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생포 고래 박물관

첫 차박 다음날, 고래를 찾아 떠난

by 그루터기

침 식사와 다음 계획

첫 차박의 여운과 함께 찾아온 고민

나와 하나는 새벽 일출을 보고 산책을 마치고 돌아왔다. 차 안에는 아직 꿈나라에 있는 하율이와 하연이가 있었다. 배가 고파 깬 하율이는 엄마를 깨웠고, 하연이도 칭얼거리며 함께 깨어났다. 우리는 서둘러 차박을 했던 이부자리와 매트를 정리했다. 정신없이 정리를 마치고 나니 아침 햇살이 퍼지고 있었다.

아이들도 배가 고프고, 우리 부부도 허기진 터라 근처 식당을 찾아 나섰다. 아직 아이들이 어려서 식당 선택의 폭은 넓지 않았다. 특히 막내 하연이는 갓 돌을 지난 아기였기에, 주로 분유를 먹였다. 다행히 여행을 자주 다닌 덕분인지 가리는 음식은 없었다. 근처 식당을 찾아 아침을 해결하면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어제의 밤을 되짚어보았다.

첫 차박은 설렘과 긴장이 뒤섞인 모험이었다. 하지만 해가 뜨고 나니, 뭔가 허전함이 몰려왔다. 집에서 여기까지 2시간 거리. 왕복 4시간을 들여, 밤새 잠 설쳐가며 해 뜨는 것 하나만 보고 집으로 돌아간다니, 어쩐지 아쉬웠다. 여행은 단지 한 장면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그 순간을 넘어, 함께 나누는 시간이 더 중요하다는 걸 우리는 알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떠오른 기억이 있었다. 1년 전, 2016년 1월 2일. 그때 우리 가족은 이미 장생포 고래 박물관을 다녀온 적이 있었다. 그때는 하연이가 엄마 뱃속에 있었고, 출산을 눈앞에 둔 시기였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고래 박물관의 인상은 우리에게 남아 있었다.

'그때는 마음 편히 둘러보지 못했지만, 지금은 다를지도 몰라.'

우리는 커피를 마시며 조용히 이야기했다. '조금 더 머물 수 있는 곳이 없을까?' '아이들이 기억할 만한 특별한 순간을 하나 더 만들 수는 없을까?'

그렇게 고민하던 끝에, 다시 장생포 고래 박물관을 찾기로 했다. 아이들에게, 특히 고래를 좋아하는 하율이에게라면, 분명 잊지 못할 시간이 될 것 같았다. 별다른 준비는 없었지만, 우리 가족 여행의 룰은 언제나 같았다. 계획보다, 흐름을 따라가기.

그래서 우리는 다시 차에 올랐다. 고래를 찾아 떠나는 또 하나의 작은 모험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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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율이와 고래

특별한 관심이 특별한 길을 만든다

우리 아들 하율이, 2013년생. 나이가 겨우 다섯 살이지만, 언제부터였는지, 왜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고래에 푹 빠져 사는 친구다. 아이들이 한 번쯤 거치는 공룡의 시기를 지나고 나면 보통 자동차나 로봇, 레고로 넘어가는데, 하율이는 달랐다. 공룡 다음은 고래였다. 그리고 해양생물이었다.

좀 더 넓게 보면 살아 있는 물속 생물이 1순위, 그 다음이 곤충이었다. (내 기준으로는 그냥 벌레지만 ^^)

하율이는 네 살, 다섯 살 무렵까지도 글씨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었다. 억지로 가르쳐보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그런데 좋아하는 공룡 장난감을 끼고 살면서 자연스럽게 공룡 이름을 외우기 시작했다. 공룡 이름은 길고 어렵고, 성인이 봐도 생소한 것들이 많았다. 하율이는 그 긴 이름들을 하루에도 수십 번 반복해 보면서 눈으로 보고 귀로 들으며 외워갔다. 사실 읽었다기보다는 워낙 많이 접하다 보니 외운 것이었다. 그렇게 익숙해진 공룡 이름 덕분에 글자에 대한 거부감이 사라졌고, 어느 순간 다른 글씨들도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억지로 가르치려 했던 한글이, 공룡을 통해 스스로 열린 것이다.

하율이는 특히 물속에 사는 공룡, "모사사우루스"를 유난히 좋아했다. 커서였을까? 그 관심은 자연스럽게 고래로 이어졌다. 흰수염고래, 대왕고래 같은 거대한 고래들이 그의 관심을 끌었다. 그렇게 하율이의 세계는 육지를 떠나 바다로 넘어갔다.

집 안 가득했던 공룡 피규어들은 어느새 창고로 옮겨졌다. 그의 마음은 이미 넓은 바다를 향하고 있었다.



