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김태완 | 제로투원은 결국, 실행이 만든다

스타트업보다 더 스타트업 같은 양조장

by 장주인




세모스

두 번째 인터뷰이는 일견 모순처럼 느껴졌습니다. 블록체인 분야에서 7년을 보낸 사업가가 갑자기 충남 부여의 연고 없는 땅에서 전통주를 만들고 있다. 그보다 더 특이한 것은, 양조장에서 술을 생산하고 관리하는 것만으로도 버거울 것 같은데, 거의 매일 인스타그램 콘텐츠를 기획·출연·편집하며 고객들과 직접 소통하고 있다는 점이었어요.


김태완 대표는 과하주라는 500년 전 잊힌 술을 현대화하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입니다. 그 결과물이 감탄주. 고문헌 속 레시피에서 출발해 1,000명 이상의 고객 인터뷰를 거쳐 1년 6개월 만에 완성된 술이에요.


무엇이 이 사람을 이렇게 집요하게 만드는가? 궁금해졌어요. 인터뷰 과정에서 보인 건 단순한 사업가의 태도가 아니었습니다. 그의 관심은 성장의 속도보다는 의미와 깊이에 있어 보였어요.




‘객제’ 양조장 김태완 대표

블록체인 서비스를 창업했다가 매각한 경험이 있는 사람이에요. 가장 빠른 분야에 있었지만 지금은 가장 느린 제조업에서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있는 셈이죠.


잊힌 전통주를 복원하여 알리겠다는 목표로 '감탄주'를 개발했습니다. 생산부터 영업, 마케팅까지 전 분야에서 직접 발로 뛰며 양조장을 운영하고 있어요.



Part 1. “황무지에 하나씩 쌓아올리는 공간”


인터뷰를 진행 중인 김태완 대표


Q. 먼저 간단히 하는 일을 소개해주실래요?


한 문장으로 줄이는 게 좀 쉽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간단히 얘기하면 500년 전 잊혔던 과하주라는 술의 세계화를 시키는 프로젝트를 위해서 감탄주를 개발하고 알리고 있는 양조장을 하고 있습니다.


Q. 지금은 양조장을 운영하고 있지만, 그 이전에 블록체인이라는 전혀 다른 세계에 오래 계셨잖아요. 그 경험이 지금 무언가를 직접 만들고 있는 양조장이라는 선택과도 닿아 있는 것 같아요. 어떻게 연결되어 있다고 느끼시나요?


대학교를 졸업 후 되게 불안정하고 뭘 해야 할지 몰랐어요. 그래서 일단은 더 넓은 데로 가는 건 맞고 지금 당장 회사 들어가서 하는 거는 재미가 없고 의미 없다는 걸 깨달았는데 그때 당시에 방황하다가 찾게 된 게 비트코인이었던 거죠. 블록체인을 그때 처음 알게 되었는데, 우선은 가격의 급등락이 되게 신기했던 점도 있지만 그 철학이 되게 재미있었어요.


크립토(crypto)* 세상을 하나로 새롭게 만들어 쌓아 올리고 그 속에서 빌더로서 하나씩 다 쌓아서 만들어가는 느낌이 있는 곳이었거든요. 황무지에 뭔가 계속 만드는 느낌이었어요. 그런 점이 재미있고 끌렸기 때문에 7년 동안 두 번의 사이클을 보면서 계속 있었던 거죠.


모든 사람이 망한다고 할지라도 가격적으로 떨어져서 망한다고 하는 거라서 저한테 크게 와닿지 않고 철학과 원칙이 너무 매력적이었어요. 각 블록체인 프로젝트마다 그리는 비전이나 방향이 너무 재미있고 흥미로웠기 때문에 더 즐거웠어요. 그리고 추가로 대학생 때 교환학생 경험 이후로 해외에 대한 동경을 항상 가지고 있었는데 블록체인은 미국에서 가장 앞서서 하잖아요. 항상 최신의 외국 자료로 접할 수 있었기 때문에 외국과 좀 더 가까워지는 느낌이 있어서 더 좋았던 것 같기도 해요.


