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척'하지 않아 더 멋있는 사람
제씨
황현태 대표님은 원래 잘 알고 있던 분은 아니지만 꾸준히 관심 있게 봐오던 분입니다. 제가 하고 있는 비즈니스인, Talent matching*이라는 맥락을 같이하기도 했고, 저도 DIO의 유저로서 고용주가 되어보기도, 그리고 아주 창업 초기에는 돈이 없어 외주 프로젝트도 DIO를 통해 진행해 봤거든요.
이 대표님의 이야기를 읽어보고, 또 여쭤보고 나니 저는 이상하게 흑백요리사의 최강록 셰프가 떠오릅니다. 최강록 셰프의 어수룩하면서도 내공이 있는 단단함. 그 갭에서 오는 매력이었을까요.
이게 제가 첫 인터뷰 대본을 받아본 이후 든 생각이었고, 이 대표님에 대해서 꼭 이야기를 풀어보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무척 흥미로웠던 지점이 하나 더 있습니다. ‘SI를 하겠다는 이상한 스타트업’이라는 한 문장 뒤에, 저는 오히려 누구보다 치밀한 세계관과 뚜렷한 기준을 가진 창업자를 보았습니다.
이건 단순히 ‘기술 잘하는 개발자 출신 창업자’의 이야기가 아니라, 낡은 질서를 문제 정의부터 다시 쓰려는 사람의 이야기에 가깝다고 느껴졌습니다.
*Talent matching : 기업의 채용 공고와 이력서를 단순히 연결하는 것이 아니라, 조직이 처한 문제와 필요한 역량을 기준으로 적합한 인재를 연결하는 방식.
'DIO (디오)' 황현태 대표
DIO는 원래 프리랜서 개발자와 기업을 연결하는 플랫폼이었지만,
지금은 팔란티어식 개념을 재해석한 FDE(Forward Deployed Engineer) 모델을 중심으로,
대기업·공공기관 현장에 소수 정예 엔지니어를 투입해 문제를 정의하고, 빠르게 만들고, 실제로 작동하는 결과를 내는 회사입니다.
Q. SI 시장, 대표님은 어떤 마음으로 접근하셨나요?
이름 하나도 못 들어본 회사들인데 700억, 800억, 1,700억씩 번다… ‘SI 시장이 뭐지?’라고 생각했습니다.
작은 회사들이 막대한 매출을 내는 구조를 보고, ‘젊은 개발자들이 들어가기 어려운 울타리’가 있는 산업이라는 문제의식이 생겼습니다.
선배들을 찾아가 공시 자료를 다 조사하면서 처음 든 생각이었어요.
자료를 직접 파고들며 구조를 이해한 뒤, ‘문제를 푸는 방식 자체’를 바꾸는 게 더 의미 있다고 판단했어요.
사람 수로 돈 버는 게임을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개발자 맨먼스(Man-Month)가 아니라 컨설턴트 맨먼스로 보상 구조를 바꿔, 인력 투입이 아닌 문제 해결 가치에 가격을 매겼던 것 같아요.
Q. SI 고객 대면할 때는 어떻게 하세요? 어렵진 않으세요? 지금은 어떤 식으로 진행하세요?
지속적 클로딩을 하면, 며칠 만에 꽤 그럴싸한 시스템을 고객에게 보여줄 수 있습니다. 클로드 같은 AI 코딩 도구로 짧은 주기의 프로토타입을 계속 돌리며, 고객과의 동상이몽을 줄이고 있어요.
제안서가 아니라 실제로 동작하는 걸 들고 갑니다. 문서보다 ‘작동하는 결과물’이 설득력이 크고, 경쟁에서도 유리하다는 판단이에요.
Q. SI는 사람들이 떠올리는 SI와 뭐가 다르다고 보세요? DIO는 이런 차이를 만들기 위해서 가지고 있는 기준 같은 것들이 있을까요?
사람 수로 돈 버는 게임을 하고 싶지 않았어요. 이게 제일 컸던 것 같아요. SI 자체가 문제라기보다, SI가 작동하는 방식이 문제라고 봤어요. 그래서 개발자 맨먼스가 아니라 컨설턴트 기준으로 가격을 책정했고, 투입 인력 수가 아니라 문제를 얼마나 정확히 정의하고, 얼마나 빨리 해결했는지에 더 비중을 뒀습니다. “문서 잘 쓰는 회사 말고, 문제를 잘 푸는 회사가 되고 싶었다”라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 같아요.