박물관을 지나, 살아 있는 고래를 향해

아이들의 설렘을 따라, 작은 바다를 만나다

40여 분을 달려 장생포 고래 박물관에 도착했다. 휴일이라 그런지 주차공간이 거의 없었다. 도로가에 겨우 주차하고, 유모차에 하연이를 태우고 하나, 하율이는 고래를 향해 달려갔다.

아이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 박물관 안에는 살아 있는 고래가 없다는 걸. 그래서 큰 기대 없이 박물관을 지나쳤다. 전시된 기록과 뼈, 과학 자료들에는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았다. 거대한 고래 뼈 앞에서 잠시 멈췄을 뿐, 아이들은 금세 발걸음을 재촉했다.

우리 부부는 천천히 읽고 살펴보며 흥미를 느꼈지만, 아이들은 그저 스쳐 지나갔다. 그들의 관심은 오로지 한 곳, 살아 있는 고래가 있는 생태관이었다.

생태관으로 달려간 아이들은 금세 환한 표정을 지었다. 작은 수족관처럼 다양한 물고기들이 전시되어 있었고, 옆 수조에서는 진짜 돌고래가 유영하고 있었다.

어른인 나로서는 "아, 이게 다구나" 싶은 정도였지만, 아이들은 달랐다. 특히 하율이는 수조 벽에 얼굴을 바짝 붙이고, 돌고래의 움직임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으려 했다. 하나는 다른 물고기들에게 금세 관심을 돌렸지만, 하율이는 온전히 고래에 몰입해 있었다. 관심의 깊이가 다르다는 걸 새삼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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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교육, 그리고 우리의 길

세상의 기준보다, 우리 가족에게 맞는 길을 찾기로 했다

하율이를 위해 다양한 고래 책을 사주고 싶었지만, 동화책 수준은 하율이에게 맞지 않았다. 전문서적은 아직 어려웠지만, 그림이 훌륭한 대학 교재를 어렵게 찾아냈다. 이해는 못하더라도, 그림만으로도 아이는 몰입했다. 그렇게 반복해서 보며 하율이는 고래를 조금씩 더 가까이 느끼게 되었다.

우리는 바랐다. 우리의 여행이 단순한 관광이 아니라, 아이들에게 의미 있는 시간이 되기를. 때로는 힘들어도, 시간을 들여서 새로운 세상을 함께 경험하기를.

흔히들 최고의 공부는 독서와 여행이라고 한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기만 해도, 독서는 뒷전이 되고, 학원 중심의 생활이 시작된다.

우리도 처음부터 확신이 있었던 건 아니다. 단지, 아이들이 학원에 치이기 전에 조금 더 넓은 세상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독서와 여행을 조금 더 소중히 여겨보기로 했다.

하나, 하율, 하연. 지금까지는 우리 방식대로 걸어오며 함께 성장해왔다. 물론 앞으로 어떤 결과가 기다릴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 길이 옳은지, 틀린지는 시간이 지나봐야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래도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후회하지 않기 위해, 오늘도 우리 가족은 우리에게 가장 어울리는 길을 조심스럽게 찾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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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는 길, 또 다른 고민

추위와 싸운 첫 차박을 넘어, 다음을 준비하다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 우리는 밤새 추웠던 첫 차박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른인 나와 와이프는 서로 웃으며 "그래도 해냈다"고 했지만, 아이들은 나름대로의 고생담을 풀어놓았다. 하나는 "새벽에 추워서 이불을 더 덮고 싶었는데 움직이기가 싫었다"고 했고, 하율이는 "발이 차가워서 발버둥쳤다"며 웃었다. 하연이는 말은 못했지만, 깨어 있는 시간마다 칭얼거렸던 게 떠올랐다.

그래도 이상하게 그 모든 순간들이 소중했다. 차 안에서 웅크리고 누워 서로의 온기를 느꼈던 밤, 창밖으로 들려오던 겨울 바람 소리, 새벽녘에 희미하게 퍼지던 빛. 그 모든 게 우리 가족만의 첫 번째 차박이었다.

나는 운전대를 잡고 또다시 고민했다. '다음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 단순히 따뜻한 이불을 챙기는 것 이상의 준비가 필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난방 장비, 단열 작업, 그리고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한 플랜B까지. 내 머릿속은 엔지니어 출신답게 바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여행은 늘 그렇다. 문제를 만나고, 해결책을 고민하고, 그렇게 한 발짝씩 성장해 나간다. 완벽한 준비는 없지만, 부족했던 점을 조금씩 채워나가면서 다음을 준비하는 것. 그것이 우리가 여행을 통해 배우는 방식이었다.

차 안은 히터 덕분에 금세 따뜻해졌고, 마음까지 포근해진 채로, 우리는 집을 향해 천천히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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