그래서 7년 동안 두 번의 창업을 하면서 이제 저를 좀 안 거죠. 나는 ‘만들어진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직접 문제를 정의하고 그걸 스스로 해결하는 것’을 더 좋아하는 사람이구나. 그리고 제로투원(0 to 1)*을 할 때 희열을 엄청나게 느끼는구나 생각했어요.


그래서 아무것도 없는 황무지에서 10명 중의 9명이 안 된다고 해도 오히려 거기서 확신을 얻고 내가 그 한 명이 되면 되겠다는 마음으로 해요. 그리고 그 마음을 실제로 일으켰을 때 거기서 큰 것들을 얻고 정말 그게 나다운 거라는 것을 느껴요. 그 7년 동안 그렇게 해왔기 때문에 양조장까지 이어진 거죠.


*크립토 : '크립토커런시(cryptocurrency)'의 줄임말로 '암호화폐'를 의미
*0 to 1 : 피터 틸의 동명 저서에서 유래한 개념, 세상에 없던 것을 '0'에서 '1'로, 즉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혁신을 의미


Q. 연고도 없던 ‘부여’라는 지역을 양조장 터로 선택하게 된 과정이 굉장히 독특한데요. 처음 양조를 결심한 순간부터, 부여에 정착하기로 마음먹기까지의 여정을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이것도 한순간은 아닌데 제가 계속 IT 쪽에 있다 보니까 크립토 쪽에 계속 관심이 있었어요. 크립토에서도 투자보다는 기술적으로 매력을 느껴서 포기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계속 있었거든요. 그렇게 여러 가지 개발 쪽으로 계속 탐구했어요. 그런데 이걸로 내가 창업하기에는 마음이 크게 와닿지 않았어요. 그 상태에서 계속 시간을 보내다가 우연히 전통주라는 걸 알게 됐죠.


우연히 알게 된 분의 지인을 통해 한식 주점을 같이 갔는데 전통주가 3~5만 원에 판매되는 걸 보게 됐어요. 그동안 솔직히 전통주에 대해서 잘 몰랐고 한국 술이 한 병에 5만 원짜리인 술 자체도 잘 몰랐었거든요. 그래서 ‘와 이거 신기하더라’는 마음이 처음에 들었죠.


그 당시 제가 잘 아는 분야로 썼던 전자책으로 매출도 몇천만 원 나왔었거든요. 그런데 그게 재밌지 않았어요. 내 삶의 1순위가 돈이라는 생각은 크게 안 했었던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까 그때 당시에 전통주라는 새로운 게 저한테 들어왔어요. 나아가 전통주 제조업과 전통주를 한번 공부해 볼까 하는 마음으로 처음에는 호기심으로 하게 됐어요. 그래서 호기심으로 양조장도 가보고 전통주를 몇 개월 동안 배워보고 이러니까 점점 더 왠지 모를 확신 같은 게 생겼어요.


Q. 어떤 부분에서 확신이 들었을까요?


제가 약간 청개구리 기질이 있거든요. ‘10명 중의 9명이 하지 말라 힘들 것 같다’라고 하면은 그 속에서 기회가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에요. 전통주를 배울 때, 같이 배우던 사람들이 다들 힘들어서 안 하고 싶어 하고 그냥 즐기고만 싶어 하더라고요. 그런 거 보면서 내 속에, 이전에 it로 가졌던 기반이랑 전통문화대에 들어와서 나만의 무언가를 만들었을 때 더 크게 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마음속에 계속 자리 잡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그때쯤부터 전통주를 해야 하겠다고 마음을 먹고서 계속해 왔던 거죠.


