한 질문에는 다 대답할 수 있거든요. 근데 그 질문에 만큼은 대답을 못하겠더라고요. 정말 인상 깊었습니다.


생각해 보니 나의 20대 몇 년을 강아지 굿즈에 쓰는 것보다 좀 더 근본적인 문제가 있을 것 같았어요. 고민하다가 앱이나 AI를 만드는 것보다 티셔츠를 발주해서 제시간에 무사히 받는 게 훨씬 어렵다는 걸 알게 되었죠. 1개 단위 생산이 너무 비싸고 퀄리티도 안 좋고 오래 걸린다는 문제를 발견했어요.


앞으로 브랜드들은 이런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까? 우리가 지금 핏어펫을 더 발전시키는 게 아니라, 나중에 핏어펫 같은 서비스를 할 사람들을 위한 인프라를 미리 만들어두자고 생각해서 피벗(pivot)*을 하게 되었습니다.


*피벗(pivot) : 회사의 핵심 기술이나 비전은 유지하되 시장 피드백을 바탕으로 사업 모델, 전략, 제품 등을 근본적으로 전환하는 것


Q. 2025 CES도 다녀오셨잖아요. 거기서 이제 반응이 어떠셨어요?


사실 그게 정말 중요했거든요. 저는 미국에선 어떤 힌트가 하나도 없다 보니까 한국에서는 그래도 힌트를 얻을 수 있는 다양한 게 있었는데 미국에서는 없으니까, 그걸 증명하는 게 굉장히 중요했어서 CES를 좀 많이 준비하고 갔는데요.


일단 제가 많이 들었던 말은 "미국인은 자신들의 영감을 제품에 못 넣고 있다" 이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영감(Inspiration)’이라는 단어를 많이 쓰더라고요. 아이디어는 미국이 더 많지만 생산의 70%가 중국에서 이뤄지다 보니 원하는 형태로 만드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고, 많아봐야 로고를 각인하는 수준이라는 거죠.


그래서 "너희 소프트웨어가 그 'remove friction'이 될 수 있다." 제가 정말 인상 깊게 들었던 단어인데 장벽을 제거한다는 뜻이에요. “너희의 툴이 만약 자유롭게 제작하고 싶은 것에 생기는 모든 장벽들을 다 없애준다면, 그 값이 중국보다 5배가 됐든 10배가 됐든 아메리카가 그걸 신경 쓰겠느냐.”


그래서 카테고리 확장과 미국 진출의 가능성까지 그 두 가지 얘기들을 공통적으로 피드백받았어요. 미국에 나갔을 때 도움 주시겠다고 하신 분들도 엄청 많이 만났고요. CJ 아메리카 투자자와 담당자분들도 많이 만났습니다. "돌아가서 만나자. 샌프란으로 오면 만나자" 이런 분들도 많이 만났습니다.



김효재_중간삽입3.jpg 사무실 벽 한쪽을 가득 채운 스프린트 ©지금여기


Q. 궁극적으로는 일반인도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게 목표인가요?


맞습니다. 저희는 인류의 제작을 자유롭게 하는 게 목적이에요. 요즘은 더 깊게 들어가고 있어요. 철강, 실리콘 같은 준공업류까지도 저희가 충분히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양쪽 범위에서 궁극적으로 모든 제작을 자유롭게 하겠다는 게 저희의 비전입니다.


Q. 시장 자체를 바꾸려는 것처럼 들리는데, 현실성이 있을까요?


저의 장점은 굉장히 큰 세상을 바라보고 있지만, ‘시작은 굉장히 작은 것부터 출발해야 한다’는 현재를 직시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지금은 큰 세상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에 저희 의사결정들이 항상 그 방향으로 가고 있지만 그 순간에도 여전히 우리가 어떤 것부터 시작을 해야 이 비즈니스가 전개될 수 있는가, 지금 우리는 어느 정도까지 매출을 내야 되고 어느 정도 이익률을 가지고 있어야 앞으로 다른 꿈들을 꿀 수 있는가를 굉장히 명확하게 바라보고 있습니다.