Q. 대표님께 받았던 사전 질문지에 삼성전자의 일보다 창원시청이 더 매력적이라는 비유를 쓰셨어요. 사실 창업자 입장에서 삼성전자는 안 좋아할 이유가 없는 이름 이잖아요. 그런데도 창원시청이 더 끌리는 이유! 같은 것이 있을까요?
삼성전자는 이미 10점짜리 시스템을 쓰고 있지만, 창원시청 같은 곳은 3점짜리 시스템을 쓰고 있습니다. 10점을 11점으로 만드는 일보다 훨씬 큰 변화입니다. 업무 효율, 시민 경험, 공무원 만족도가 실질적으로 달라지는 임팩트가 있는 작업이에요. 결국 단순히 매출 규모가 아니라, ‘낙후된 시스템을 재건축하는 일’이 DIO의 비전과 직결되어 있기 때문에 더 큰 희열을 느끼거든요.
Q. 그렇다고 창원시청이 3점에서 10점으로 빨리 가는 곳은 아닐 것 같아요. 대표님께서 고객을 선택하는 어떤 기준 같은 것이 있을까요?
저도 처음에는 팡팡팡팡 성장하는 스타트업의 대표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그런 멋들어진. 처음엔 성장도 하고, 매출 20억 만들어보는 경험도 하고. 이것만 바라보면 성장하지 않고 정체되었을 때의 상실감이나 방향성을 잃는 것들을 경험했어요.
저는 스타트업은 비전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저희 비전은 “대한민국 IT 인프라 재건축”이라고 하거든요. 우리나라가 97년 김대중 정부 때 초고속 인터넷 깔고 이것저것 IT 강국이 되면서 그때 쌓아놨던 게 아주 다시 낙후되어 가고 있다고 생각하고요.
97년, 98년, 99년, 2000년도에 그 IT 쫙 깔고 다녔던 사람의 그 영광을 한번 재현해 보고 싶다. 나도. 얼마나 재미있었을까? 동사무소 가서 떼야하는 서류, 전부 키오스크로 다 바꾸고, 인터넷으로 다 바꾸고. 그 시기가 너무 멋있고 저도 해보고 싶고, 우리 팀의 젊은 Talent를 가진 개발자들도 모두 이 경험을 해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Q. "대한민국 IT 재건축"을 하고 싶은 진짜 이유가 뭔가요? 사업을 하다 보면 결국 네임밸류를 택해야 하는 순간도 존재할 것 같아요.
솔직히 말하면 B2B 비즈니스니까 장사를 할 때 “포트폴리오입니다.” 하고 딱 보여줄 수 있는 게 삼성전자, LG전자 탁탁탁 박혀있는 가장 좋죠. 저도 압니다. 근데 사업을 오래 하다 보니까 일단 식당을 차렸으면 “맛집”이 되는 게 먼저입니다. 어떤 상 받고, 네임벨류 얻고 이런 것보다요. 일단 진짜로 맛이 있어야 하는구나. 그럼 우리는 어떤 맛집이 될 건데라고 했을 때, 저는 공공기관의 낙후되는 시스템들에 쓰고 싶었어요.
왜냐하면, 대기업은 자본주의 사회라서 알아서들 잘할 거거든요. 돈 벌기 위해서. 공공기관은 자본주의 사회가 아니어서 계속 낙후되는 거예요. 이해관계가 자본주의처럼 움직이지 않거든요. 저희가 가지고 있는 칼이 무기라고 하면, 이런 곳에 쓰는 게 저는 기분이 가장 좋더라고요. 공무원들이 "와, 이렇게 편할 수가 있어요?"라고 하고, 민원인들이 "시청 시스템이 이렇게 좋아졌네요"라고 하고, 실제로 업무 효율이 확 올라가는 걸 보는 거예요.
Q. 대표님의 링크드인을 살펴보니 FDE라는 개념이 자주 언급되는데요.
FDE는 'Forward Deployed Engineer'로, 말 그대로 FDE는 고객사 현장에 들어가 낡은 시스템의 구조를 이해하고, 현장에 투입되는 엔지니어입니다. 팔란티어에서 처음 썼어요. 이 사람들이 하는 일은 고객사에 맞게 우리 솔루션을 커스터마이징 해주고, 넘어서 먼저 고객의 문제를 정확하게 파악해서 이런 게 필요하겠다는 내용을 제시할 수 있어야죠.
FDE가 내부에도 있고, 외부에도 있어요. 저희는 개발자 정말 많이 써봤거든요. 진짜 똑똑한 문제해결하는 개발자만 솎아 내는 거죠.