처음에 양조라는 걸 하겠다고 선택한 다음에는 양조장을 어디에 할지 고민을 많이 했어요. 원래는 서울에서 살았기 때문에 서울을 1순위로 생각을 했거든요. 성장을 1순위로 생각했기 때문에 서울 공간들을 탐색했는데 마음에 드는 곳이 없는 거예요. 그때는 직감을 좀 많이 따르려고 했었던 것 같아요. 그러면 수도권을 좀 다니자 하고 1순위로 생각한 게 판교 분당 쪽이었거든요. 근데 거기도 마음에 드는 곳이 없어서 경기도에 있는 모든 곳을 한번 다녀봤죠. 그런데도 마음에 드는 곳이 없어서 이제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 제주도 여러 곳을 다녔죠. 다니면서 그제야 후보군이 몇 개가 생겼어요.


그때 함께 했었던 게 하나금융그룹에서 하나 소셜 유니버시티라는 걸 진행하는데 지역의 대학교에 지원금을 줘서 창업가들을 키우는 건데요. 그 지역을 선택할 때 서른 군데 대학 중에서 부여에 한국 전통문화대가 있는 거예요. 전통문화대면 술에 대한 전문가도 있으려나 하는 호기심으로 선택해서 다녔는데 그때 인연을 되게 많이 만났어요.


부여에 있는 사람들이 다 저를 되게 신기해했어요. 연고도 하나 없고 서울에서 이전에 창업도 했던 사람이 갑자기 뚝 내려와서 ‘뭐 하는 사람이지'라는 궁금증이 있었어요. 일단 의심도 많이 하긴 했지만, 그중에서 저를 좋게 본 한 두세 친구가 저를 계속 도와주는 거예요.

제가 무슨 말 하려고 하면 이 사람 만나보면 돼 이러고 연결해 주고 그래서 그 기억이 오래 남아서 부여에 한 달에 서너 번을 갔어요. 그러다가 한 석 달 정도 고민하는 시간이 있었고 양조장을 부여에서 하면 괜찮겠다 싶어서 정하게 된 거죠.


인터뷰를 진행 중인 김태완 대표


Q. 전통주를 만들기로 했을 때도, 굳이 과하주라는 다소 낯선 술을 선택하셨어요. 태완님이 ‘이 술을 만들어야겠다’고 마음먹게 된 이유와 그 과정이 궁금합니다.


양조장을 일단 하기로 결정이 됐잖아요. 저는 일단은 삶을 살아가는 데 항상 그 이유가 중요하거든요.

양조장을 했으면은 그냥 찍어내는 대기업처럼 찍어내는 술들은 흥미가 생기지 않았고 그 속에 의미 있는 술을 만들어서 양조장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컸어요. 그래서 그때 계속해서 양조에 관한 공부를 계속했어요.

연구소 같은 데 들어가서 1년 동안 수련 과정을 거치기도 하고 그러면서 고문헌에 관한 공부를 많이 하려고 노력했어요. 예전에 조선시대 때 있던 기록을 많이 찾아보고 거기에 대한 수업도 많이 들어보려고 하고 그러다가 매력적인 술들을 몇 가지 발견했고, 그중에서 내가 가장 만들고 싶은 술은 뭘까에 대한 답을 찾다가 그게 과하주라고 생각했죠.


왜 과하주냐면 일단 조선시대 때 과하주라는 기록이 고문헌 속에 한 40여 군데 넘게 기록되어 있을 정도로 엄청나게 유명한 술이에요.

과하주가 그 당시 얼마나 유명했냐면 우리가 지금 소주, 맥주, 막걸리라고 부르잖아요.

과하주라는 주종이 따로 명칭이 있을 정도로 유명했어요. 양반들 사이에도 유명하고 실제로 이순신 장군이 신하와 나눠 마시고 즐겨 마셨다는 기록도 난중일기에 남아 있어요.