저희 첫 해 매출이 14억 원이 나왔는데 그런 매출을 내야겠다고 생각한 것도 모두 그 미래의 꿈을 위해서예요. 그러기 위해서는 브랜드 부스트라는 서비스로 기업 담당자들의 경공업 굿즈류 제작을 완전히 자유롭게 만드는 것부터 출발해야 한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Part 2. 너희 같은 ‘애들’에서 ‘아들’이 되기까지


Q.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이 실제로 제조업 공장을 직접 찾아다녔다는 이야기였어요. 실제로 공장을 방문하면서 발생한 에피소드가 많았을 것 같아요.


저희는 가장 추울 때랑 가장 더울 때 돌아다니거든요. 살이 막 벗겨지기도 하고요. 처음 시작했을 때는 그냥 무작정 들어가는 거예요. 어느 정도냐면 그냥 충무로 가서 아니면 남양주 이런 데 가서 길거리에 공장이라는 이름만 붙어 있으면 그냥 문 두드리고 들어가요. "한번 설명드리겠다" 하면, 처음 시작했을 때는 제 앞에서 담배 뻑뻑 피시면서 "나가라. 너 같은 애는 취급 안 한다" 이런 곳도 있었고, 다음 날 또 찾아가죠.


아무리 제가 인터넷 서치를 해서 기프트샵이나 굿즈 업체들 보는 것보다 그냥 그 공장에 "누가 찾아왔었는지"를 물어보는 게 낫거든요. "어디서 왔냐, 너희 같은 애들 많다" 하면 "어디에서 왔었나요?" 했을 때 업체 들으면서 "아, 이런 업체가 여기 오는구나"라고 파악을 하고요.


그리고 현장에서 "이건 말이 안 된다"라고 생각해서 "나가" 이랬을 때 "왜 말이 안 되냐"라고 물었을 때 나오는 이유가 그들이 겪고 있는 진짜 이유라고 생각해요. 절대 전화나 사이트에서 나와 있는 정보로는 절대 안 된다고 생각을 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근본적인 문제를 보려면 그 현장에 직접 가서 사장님들의 "나가라" 아니면 "안 된다" 이런 부정적인 말들에 무조건 힌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것들이 쌓이다 보니까 관성적으로 제일 어려운 길에 답이 있다고 생각을 하고 저희 팀원들도 다 그렇게 전염돼서 "아, 이거 진짜 아닌 것 같다. 이건 너무 힘든 것 같다"라고 하면 다들 메시지가 통해요. "아, 이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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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여기



Q. 공장 사장님들과 친해지고 관계를 유지하는 것도 쉽지 않을 것 같아요.


저희는 사실 방문만 하는 게 아니라 “저희를 아들이라고 생각해 달라”라고 해요. 진짜 아들의 포지셔닝에서 저희는 다가가거든요. 그래서 일 같은 거 쌓여 있을 때 저희가 돕기도 하고요. 그때 저희가 들었던 말이에요. "야, 대표가 박스 포장 잘하네. 테이프 잘하네. 됐네." 막 이런 얘기를 듣는 게 공장에서 애초에 그런 자세나 애티튜드를 엄청 중요시하는 것 같아요.


그들에게 녹아들어야 된다라는 거. 그리고 제가 경상도 출신이어서 그런지 모르겠는데 부산에서는 의리, 그리고 정, 낭만이 있거든요. 그런 것들을 제조업분들은 중요시 여기는 것 같아요. 그분들 또한 그렇게 다가오는 사람들이 많이 없었던 것 같아요. 생각보다. 왔던 사람들이 결국 항상 와서 하는 얘기가 "거래 줄 테니 수수료 얼마. 우리 싸게 해 줘" 이런 얘기만 했지, 그들의 삶을 도와주려고 하는 분들은 없었거든요.


