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꿈
직장을 얻고 처음 맞이하는 여름휴가 기간이었다. 나는 처음으로 온전히 내가 번 돈으로 가족여행을 가보고 싶었다. 부모님께 어디로 여행을 가보고 싶으시냐고 여쭈었다. 어머니께서는 어디든 상관이 없다고 하셨고 아버지께서는 한참 생각에 잠기셨다. 그러고는 말을 꺼내셨다.
"내가 가끔 꾸는 꿈이 있는데, 그게 낙화암에서 내가 떨어지는 꿈이야. 떨어지면서 꿈을 깨. 그러고 나면 한참 동안 기분이 이상해"
잠시 후 우리는 모두 박장대소를 했다.
"아버지! 전생에 의자왕이었어? 아님 삼천궁녀 중 한 사람인 거야?"
"몰라! 한번 다녀오면 다시는 이 꿈을 안 꾸려나?"
어머니께서도 이런 이야기는 한 번도 못 들어봤다면서 왜 이야기하지 않았냐고 하셨다. 그래서 그 꿈의 의문을 풀어보고자 우리는 부여여행을 하기로 했다.
첫날에는 부여 낙화암에 가고 둘째 날에는 궁남지를 들렸다가 집에 오는 일정이다. 대구에서 아침 일찍 출발하여 부여에 도착하기까지 4시간 정도가 걸렸다. 여행을 잘 안 다니다 보니 부여는 생각보다 먼 거리였다. 시간이 더 많았다면 간 김에 다른 곳도 더 둘러보는 건데 너무 갑자기 잡힌 장거리 여행이라 부여에만 다녀오기도 빠듯했다. 부여에 도착해서 점심식사를 했다. 식사를 하면서 어머니께서 정말 오랜만에 멀리 여행 와서 딸이 사주는 밥을 먹으니 너무 행복하다고 하셨다. 나는 이런 기회를 많이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식사 후에 드디어 아버지 꿈에 나온다는 낙화암에 갔다. 나도 역사책에서만 보던 낙화암을 가보니 기분이 이상했다. 여기를 와 볼 거라고 생각조차 해보지 않았었다. 나는 산을 오르는 것을 제일 싫어하기 때문이다.
더운 날 백화정이 있는 낙화암에 오르니 모두 얼굴이 빨개지고 땀이 많이 났다. 하지만 절벽에서 바라본 경치는 정말 훌륭했다. 앞에서 흐르는 백마강이 잘 왔다고 반겨주는 것 같았다. 아버지께서는 그 순간 어떤 생각을 하고 계셨을까?
나는 거기에 있는 모든 것을 배경으로 아버지 사진을 찍어드렸다. 그리고 집에 가면 그걸 모두 인화해서 선물로 드리리라 생각했다. 그다음으로 백마강 쪽으로 내려와 유람선을 탔다. 낙화암 위에서 바라본 경치와 강에서 바라보는 낙화암은 느낌이 정말 달랐다. 화려한 색을 가진 자연이 있었지만 그 순간은 옛날 어느 화가가 그렸을듯한 웅장한 수묵화로 보였다.
다음날 가볍게 궁남지 산책을 하고 아름다운 연꽃에 감탄을 하면서 여행을 마무리하였다. 궁남지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인공 연못이다. 큰 연못 중심에 인공 섬 같은 것이 있고 정자가 놓여있다. 이곳을 연못 가장자리에서 이어진 다리로 건너가면 마치 연못 위를 걷는 느낌이 든다. 이번 여행에는 삼각대가 없어 가족 중 한 사람이 빠진 사진들 뿐이었다. 마침 한 관광객이 우리를 보시고는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하셨다. 생각지도 못한 이 사진이 내가 성인이 되고 난 후 첫 번째 가족사진이었고 우리 가족의 15년 만의 가족사진이 되었다.
몇 년 후 우리 집 시조가 궁금하여 조사를 하던 중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시조를 거슬러 올라가 보니 우리의 도시조(본관의 직접적인 시조는 아니지만 다른 본관의 족보로 알 수 있는 성씨의 최고 조상이 되는 인물)가 백제 온조왕 때 개국공신 중 한 명이라고 한다. 이것을 알고 나니 경상도 태생인 아버지께서 왜 백제의 땅에 있는 꿈을 꾸셨는지 이해가 되었다. 백제의 후손임을 알아달라는 꿈이 아니었을까 하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여행 후에 아버지께서는 한 번도 그 꿈을 꾸지 않으셨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