그래서 이 술을 만들어 보자는 게 있었고 레시피 자체가 좀 독특했는데 어떻게 독특했냐면 과하주라는 뜻이 지날 과(過)에 여름 하(夏)라는 뜻으로 여름을 지나는 술이거든요. 술이 여름에 잘 상하고 막걸리도 며칠 지나면 폭발하잖아요.

그 단점을 극복한 술인데 만드는 방식을 설명해 드리면 막걸리가 만들어지는 중간에 진짜 독한 50도 이상의 술들을 부어요. 그러면 그 모든 효모가 활동이 중단되면서 보관 기간이 길어지거든요. 그래서 그런 과정을 거쳐서 보관 기간도 늘어나는 거예요.

그렇게 되면 수출도 가능하고 여러 가지 복합적인 이유로 과하주라는 술을 선택하게 됐어요.


Q. 감탄주 개발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발견이 있었나요?


원래 과하주는 한라봉이 들어가진 않아요. 역사적으로 일단 과하주라는 술을 찾고 나서 이 술에 더 의미가 있으려면 역사적인 의미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지금 사람들이 좋아하는 술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술을 만들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게 고객 인터뷰였어요.


원래 제품을 만들 때 개발기간을 한 3~4개월 동안 예상을 했거든요. 근데 인터뷰를 진행하면 할수록 답을 찾는 과정이 3~ 4개월은 너무 부족했어요. 그래서 좀 더 시간을 들여서 개발하기로 마음먹고 1,000명이 넘는 고객분들과 인터뷰했어요. 1시간 넘게 인터뷰를 진행하기도 하고 대상은 일반인부터 국가대표 소믈리에까지 다양하게 있었어요. 이런 과정을 계속 거치면서 인터뷰를 한 결과 총 개발기간이 1년 6개월이라는 시간이 걸렸어요.


처음에 고문헌 속에 있는 레시피에서 출발해서 고객 인터뷰의 의견을 들으면서 계속해서 지금 사람의 입맛으로 맞춰가는 지점에 있었죠. 그 맞춰가는 지점 중의 하나가 시트러스를 첨가하는 거였어요. 원래는 한 10명 중의 2명만 좋아했어요. 2명은 원래 전통주를 좋아하는 사람이고 나머지 8명은 호불호가 나뉘었다면 시트러스를 넣는 순간 갑자기 10명 중에 8~9명이 좋아하는 술로 바뀌는 거예요. 그래서 아, 이게 키(key)다 라고 생각해서 이제 감귤, 천혜향, 한라봉, 황금향, 레드향까지 여러 가지 테스트를 한 거죠. 그중에 고객 반응이 한라봉으로 넣은 게 가장 좋다, 가장 적절하고 잘 맞다고 해서 한라봉을 선택하게 됐어요.


Part 2. “가장 잘 되고 있을 때, 위험을 느끼다”


Q. 연말이잖아요. 올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느꼈던 점이 있었나요?


올해 할 것들은 다 끝내고 이제 그동안 있었던 일을 회고하는 중이에요. 내년에 뭘 어떻게 하면 좋을까에 대한 고민이 많습니다. 제가 11월에 좀 힘들었는데, 마음을 정리하고 이제 앞으로 어떻게 가야 하겠다는 마음을 잡으니까, 지금은 좀 홀가분해진 느낌입니다.


대형 백화점 팝업을 마치고, 체력적이고 정신적으로 한계를 많이 느꼈었거든요. 전통주가 팝업을 하는 경우가 많지 않다 보니, 백화점 측 담당자 분과의 소통도 원활하지 않았어요. 팝업 기간만을 위해서 11월 전체를 여기에만 썼는데도요. 물론 결과적으로 좋은 성과가 나서, 끝나고 나서는 잘 마무리가 되었는데요. 이때를 계기로, 굳이 이 타이틀 하나를 위해서 인력을 갉아먹으면서까지 당장 갈 필요는 없겠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예전에는 그냥 바쁘면 전부라고 생각했거든요. 역량 밖에 있는 일도 처리하자는 생각으로 벌여놓은 일들에서 엄청나게 가지를 많이 치면서 확장하는 식으로요. 왜냐하면 뭐가 정답이 될지 모르니까요. 근데 직접 해보고 난 다음에 느끼는 바들이 있었어요.