저희는 고객에게도 저렴한 비용으로 항상 제공을 하고 있지만, 그 저렴한 비용의 이유가 절대 공장에서 납품을 싸게 받는 것 때문은 아니에요. 절대 그건 안 된다고 생각하고, 저희는 그 사이에서 win-win 비즈니스를 만들어 가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구조적으로 해결하려는 거죠. 그리고 구조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이 지금 시장에서 가능성이 충분히 있어요.


Q. 공장을 직접 찾아가서 거절도 많이 당하셨을 텐데, 그걸 회복해서 다시 찾아간다는 건 보통 사람들은 진짜 하기 힘든 일인 것 같아요.


저는 애초에 마인드 자체가 안 된다고 하면 나오면서 기분이 좋아요. 왜냐하면 이렇게 방어기제를 세워 주셔야 다른 사람들이 안 왔을 거란 말이죠. 그리고 안 되는 걸 되게 하는 게 결국 혁신이니까.


"10명에게 아이디어를 얘기했을 때 1명만 괜찮다고 하고 9명은 말도 안 된다고 하는 그 사업이 혁신이다"라고 하는 말이 좀 기억에 나는데, 저는 그래서 최근에 다 광고비 주고 다 한다고 하니까 "어, 이거 아닌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럼 저희는 지금은 혁신보다는 수익을 올리는 단계인 것 같아요.


공장 얘기나 수출 얘기 할 때는 반신반의하시는 분들이 아직 계세요. 그래서 저는 오히려 그런 부분에서 저희가 혁신 포인트를 찾아야겠다. 그런 마인드로 접근합니다.


Q. 잘 극복하고 다시 일어나는 편인가요?


완전요. 그리고 공장에 두세 번째 갔을 때 저희를 보면서 약간 눈빛이 "미친놈들인가?" 이런 눈빛이 있거든요. 그런 것도 재밌어요.


얼마 전에 막 대설 내리고 한파주의보 내렸을 때 저희 팀이 엄청 얼굴 빨개져서 들어갔을 때, 누가 그걸 보고 거절을 할 수 있겠어요. 들어가서 눈 마주치고 "안녕하십니까?" 이렇게 하는데 사장님들 입장에서도 "와, 이런 애들은 본 적이 없네." 이런 생각을 하시니까요.




Part 3. 단점을 고칠 시간조차 없다


Q. 팀에 대한 얘기를 한번 해 보고 싶은데요. 지금 어떻게 구성되어 있으세요?


지금 저희 팀은 6명이고, 전부 20대입니다. 전부 IT 쪽 출신이라고 보시면 될 것 같아요. 구성은 기획·디자인 1명, 프론트엔드와 백엔드 3명, 생산 품질 관리·산업공학 전공 1명 이렇게 구성되어 있어요. 저희는 20대, IT라는 두 가지 색깔을 갖고 있어서 그 두 가지를 정말 잘 살리려고 노력하는 팀입니다.


20대의 엄청난 열정을 잘 활용하려고 해요. 최소한 저희 파트너분들은 저희에게 반하게 만들어야 된다고 생각해서 저희의 열정을 파트너분들께 항상 보여드리려고 하고 있어요. 파트너분들께는 뉴스레터를 보내드리고, 대표님들께도 저희는 24시간 월화수목금토일 상관없이 언제나 소통 가능하다는 얘기를 항상 드립니다.


저희는 제조를 하나도 모른다는 걸 좋은 방향으로 접근하고 있어요. 사장님들께 아들이자 딸이라는 생각으로 정말 많이 배우겠다는 태도로 접근하고 있고, 자식이 부모님에게 주는 순수한 일침처럼 무례한 게 아닌 순수한 궁금함이라는 접근으로 제조업에 접근해서, 오랜 세월 동안 굳어진 관행이나 생각들을 바꿔가고 있습니다.