Q. 요즘 대표님 이야기 들으면, FDE가 그냥 ‘역할 이름’은 아닌 것 같아요. DIO가 말하는 FDE가 생기는데, 어떤 계기 같은 것이 있었을까요?
가장 놀란 건 우리 플랫폼의 매출이 어느 정도에서 멈춰버렸었다는 것. 이미 창업씬에 들어왔는데 계속 두드렸는데도 (성장곡선이) 비슷한 거예요. 피봇을 창업할 때마다 정말 많이 했는데, 이 과정에서도 당연히 여러 시도를 했었죠. 원티드 같은 뭐 취업 플랫폼, 뭐 그런 거 해보려고 하고. 왜냐하면, 풀이 많으니까. 아니면은 뭐 AI로 후보 찾아주고 이런 거 하려고 했었고. 그런데 제가 여기서 느꼈던 게 고통의 크기가 센 문제들이 있어요.
‘나 지금 버그 너무 많이 나서 빅테크에 잘하는 개발자 같은 분들 있으면 될 것 같은데’ 이러면 디오로 바로 설득이 가능한 거예요. 그런데 채용 플랫폼들은 약간 고통의 크기가 세지 않더라고요. 왜냐하면, 난 사람 뽑고 싶어. 여러 채용 플랫폼에 골고루 올리고 한 3달 기다려. 이건 그렇지 않은 거거든요. 정규직 채용이라는 건 고통의 크기가 좀 떨어지더라고요. 고통의 크기가 작으면 양은 많아야 한다. 그런 생각은 했었고요.
Q. 오.. 재밌네요. 저도 공감하는 부분이에요. 그래서 대표님이 선택한 방향이 있었나요?
저희가 작년엔 그래서 어떤 프로젝트를 했었냐면, DIO에서 사람 구한다고 하면 ‘매칭만 시켜주고 빨리빨리 진행해.’ 이런 게 아니라 개발자들의 업무를 다 일일이 검토해서 품질을 올리자. 이거 진짜 자신 있으니까, 해병대처럼 해보자. 사관학교같이 해보자. 해서 이제 이 “CCTV 프로젝트”를 시작합니다. 품질을 올리자. 맛집이 먼저 돼야 한다. 이것과 Operation 자동화가 같이 갑니다. 저희 뭐 처음에는 기초적인 것부터 했어요. 출퇴근 시간 정하고 뭐 출퇴근 체크하고 한일 체크하고. 지금은 가입하자마자 슬랙 초대 왜 아직도 안 됐어? 노션 초대 아직도 안 됐어? 깃헙 초대 아직 안 됐다. 혹시 프로젝트도 안 들어갔어? 아 코드 양이 좀 작다. 이거 시킨 일이 아닌데? 이런 것들 일일이 체크했죠. 진짜 개 피곤합니다. 근데 이래야. 맛집이 되니까.
감시받는 개발자 프리랜서 쓰고 싶으세요? 그럼 DIO로 오세요. 라는 내용까지 써서 광고하고 싶더라고요. 이걸 시작으로 지금도 계속해서 어떻게 하면 덜 귀찮게 하면서, 어떻게 하면 더 많은 관리 포인트를 잡아, 아웃소싱 퀄리티를 올릴 수 있을까를 계속 고민합니다. 그리고 이게 기반이 돼서 우리는 Enterprise로 이제야 가는 거예요. 좋은 인재들을 솎아서. 그걸 베스트만 모은 게, FDE라는 포지션이에요.
Q. FDE가 DIO 내부에도 있고, 프리랜서 형태로도 존재하는 구조를 보면 겉으로는 굉장히 아름다운 인재 공급 모델처럼 보이는데요.
네 그런데 여기도 아름답지 않은 구조는 있어요. 예를 들어서 그렇게 괜찮은 애들이 많냐. 별로 없을 것 같은데, Scailability 안 나오는 거 아니냐에서부터 여러 가지 비즈니스적으로 의심되는 포인트들이 있습니다. 지금 FDA들은 뭐 똑똑해요. 막 과학고 나오고 뭐 컴퓨터과 뭐 소프트웨어 마이크로 삼성전자 경험도 있고, 창업 경험도 있고. 이게 1명의 커리어에요. 근데 이런 크루들만 있는 건 아니고요. DIO에서 발견한 일 잘하는 크루들도 숨어있고요. 지금은 투자도 모르겠고요. 진짜 장사하려면 난 이렇게 한다. 이렇게 생각하고 있고요. 스케일이 얼마나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무한 공급할 수 있지 않을까? 정도 생각을 하는 단계입니다.
