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건 나의 첫 여행이다.”라고 생각한 것은 중학교 때이다. 그 전은 여행이라기보다는 부모님과 함께 가는 할머니 댁 방문 정도였다. 내가 어릴 때부터 부모님은 맞벌이를 하셨고 여행은커녕 나들이를 한 기억조차 별로 없었다. 중학생이 되니 부모님께서는 방학 기간에 동생들을 데리고 시골 할머니 댁에 다녀오라고 하셨다. 나는 살짝 걱정이 되었지만 도전해 보겠다고 했다. 아버지께서는 5남 2녀 중 차남이셨고, 삼남인 삼촌 식구들이 우리 집 근처에 살았다. 그 당시에는 내가 14살, 내 동생이 9살, 사촌 여동생이 12살, 사촌 남동생이 10살이었다. 사촌 동생들은 내 말은 잘 듣는 편이라 데리고 다니기가 편할 것 같았다.
아버지께서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우리를 버스에 태워 주시고 나면 이후에는 내가 이들을 이끌어야 했다. 버스를 많이 타본 경험은 없지만 할머니 댁은 버스의 종점 부근이었기 때문에 하차하기가 어렵지 않았다. 버스에서 전부 잠이 들었다가도 버스가 멈추고 버스 운전사 아저씨께서 “종점입니다. 다들 내리세요.” 하면 내리면 되는 것이었다. 버스 종점에서 나서면 첫 번째로 나타나는 집이 작은할아버지 댁이었다. 아버지께서는 여기는 집성촌이라 어디를 가든 아버지의 삼촌이나 사촌들을 만날 수 있다고 하셨다. 우선 우리는 작은할아버지 댁에 들려 인사를 드린다. 간단한 간식을 주시면 먹고 이야기를 나누고 잠깐 쉬었다가 간다. 이때 이야기의 주제는 항상 나는 누구의 첫째 딸이고 이 아이는 누구의 아이들이고 하는 관계 설명이다. 매번 물어보시지만 제대로 기억해 두시려고 그러는 것은 아닌 듯했다. 우리가 갈 때가 되면 용돈을 주시는데 우리는 이것이 가장 좋았다.
여기서부터 할머니 댁 가는 길은 쉬웠다. 언덕을 올라야 하는 길이지만 큰길을 따라만 가면 되고 갈림길이 나오면 왼쪽으로 한번 그리고 다음 갈림길에선 오른쪽으로 한 번만 꺾으면 할머니 댁이 보인다. 작은할아버지 댁에서 나와 가는 길에 마을 회관이 있는데 여러 가지 생필품을 가져다 놓고 팔고 있다. 이곳에서 우리는 간식을 사고 분홍 소시지와 참치캔을 사간다. 할머니께서 해 주시는 반찬은 정성스럽지만 도무지 어린아이들의 입맛에는 맞지 않아 우리가 먹을 반찬을 사가는 것이다. 이곳에서도 아이들만 있으니 어른들의 질문들이 쏟아진다. 한번 더 우리의 아버지 성함과 옥산 전 씨 28대손이라는 설명까지 하게 된다. 그러면 그곳에 계시던 어떤 아주머니는 나의 딸뻘이라 하셨고 어떤 아저씨는 나의 먼 사촌뻘이다고 하셨다. 나의 첫 여행의 기억은 나의 뿌리를 찾아 떠나는 여행인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