Q. 직접 느꼈던 것을 조금 털어놔주신다면요?


7~9월까지는 투자받겠다는 마음이 있었거든요. 그러니까 일단 숫자를 무조건 키우자 이런 마음이었기 때문에 무조건 다 공격적으로 했던 것 같아요. 11월까지 일이 계속 많아졌어요. 너무 빨리 많아졌는데, 그렇다고 해서 제가 인원을 더 뽑을 수는 없었어요. 인원을 뽑는 데 되게 보수적인 사람이기도 하고 일이 빨리 늘어난다고 해서 바로 사람을 늘리기보다 일단은 제가 먼저 갈아 넣어서 시스템을 만들고 그 시스템 속에서 사람이 들어오게 해야 하겠다는 마음을 항상 가지고 있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도 힘들었고, 저도 그만큼 크게 감당하고 있었어요.


이제 좀 멈추고서 뭔가 정리를 해야 하겠다는 생각을 이미 하고 있는데, 이전에 약속한 것들을 멈추지 못하니 하나하나의 것들이 너무 힘든 거예요. 나가지 되지 않아도 될 것들에 대한 게 그냥 막연하게 느껴지는데 근데 이제 이미 간다고는 돼 있으니까 가야 하는. 그냥 열심히 하루하루 버텨가면서 그냥 해 온 거죠. 근데 그게 11월에 백화점 팝업 끝나고 터진 거였죠.


그래서 이런 것들을 안 되겠다 싶어서 숙소 하나 잡아 2박 3일 동안 이거에 대해서 집중하는 시간을 가졌어요. 앞으로 어떻게 하면 좋을지에 대한 방향성을 많이 잡았죠. 거기서 나온 레슨런(Lesson lerned) 중 1순위가 ‘재무구조를 뜯어보자’였어요.


Q. 매출과 성과만 놓고 보면 가장 잘 되고 있던 시기였을 텐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건 뭔가 잘못됐다’고 느끼게 만든 결정적인 순간이 있었나요?


그러니까 7~9월에 매출의 정점을 찍었던 거예요. 1~2월에는 매출이 한 200만 원대였거든요. 근데 8월에는 매출이 대략 6천만 원 정도 될 거예요. 대형 계약도 있고, 수출도 그때 하고, 미슐랭에도 입점하고요. 또 9월에는 또 추석도 있어서, 전체적으로 굉장히 큰 매출을 올렸던 거예요.


근데 이 7~9월을 하면서 한계점을 느꼈어요. 우리 양조장은 크지 않아서 하루에 생산할 수 있는 양이 이미 정해져 있단 말이에요. 한 달에 6천 병이 나가는 건 불가능해요. 사실 그동안에는 앞단에서 계속 생산을 더 많이 해왔기 때문에, 쌓인 재고 덕에 6천 병까지 만들어졌던 거거든요. 이렇게 하니까 같이 일하는 친구들이 너무 힘들어하는 거예요. 또 8월이 엄청 덥잖아요.


정신이 없는 시기를 보내면서 마음속에서 제대로 살펴봐야겠다는 생각이 자리 잡아요. 저는 매출이 계속 오르면 된다고 생각했거든요. 이 구조를 뜯어보기 전에는 제가 얼마를 벌고 얼마나 남는지도 몰랐어요.


인터뷰를 진행 중인 김태완 대표


Q. 재무 구조를 뜯어보고 무엇을 발견했나요?


이게 보니까 백화점에서 엄청나게 잘했는데도 적자인 거예요. 한 300만 원 적자였어요. 이렇게 팔아도 적자가 된다는 것을, 인지를 하고서 어떻게 구조를 짜야 할지에 대한 고민을 계속해 왔던 거죠.