Q. 대표님과 같이 일하는 분들은 어때요, 또는 같이 일하고 싶은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인가요?
unsexy 비즈니스,라는 말을 싫어하는데.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이 일련의 모든 것들을 이해해 줄 수 있는 teammate들을 다 모셔야 한다. 아니라면 사실 같이 가기 힘들어요. 이게 막 화려하고 멋있는 일이 아니잖아요. 이게 고통의 크기가 큰 문제들이라서 그래요. 이걸 이해 못 하면, 사실 같이 가기 되게 힘들어요. 그게 지금 계속 모시고 계시는 분들입니다. 나이나 경력보다는, 이 일을 왜 하는지에 대해 이해하고 있어야 하잖아요? 그러다 보니 99년생 엔지니어도 있고 62년생 엔지니어도 있는 희한한 팀이 됐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일을 잘하는 사람은, 자신감과 약간 실력에 짬이 있어야 해요. 근데 그 짬이라는 게 꼭 나이만은 아니에요. 저희는 개발자 진짜 많이 써봤거든요. 그래서 이제는 딱 보면 알라요. 문제를 해결하려는 사람인지, 아니면 그냥 일만 하려는 사람인지. 이 일이 어떤지 알고도 ‘그래도 해볼 만한데요? 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어요. 이게 제가 함께 일하고 싶은 사람이 가졌으면 하는 실력뿐 아니라, 태도에요.
그러다 보니 이런 희한한 팀이 되었는데, 저는 되게 좋다고 생각해요.
Q. 지금의 우리 팀 같은, 좋은 사람들을 잘 모으려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대표님 주변엔 어떤 것들 때문에 귀인이 많을까요?
글쎄요. 제가 엄청 똑똑하고 그렇다기보다, 부족하니까 나를 도와주고 싶어서 모인 게 아닐까요? 제가 엄청 대단한 사람은 아니거든요. - 아 윤리적이긴 합니다. 사기꾼은 아니에요. - 그리고 저는 저보다 잘하는 사람들이 저보다 윗선에서 일을 주는 게 좋아요. 제가 똑똑하기보다는 근면한 편이에요. 그리고 대표이지만 팔로워십이 강한 것 같아요. 그래서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 제가 그들을 좋아하고 정말 존경하기도 하고, 또 믿어요. 송학 형도 그렇고, 제가 이전 창업인 혜움에서 나왔을 때도 이 형과는 너무 다시 같이 일을 하고 싶었거든요. 제가 엄청나게 좋아하고 존경하기도 하고 - 아주 편하지만, 또 마냥 개인적인 영역을 침범할 만큼 편하지는 또 않거든요. 형이 없으면 이 사업을 못 해낼 만큼 엄청 중요한 사람이에요.
이철 부대표님도 여러 가지 조언을 주시지만, 세상 길게 봐야 하고 그런 고민을 많이 합니다. 하여튼 염세적으로 되면 안 되고 항상 꿈을 가지고 있어야 하므로 그걸 계속 유지하려고 노력하고요. 저는 죽을 때까지 일할 것 같아요. 지금은 이걸 할 수 있을 때까지 해보고 싶다. 목표 같은 것이 있다기보다는 젊었을 때를 돌아보면서, 아 나 이런 걸 이뤘었네. 그래도 재밌었네. 재밌긴 했어. 이런 생각이 들지 않을까 싶어요.
제씨
대표님의 이야기가 특히 더 인상 깊었던 건, 무엇보다 ‘척’ 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점이었다.
스타트업 대표라는 자리는 때로는 확신에 찬 말과 내가 만들어 갈 미래를 아는 듯한 태도를 요구받는 포지션이기도 한데, 황현태 대표님은 그런 역할 연기를 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느꼈다. “그건 잘 모르겠는데요.”, “제가 팔로워십이 강해서요.” 같은 말들을 숨기지 않고 꺼낼 수 있는 자신감. 그 말들 안에는 스스로에 대한 과장 없는 이해와, 함께 일해온 사람들에 대한 존중이 자연스럽게 묻어 있었다.
인터뷰를 마치고 나서는, 이상하게도 계속 나의 비즈니스에 관한 이야기를 돌아보게 되었다. 나는 지금 어떤 문제를 택하고 있는지, 내 비즈니스는 ‘맛집’이 되기 위해 어떤 불편함을 감수하고 있는지, 그리고 나는 어떤 사람들과 이 일을 계속해 나가고 싶은지. 화려한 성장 이야기가 아니라, 오래 고민한 흔적과 선택의 이유가 또렷한 사람을 만났다는 느낌. 인터뷰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그들의 관점속에서 스스로를 점검해보는 순간이 있다. 바로 이런 지점이 내가 창업자 혹은 열정있게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과의 인터뷰에 계속 흥미를 느끼는 이유가 아닐까.
Interviewer 제씨
Editor 유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