Q. 단점을 오히려 장점으로 적극적으로 활용하시는 거네요.


우리 팀이랑 항상 얘기했던 부분이 어리기 때문에 경험이 많이 없다는 게 단점이 될 수 있지만, 지금 그 단점을 하나하나 짚고 갈 시간이 없다. 그래서 우리는 무조건 장점만을 살리고 가자. 내부에서도 항상 얘기하는 게, 저를 포함해서 팀원 개개인이 사람으로서 덜 성숙한 부분들은 다 하나씩 있어요.


근데 서로 그걸 고치고 지적할 시간이 없거든요. 결국 각자의 장점이 있다는 건 모두가 확신을 가지고 있으니까, 서로의 장점만을 완전히 살리는 데 집중하고, 단점은 최대한 건강하게 피드백하고 서로 이 사업을 하면서 성숙해 지자는 식으로 생각하는 것 같아요.


매주 목요일마다 전사 회의 할 때 이런 피드백을 주고받거든요. 개개인이 거의 전날에 잠도 잘 못 자는 팀원들도 많고 다들 스트레스를 엄청 받아요. 피드백도 다들 엄청 진짜 살벌하게 던지고요. “이게 목적이 맞는 일인가요? 그러니까 나가서 고생하신 거 알겠고, 그거는 팀에 정말 영감을 주는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래서 이번 주목적과 달성에 어떤 기여를 했나요?" 이렇게. 저희는 무조건 그렇게 해야 해요. 왜냐하면 24시간밖에 없거든요.


Q. 덕분에 엄청 빨리 배우겠어요.


진짜 빨리 배워요. 그래서 일요일 저녁 되면 전사회의 생각이 나요. 그래서 일요일 저녁에 오는 사람도 많아요. 차라리 월요일 날 피드백을 받기 전에 전날 밤 불안하게 "내일 뭐 해야 되지?" 이럴 바에 그냥 7시쯤 와서 1시간 반 정도라도 내일부터 난 뭐랑 싸워야 한다 정리하고 가면 좋아요.


기술적으로도 저희 팀이 정말 독특한 게, 예를 들어서 “어떤 AI 모델을 만들고 싶다”라고 얘기하면 준선님이 그냥 어떻게든 만들어 버려요. 처음부터 공부를 하더라도 해서 만들어버려요. 제가 머릿속으로 "이런 UX랑 디자인이 생각난다" 하면 예지님이 한 이틀 안에 그냥 뚝딱 만들어 버리고. 다른 사람들은 한 2~3주 걸린다 하면 현진이는 그냥 밤 다 새서 한 4일 만에 다 만들어 버려요. 개개인이 각자 딱 그런 장점들이 있어요.


Q. 혹시 팀원 섭외 같은 건 어떻게 하신 거예요?


SOPT(솝트)라는 전국의 대학생 연합 IT 벤처 창업 동아리에서 회장 활동을 했어요. 국내에서는 지금 최대 규모의 창업연합 동아리인데, 그때 제가 생각했던 각 분야의 천재 같은 친구들을 계속 섭외하려고 했던 것 같아요.


한 분은 제가 대학에 있으면서 책임감이 가장 강하다고 생각했던 사람, 또 한 분은 엄청난 지구력이 있다고 생각했던 현욱형에게 같이 하자고 해서, 그 형이랑 저랑 서비스 초기에 전국에 180개 정도의 공장을 겨울엔 바들바들 떨고 한여름엔 땀 흘리면서 막 돌아다녔습니다.


현욱형은 원래 산업공학을 전공해서 생산 관리랑 품질 관리 쪽으로 공부를 계속하면서 대학원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제가 제안한 후 합류해서 엄청난 역할을 하고 계십니다. 운영과 생산이 아직 다 자동화되지 않아서 한 번은 팀원들끼리 다 같이 해본 적이 있거든요. 나눠서. 근데 다 못 버텼어요. 너무 스트레스가 심하고 힘들거든요. 그런데 현욱형은 혼자 지금까지 모든 걸 다 감당하고 있는데도 "괜찮다, 자기는"이라고 얘기하는 분입니다. 팀이 힘들 때 혹은 넛지(Nudge)가 필요할 때는 형이 항상 잡아줘요.


