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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계피차 Jan 05. 2022

31. 동화 <달 샤베트>+<구름빵>

팟캐스트 "소덕소덕" 스크립트

이번에는 좀 특이한 특집을 준비해 보았는데요, 바로 동화 특집입니다. 저는 최근한국동화계의 거장 '백희나' 작가의 <달 샤베트(2014책읽는 곰, 초판 2010스토리보울)>를 골라보았습니다.


[스포일러] 작품 설명-선입견 비틀기

내용은 '달 샤베트'라는 제목처럼 달이 샤베트가 되는 이야기인데요, 크게 두 가지 이야기로 진행됩니다. 전반부는 너무 더워 녹아내린 달을 가져다 '반장 할머니'가 샤베트로 만들어, 정전으로 에어컨을 못쓰게 된 동네사람들에게 나눠준다는 이야기입니다. 후반부는 이로 인해 사는 곳을 잃은 토끼에게 다시 달을 돌려주기 위해 '달 물'을 화분에 부어 달맞이 꽃이 피어나게 한다는 내용입니다.

'달'에 대해서는 <패트와 매트>를 본 80~90년대생들이라면 치즈 식감이 떠오르곤 합니다. 그런데 녹는 달이라는 상상력이 너무 새로웠고 그걸 얼려먹으면 시원해진다는 상상도(물론 얼음이 차가우니까 그렇긴 하지만요) 너무 잘 어울렸습니다. 또 달에서 토끼들이 방아를 찧는다는 전설도 뭔가 무서운 느낌이 드는데 늑대 할머니가 집 잃은 토끼를 꽃으로 다시 키운 달로 돌려보낸다는 게 너무 다정하고 모든 선입견을 비튼 느낌이라서 오랜만에 신선한 충격을 크게 받은 것 같아요.

할머니가 그냥 할머니가 아니라 '늑대' 사회의 '반장' 할머니라는 점도 신선했습니다. 보통 선역일 경우 무해하고 인자한 느낌의 할머니가 나오는 데, '늑대'사회인 것도 신선했고(토끼의 천적일텐데) 그냥 착한 할머니가 아닌 '반장'-아마 통장을 의미하는 것 같은데 어떤 위치를 지니고 있는 것도 좋았습니다. 달이 녹은 물로 달맞이꽃을 키워서 진짜 달을 맞이하게 되다는 설정도 너무 좋았는데요, 사실 달이 나오는 설화는 많은데 보통 밤이나 여성과 엮여 별로 좋지 않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달이 남에게 도움을 주는 역할이라는 게 좀 벅차오른달까요. 어쩌면 (실물이나 컨텐츠 안에서나) 너무 흔해서 관심에서 멀어졌던 달에게 신비하고 다정한 이미지를 새롭게 심어준 이야기가 아닌가 싶습니다.


작가 설명(+<구름빵(2004)>), 업계 분위기

'달 샤베트'의 작가 백희나 씨는 국내에서는 교육학을, 해외에서는 애니메이션을 전공한 분이며 그 유명한 <구름빵>의 저자이기도 합니다. <구름빵>은 큰 반응을 얻어 애니메이션이나 뮤지컬로도 제작되었습니다. 작가의 특기인 '선입견 비틀기', '이미지 비틀기'는 바로 여기서부터 시작되는데요, 구름하면 솜이나 솜사탕을 떠올리게 되고 사람이 하늘로 올라가 구름을 타는 이미지를 상상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그러나 구름을 넣어 만든 <구름빵>을 먹으면 구름처럼 몸이 떠올라 하늘을 날 수 있고 지옥같은 출근길에 갇힌 아빠도 꺼내줄 수 있는 현대인에게 아주아주 고마운 보물입니다. 진짜 존재한다면 말이죠.

