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11 우린 우리를 보여줄 각오가 되었을까
겨울을 좋아한다.
온 자연이 옷을 벗으면 느껴지는 공허하고 서늘한 공기가 좋다.
그럴 땐 왜인지 아무도 내게 말을 걸지 않을 것 같아서.
두꺼운 외투 안에 숨어 보이지 않는 잠옷도, 어제 입었던 옷도, 조금 얇지만 사진이 잘 나오는 예쁜 옷도,
겨울이라 볼 수 없지만 겨울이라 알 수 있는 것들을 사랑한다.
드러난 자연의 민낯 사이를 지나가며 우리는,
어떻게든 스스로의 민낯을 지키려 하니까.
여름볕 아래 우리의 민낯이 드러날 때 세상은 온통 푸르게 꽉 찬 것처럼.
언제까지고 번갈아 민낯을 드러내게 되는 그 일방적인 관계가 좋다.
네가 너를 보여주지 않아도 내 모든 걸 보여줄 각오의 선언 같다.
매일 무심코 지나가는 길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어느 날엔 여름이 나의 민낯을 보고,
또 다른 날엔 내가 겨울의 민낯을 본다.
어느새 여름까지 사랑하게 된다.
더운 여름과 추운 겨울에
꼭 필요한 건 분노와 냉정이 아니니까.
서로의 민낯을 사랑할 각오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