Q. SOPT 회장은 어떻게 하시게 된 건지 배경이나 겪었던 이야기가 궁금해요.


저는 21살에 첫 창업을 해서 23살에 매각을 했어요. 사실 저는 엄청 어릴 때 갑자기 창업을 하다 보니까 대학 생활을 노는 것 빼고는 그렇게 많이 안 해봤어요. 그 당시에는 30살 넘어가시는 분들과 같이 창업을 했으니까요.

매각을 한 후 어느 날 스타벅스에서 사업을 회고하고 있었는데, 지금 저희 프론트엔드 현지님이 갑자기 오셔서 막 울면서 얘기를 하는 거예요. "내가 동아리 팀의 기획자로 있는데 고민이 있다." 그래서 들어보니까 그 고민들이 제가 사업을 하면서 했던 고민들과 똑같은 거예요.


그때 제가 들으면서 속으로 생각했어요. '이거 사기 아닌가?' 누구는 직접 사업을 하면서 쇠 빠지게 고생하고 실패를 해봐야 겨우 할 수 있는 질문들을 이 친구는 동아리에서 하고 있는 거잖아요. 근데 그 고민들이 굉장히 재밌었어요. 그 친구가 SOPT라는 동아리를 완전 광신도처럼 엄청 높이 평가하면서 얘기를 하길래 "아, 뭐 그런 게 다 있냐" 이러면서 제가 들어갔는데 제가 광신도가 돼버렸죠.


김효재_중간삽입5.jpg ©지금여기


Q. 첫 창업에서 매각을 했던 이야기가 좀 궁금해요.


제가 그 당시에 좀 많이 힘들었거든요. 코로나가 갑자기 터지면서 제가 성향이 진취적이다 보니까 투자를 다 했는데 갑자기 모든 것들이 끊기니까 그걸 어떻게 대응해야 될지 모르겠더라고요.


근데 이제 사무실 문을 열면 그 당시에 저희 비전이 "도전은 우리가, 책임은 효재가"였어요. 이제 도전하고 있는 팀을 보니까 약간의 공황 장애 같은 게 오는 거예요. 왜냐면 답이 안 보이는데 책임이 온전히 나에게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 당시. 지금 생각하면 그 부담도 나누었어도 충분히 됐을 것 같은데 그 당시에는 그거를 좀 못 했던 것 같고요.


그래서 막 그 당시에는 침대에 누우면 ‘내가 누울 자격이 있나?’ 그리고 이제 근데 잠이 안 들면 ‘내가 내일 또 현명하게 해야 되는데 지금 잠 안 들면 안 되는데.’ 이러고, 아침에 눈 뜨면 ‘아, 일어나기 싫다. 근데 내가 지금 안 일어날 자격이 있나?’ 막 이러면서 다녔던 것 같아요. 그때 매각 제안이 굉장히 운이 좋게 찾아왔었고, 당시에는 이제 좀 "쉬고 싶다"라고 말씀을 드려서 저희 아이디어와 초기 팀만 넘어가게 됐어요.


Q. 그때 공황장애를 겪을 정도로 많이 힘드셨다면 다시 사업을 시작하는데 많은 용기가 필요했을 것 같아요.


1학년 때 7일 중 7일 술을 먹고 학점 1.5를 받았어요. 2학년이 되니까 현타가 왔죠. "이렇게 군대 가면 토익 공부만 하다 올 것 같은데." 근데 또 5월까지 아무것도 안 하고 술만 먹고 있었어요. 그때 고등학교 후배한테서 해외 전화가 온 거예요. 저는 사실 "세상이 호락호락하지 않더라"는 얘기를 하려고 전화를 받았는데, 애가 바로 제 말을 끊더니 "선배, 저 좀 힘들었어요"라고 하는 거예요.