저같은 경우는 대학생 때 처음 읽게 되었는데 너무 충격적인 설정이었습니다. 구름으로 빵을 만들고 그걸 먹으면 몸이 뜬다니요? 그리고 지금 다시 보니까 또 충격적인 건, 엄마가 아이 말을 따라서 구름을 빵에 넣고 그걸 같이 먹는다구요? 혼나지 않구요? 재밌는 부분은 뮤지컬이 끝난 후 모닝빵을 나눠줘서 어렸을 때 그것이 구름빵인 줄 알았다는 분들이 꽤 있더라구요. 이 사실을 구름빵을 만드는 영상의 댓글을 보고 알았는데요 정말 책에 나온 것과 비슷합니다. 유튜브에 애니메이션이 있기는 한데요 이런 2차 저작물에 대한 이야기는 후반에 다시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한국 동화 업계를 생각해보면 90년대 중반까지는 안데르센 동화같은 서양설화를 번역하거나 전통설화를 다루는 아동서가 거의 대부분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 이후로는 창의력을 위주로 한 서양 창작동화, 예를 들면 앤서니 브라운 같은 약간 무서운 그림의 동화와 더불어 교훈을 위주로 한 국내 창작동화로 양분되어 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아마도 <구름빵>의 등장 이후로는 국내창작동화업계도 창의적이고 진짜 이야기나 컨텐츠로서 순수하게 즐길 수 있는 동화책이 등장한 것 같습니다. 최근에서는 어른들이 하고 싶은 말이나 해야되는 말이지만 하기 어려운 말을 대신 설명해주는 책들도 많이 나오는 것 같습니다. 백희나 작가의 <이상한 엄마(2016)>나 윤여림, 안녕달 작가의 <우리는 언제나 다시 만나(2017)> 등을 예로 들 수 있겠죠. 아동서 상위 50위 중 백희나 작가의 책이 7권이 있고, 2020년에 아동서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아스트리드린드그렌상을 수상했음에도 불구하고 21세기 아동서작가 계의 개척자 겸 거장으로서 겪는 어려움도 컸습니다.


걸그룹 '달샤벳' 상표명 논란

'달샤벳'은 해피페이스엔터테인먼트(현 드림캐쳐컴퍼니)가 2011년 런칭한 걸그룹인데요. 소속사 측에서 사용 합의를 제안했다가 거절당했는데도 '달콤한 샤베트'라는 뜻이라며 그대로 이름을 유지했습니다. 당시 작가는 이미 <구름빵> 저작권을 되찾으려는 이슈로 알려져있어 이것을 이용한 듯 했고 이 일도 꽤 이슈가 되었습니다. 10년이 지난 지금은 책에 대한 검색결과물이 훨씬 많기 때문에 다행이기는 합니다만, 아무리 법적 문제가 없더라도 창작자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는 아무리 다른 분야더라도 같은 창작자의 위치라면 더 잘 지켜야겠죠.


<구름빵> 저작권 공방

백희나 작가는 <구름빵> 출판계약 당시 저작권도 함께 넘겨 큰 돈을 한꺼번에 받는 이른바 '매절'계약을 하였으나 자신의 의도와 다른 방향으로 2차 저작물이 만들어지자 저작권 반환 소송을 했고 3심 모두 패소하였습니다. 작년에 <유퀴즈 온 더 블록>에 나와 다시 화제가 되자 '한솔수북' 대표는 출판사 측에서 완전신인작가와 작품에 투자한 것도 큰 데 혼자만 이룬 업적인 것처럼 말한다며 비판했습니다.

이와 비슷한 일이 2020년 '이상문학상'과 올해 넷플릭스 <승리호>, <오징어게임> 등에서도 있었습니다. 이러한 저작권 양도 계약은 출판업계에서 관례적으로 있었고 그리 큰 반향을 일으키지 않아서 <구름빵>에 와서야 그나마 이슈가 되었지만 아주 큰 수익을 얻은 국내 제작 넷플릭스 오리지널 컨텐츠의 저작권과 수익권이 외국회사인 넷플릭스에 귀속되는 것을 겪고 나서야 정부 부처 등이 걱정을 하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물론 전작이 잘 되면 다음작에 대해 큰 투자나 이득이 따라올 수 있겠지만 예상수입을 훨씬 넘는 수준이라면 도의적인 인센티브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신입으로서는 당장 데뷔와 수입이 급하니까 어쩔 수 없지만, 이렇게 신입에 투자할 수 있을 정도의 회사라면 업계의 성장을 위해서라도 작가와 작품을 위한 선택을 해 줄 순 없는 걸까요?


창의력이 필요하신가요? 따듯함이 필요하신가요? 동화로 돌아가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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