그래서 박람회랑 백화점 비중을 줄이려고 해요. 박람회나 백화점을 한 번 나갈 때마다 최소 일주일에서 9일 정도는 아무것도 못 하거든요. 행사만 집중해야 하니까. 대신에 그 시간을 ‘콘텐츠로 몰입하고 고객들과 소통하는 데 시간을 더 들이자’로 그때 생각을 했던 거죠.


그래서 지금은 앞으로 콘텐츠를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고 있어요.


Q. 감탄주의 앞으로는 어떨까요?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해요.


일단은 첫 번째가 월 3천 병을 팔 수 있냐, 예요. 우리 양조장 규모로 무리하지 않고 생산할 수 있는 규모가 월 3천 병이거든요. 그래서 월 3천 병을 파는 데 도움이 되냐가 첫 번째. 그리고 두 번째가 이걸 해서 외국인한테 우리 술을 알릴 수 있냐? 그리고 세 번째가 이게 결국에는 우리 과하주를 사람들한테 알리는 데 도움이 되냐 이런 게 기준이거든요.


제가 강의 제안 같은 것도 많이 받는데요. 사실상 강의를 보면 단순한 시간에 시급은 높더라도 지금 제가 말하는 세 가지 기준에 하나도 충족하지 않아요. 그럼, 다 거절. 박람회도 외국인들을 만날 수 있는 박람회가 아니라면 다 거절 이렇게 되는 거죠.


지금 목표인 월 3천 병에서 국내 매출로 월 3천 병을 다 채우고, 그중의 외국인 판매 비중을 처음에 10% 혹은 20%, 30%, 40%까지 가자, 점차 늘리자가 지금 제 기조인 것 같아요. 같은 3천 병으로 매출을 어디까지 끌어올릴 수 있는지 테스트하자 가 지금 내년 목표인 거죠.


Q. 태완님은 어디에 갖다 놔도 뭔가를 쌓아 올릴 수 있는 분 같아요. 이렇게 살아가는 삶 자체에서 얻고 싶은 건 무엇인가요?


저는 그냥 제로 투 원에 특화된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제로 투 원에 특화된 사람이지만 감탄주를 통해 그 이상의 것을 어떻게 만들어 갈지 저만의 챌린지가 생긴 거죠.


삶의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감탄주를 하다 보니까 우리나라가 세계적으로 더 유명해지고 알려지면 좋겠어요. 그걸 애국심이라고 해야 할까. 더 그렇게 만들어가고 싶어요. 이질적이긴 하지만 돈이 1순위이기보다는 명예나 영향력이 저한테는 더 중요한 것 같아요.

그리고 제가 하고 싶은 삶만 살고 싶어요. 누군가에 의해서 수동적으로 움직이기보다는 제가 하고 싶은 선택을 하는 그런 삶, 항상 재미있게 살고 싶어요.


세모스

태완님이 사업을 하는 모습은 엄청나게 힘들어 보이면서도 재미있어 보였다. 그리고 그 어떤 스타트업보다도 더 스타트업처럼 일하고 있다고 느꼈다. 황무지에서 문제를 정의하고, 고객의 반응을 끝까지 확인하고, 쓰러지기 전에 멈추어 회고하고 또 발전을 도모하는 모든 것이.


재미있게 살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은 수없이 봤지만, 진실로 매일 매일을 재미있게 살고 있는 사람을 발견했다. 오늘 하루 각자의 황무지에서 무언가를 만드느라 애쓴 모두에게 감탄주 한 잔 따라주고 싶은 날이다.


인터뷰 원고를 마무리하는 세모스의 책상 한켠에 자리한 감탄주

Interviewer 세모스

Editor 유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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