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차박 - 간절곶

야간운전, 공터의 긴장감, 인생 첫 일출, 그리고 남은 숙제

by 그루터기

야간운전의 달인이 되다

차박은 곧, 가족을 위한 조용한 밤의 운전이 되었다

첫 차박지로 간절곶을 정하고, 퇴근 후 아이들과 함께 준비를 마친 뒤 차에 올랐다. 그날 이후, 나는 야간 운전의 달인이 되어갔다. 자고 있는 가족의 안전을 위해 속도보다 중요한 건 부드럽고 조심스러운 운전이라는 걸 절실히 느꼈다. 속도위반 카메라를 걱정할 필요도 없을 만큼 천천히, 고요하게 달렸다.

그렇게 밤길을 달리며 문득 떠오른 이야기가 있었다. 예전 회사에서 연구소 소장님께 들은 말이었다. 해안 도시 위주로 여행하신다는 그분은 "운전자만 고생하면 대한민국 어디든 당일치기 불가능한 곳은 없다"고 했다. 무박으로 새벽에 출발해 목적지에서 아침을 먹으면 그걸로 성공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가족은 자고, 운전자는 달리면 된다고.

그땐 웃으며 흘려들었지만, 내 안엔 이상하게도 그 말이 깊이 남았다. 다만 나에겐 무박은 자신이 없었다. 새벽 일찍 챙겨 나가는 일도 여간 번거로운 게 아니었다. 잘 때의 마음과 아침의 마음은 전혀 다르니까. 몇 번 시도는 해보았지만 결국은 늘 "그냥 자자, 다음에 가자"로 끝났다.

그래서 숙소를 예약하며 여행을 다녔고,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조금만 불편을 감수하면 숙소비를 아낄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차박을 고민하게 되었고, 그때부터 야간 운전은 내 루틴이 되었다.

운전의 달인이라 하면 빠른 속도로 달리는 사람을 떠올리기 쉽지만, 진짜 고수는 안전하게 운전하는 사람이다. 특히 야간에는 속도를 낮출수록 피로가 덜 쌓인다는 걸 체감했다. 빨리 달리면 오히려 긴장이 커지고 피로도 배가된다. 그래서 나는 크루즈 기능을 켜고 규정 속도로 달린다. 나와 가족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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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절곶의 첫인상, 공터의 낯섦

차박은 남의 후기가 아니라, 돌발 상황에 대처하는 능력에서 시작된다

간절곶.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낯선 이름이었다. 일출 명소 하면 보통 호미곶이 떠오르는데, 이상하게 그날은 간절곶이 떠올랐다. 아마 처음 가보는 곳이라는 이유만으로 설렜던 것 같다.

숙소 여행과 차박 여행은 전혀 다르다. 특히 처음 가는 장소에선 더더욱. 그때는 단순히 후기를 보고 괜찮겠지 하고 갔다. 그런데 이제는 안다. 후기만 믿고 갔다간 망한다는 걸. 차박은 남의 경험이 아니라, 순간순간 달라지는 상황에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달려 있다.

도착했을 땐 가랑비가 촉촉이 내리고 있었고, 네이버 지도를 따라 도착한 곳은 생각보다 너무 휑한 공터였다. 내비가 잘못된 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어둡고 적막했다. 그나마 몇 대의 차량이 주차되어 있었기에 안심할 수 있었고, 아니었다면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안개와 어둠, 그리고 비. 주변은 고요했고, 여기가 정말 차박이 가능한 곳인지 의심이 들었다. 화장실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옆 차량을 보며 용기를 내어 주차를 했고, 조심스레 뒷자리로 향했다.

잠이 올 리가 있을까? 그런데 우리 가족은... 정말 대단했다. 아내를 닮은 우리 아이 셋은 어떤 상황에서도 머리만 대면 금세 잠든다. 아마 이 능력 덕분에 우리가 차박을 계속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나는 가족들의 상태를 살펴야 하기에 밤새 예민한 경계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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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밤의 냉기와 시동의 부담

경유차의 소음, 그리고 밤공기를 뒤덮은 냄새

출발한 날은 1월 29일 밤, 도착한 날은 1월 30일 새벽이었다. 1월 말이라는 건 분명 겨울이라는 뜻이었고, 나는 그 당연한 사실을 간과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제야 깨달았다. 겨울에 시동을 끄고 차 안에서 잠을 자겠다고? 이건 무모했다.