들어보니까 수능을 망쳤대요. 꿈이 항공우주였는데 어머니가 "서울대 항공우주 가도 NASA 못 가는데 간호학과나 가라" 하셨대요. 그 말에 화가 나서 편의점 알바를 세 군데 돌면서 돈을 모아 부모님한테 말도 안 하고 혼자 미국으로 떴대요. NASA 기지가 있는 텍사스로. 이불, 나사, 베개만 들고 가서 회전 초밥집 알바를 하면서 공부를 시작한 거예요. 그러다 알바하면서 인종차별을 당했고, 너무 서러워서 저한테 전화를 한 거였죠. 그 얘기를 듣는데 너무 쪽팔린 거예요. 저는 엄마 용돈 받고 집에서 따뜻하게 누워서 게임하고 있었는데. 안 할 이유를 핑계로 댈 수가 없었어요.


저는 그날 부모님 앞에서 펑펑 울면서 "뭐라도 하고 싶다"라고 했어요. 그게 재창업의 시작이었습니다. 지금도 마음이 흔들릴 때마다 그 동생이 그래요. "선배, 그때 눈물 보이실 땐 언제고, 또 힘든 소리 하냐. 살고 싶었던 삶 아니었냐?" 저한테 엄청 귀인이죠.


Q. 그런데 꼭 제조업 시장을 바꾸고 문제를 해결하는 걸 효재 님이 해야 되는 건 아니잖아요. 계속 집중하고 몰입하는 힘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요?


결국에는 저는 제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그 시간을 투자할 곳을 찾아야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고요. 제 지금 나이와 지금 27, 28, 29 계속, 그 해마다 어딘가에 계속 저를 투자해야 되잖아요. 그 투자처를 매번 찾았던 것 같아요.


21살 첫 창업 때도 충분히 투자 대비 리턴값이 돈이 아니더라도 나름 가치가 있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고, 제조업도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고요. 힘든 일을 도전하는 것도 제가 직접 하고 피부로 느끼는 게 지식이 제일 현실적으로 와닿거든요. 가공되면 결국 그 와닿음이 덜한 거니까요. 매번 그 시간 대비 투자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일단 나한테.


제가 모르고 무지한 거는 느낄 수도 없고 알 수도 없잖아요. 사람이 모르는 영역에서는 판단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저는 ‘뭔가 더 나은 가치가 있을 거야’라는 생각으로 투자를 안 하는 것보다는, 지금 제조업 문제를 딱 봤을 때 ‘이걸 해결했을 때 충분히 가치가 있을 것 같다’라고 느끼면 안 할 이유가 없다는 식으로 생각하는 것 같아요. 현장에 직접 나가는 것도 제가 지금 현장에 나가는 것보다 더 중요한 행동들이 있고 더 힘든 일이 있다, 더 가치 있는 일이 있다. 이러면 안 나가지만 지금 제가 쓰는 3~5시간이 더 가치 있다는 판단하에 행동하는 것 같아요.





혜인

효재 님과의 대화를 마치고 나오면서 한동안 발걸음이 가벼워지지 않았습니다. 그의 이야기는 자극적이거나 화려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솔직 담백했습니다. 공장 문을 두드리고, 거절당하고, 다음 날 또 찾아가고. 그 반복이 쌓여서 지금의 쭉이 됐다는 걸 들으면서, 저는 내내 '나는 얼마나 많은 것들을 해보기도 전에 포기했을까'라는 질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가장 인상 깊었던 건 그가 오히려 힘든 것에서 신호를 읽어낸다는 점이었습니다. 안 된다는 말속에서 힌트를 찾고, 거절당할수록 확신이 생긴다는 그 마인드는, 단순한 긍정이나 뚝심과는 달랐어요. 27살의 효재 님이 지금 이 길을 걷고 있는 이유는 대단한 사명감이나 거창한 꿈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그냥, 지금 자신이 쓸 수 있는 시간을 가장 가치 있는 곳에 투자하고 싶다는 단순하고도 단단한 마음. 그 마음이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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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er 유혜인, 세모스

Editor 유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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