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여행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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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하

나는 저녁 준비를 하시는 할머니께 가서 상차림을 돕는다. 큰 그릇에 계란을 세 개 깨뜨리고 잘 저어준다. 마을 회관에서 사 온 소시지를 썰고 계란물을 입힌 다음 프라이팬에 굽는다. 그리고 참치캔을 따둔다. 사촌 동생들의 반찬이다. 할머니께서는 반찬이 없을까 봐 이런 걸 사 왔냐고 물어보셨다. 할머니께서는 과연 이런 것이 영양이 있는 건지 의문스럽게 보셨다. 할머니께서는 우리를 살갑게 대해 주신 적이 없다. 이름 한번 다정하게 불러 주신 적도 없고 머리 한번 쓰다듬어 주시지 않으셨다. 그때에는 할머니들은 모두 그런 줄 알았다. 지금 나의 아이들에게 사랑을 주시는 부모님을 생각하니 이상했다. 손주들이 사랑스럽지 않으셨던 건지, 속마음 표현을 못 하는 성격이셨는지 궁금했다. 우리에게 작더라도 애정 표현을 해 주셨다면 지금 우리가 할머니를 더 그리워했을 것이다.

밥을 다 먹고 나면 우리는 대청마루에 잠자리 준비를 한다. 모기에게 물리지 않기 위해 큰 모기장을 꺼내와 아버지께서 못을 박아 둔 곳에 끈을 걸어 널찍하게 펴둔다. 그리고 모기장 안으로 재빨리 이불을 넣고 우리도 들어간다. 우리는 모기장 안에 이불을 펴고 방학 숙제를 하는 척을 한다. 동생들은 몇 글자 쓰지도 않은 채 일기장을 덮는다. 할머니께서는 마루 한 귀퉁이에 요강을 놔두시고 방에 들어가신다. 아직 할머니 댁은 재래식 화장실이라 밤에 가기에는 귀신이 나올 것만 같아 무서웠다. 아버지께서 어릴 때 종종 아이들이 밤 중 재래식 화장실에 빠졌다는 이야기가 생각이 나 더 무서웠다. 집의 모든 불이 꺼지면 깜깜한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들만이 보인다. 우리들은 잠자리에 누워서 머리 위로 쏟아질 것만 같은 별을 바라본다. 사촌 동생들은 이 많은 별들이 다 어디서 나타난 것일까 궁금해한다. 나는 동생들이 상상력으로 하는 별의 탄생 이야기들을 조용히 들어준다. 이 아이들의 순수한 마음을 오랫동안 간직하길 바라본다.

다음 날 아침 해가 일찍 뜨니 자던 아이들의 눈도 일찍 떠진다. 밤 중에 모기장 바깥에 피워놓은 모기향이 누구의 몸부림으로 뒤집혔나 보다. 마루에는 모기향 모양으로 검게 탄 자국이 나선을 그리고 있었다. 마루를 태웠으니 할머니께 혼날 생각에 두근거렸지만 할머니는 말 한마디도 없으셨다. 할머니께서는 아침을 먹고 나서 우리에게 직접 만드신 복숭아 절임을 주셨다. 부모님과 왔을 땐 먹어보지 못했던 것이다. 복숭아 절임은 너무나 달콤했고 부드러웠다. 할머니는 말 대신 복숭아 절임으로 손주들에게 마음을 전하고 싶었을지도 모르겠다. 나의 첫 여행의 기억은 재미있었고 아름다웠고 따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