시동을 끄고 30분이 지나자 공기가 싸늘해졌다. 1시간쯤 지나자 진짜 추워졌다. 결국 시동을 걸었다. 그런데... 이 조용한 새벽, 내 차의 시동 소리가 얼마나 요란한지 몰랐다. 태어난 지 1년도 안 된 내 니발이(카니발의 우리가족 애칭), 하지만 디젤 차량답게 진동과 소음이 컸다.

나는 민폐를 끼치고 싶지 않아 멀찍이 차를 옮겨보기도 했지만, 소용없었다. 이 적막한 공터에선 어디서든 울려 퍼졌다. 물론 주변을 신경쓰지 않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그럴 수 없었다. 억지로 해보려 해도 안 되는 체질이다.

그리고 냄새. 엔진을 켜자마자 공터에 퍼진 매캐한 냄새. 처음 맡아보는 독특한 기름 냄새였다. 안개와 함께 퍼진 그 냄새는 참을 수 없을 정도였다. 결국 시동을 켰다 껐다 반복했다. 그러다 동이 트기 시작했다. 비도 멎고, 안개도 서서히 걷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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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이 틀 무렵, 간절곶의 정체가 드러나다

혼란은 사라지고, 풍경은 모습을 드러냈다

점점 밝아지면서 내가 밤새 전전긍긍했던 이곳이 간절곶 임시 주차장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비포장이라 공터처럼 느껴졌던 곳. 아침이 되자 갑자기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차량들도 속속 도착했다. 대부분 인근 숙소에서 나왔을 것이다.

우리도 얼른 나가보려 했지만, 아이들과 아내는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그렇게 애타게 도착했던 일출이 코앞인데도... 결국, 감성이 풍부한 첫째 하나만 데리고 해변으로 나섰다.

해변은 생각보다 훨씬 잘 정비되어 있었다. 화장실과 편의시설, 포토존까지. 임시 주차장의 공사장 같은 분위기와는 전혀 딴판이었다. 하나와 함께 내 인생 첫 일출을 마주했다. 인증샷도 남기고, 해변 산책도 잠시 즐겼다.

밤새 움츠렸던 마음은 어느새 사라지고, 상쾌한 아침 공기가 피로까지 덜어주었다. 차로 돌아오니 막내 하연이와 둘째 하율이가 배가 고프다며 엄마를 깨우고 있었다. 하나는 엄마에게 해변의 모습을 신나게 설명했지만, 이미 싸늘해진 차 안과 여전히 추운 외부 공기 탓에 나가려 하진 않았다.

우리는 얼른 시동을 걸고, 첫 차박의 첫 아침 식사를 위해 간절곶 인근 식당을 찾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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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숙제들

조용한 차박은 이웃을 위한 배려이고, 따뜻한 차박은 가족을 위한 책임이다

그날 밤, 나는 분명히 깨달았다. 겨울밤의 냉기, 시동의 소음, 매연의 불편함. 차박은 단순히 ‘차 안에서 잠을 자는 것’이 아니었다.

차에서 잔다는 것은 그저 잠자리를 옮긴다는 뜻이 아니었다. 가족이 함께 차 안에서 하룻밤을 보내려면, 집이나 숙소처럼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최소한의 안전과 편안함은 반드시 갖추어야 했다. 그냥 불편함만 가득하다면, 누가 감히 차박을 꿈꿀 수 있겠는가.

불편함 속에서도 지켜야 할 것은 조용함이었고,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따뜻함이었다. 조용한 차박은 이웃을 위한 배려였고, 따뜻한 차박은 우리 가족을 위한 책임이었다.

다른 이의 새벽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우리 가족의 밤을 포근하게 지키려는 고민.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다음 차박을 준비하며 배워야 할 진짜 과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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