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폴... too strict." 코타팅기라는 반딧불 투어로 유명한 지역까지 우리와 동행을 해준 ZAK 아저씨가 들려준 이야기의 한 부분이다. 수도인 쿠알라룸프르에서 오랜 기간 (아마도) 공무원 생활을 한 거 같고, 은퇴 후 고향인 조호로 돌아왔다는 ZAK 아저씨는... 호라이즌 힐이라는 골프장과 함께 있는콘도에서 생활하고 계신다 했다. (삶에 여유가 있어 보인다) 차에 붙은 조호바루 프로 축구팀 (그들은 조호 Southern Tiger 라는 과거 이름을 더 사랑한다 했다) 서포터인 그 덕에 1월 11일 홈경기가 열리는 것도 알게 되어 주말에 경기를 직관하려 티켓도 예매했다. ZAK 아저씨가 보기에 싱가폴은 편리하고 발전된 도시인 건 맞지만, 말레이시안인 자기가 보기에는 모든 것이 너무 경직되어 있고 심지어 불편할 정도라는 평도 주셨다. 단적인 예로 인구 600만명인 싱가폴에 자동차 번호판 라이센스가 60만개 (정부에서 인구 10명당 차 1대로 규제를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기 때문에 자동차 번호판 라이센스가 몇 억을 호가하며, 심지어 그 라이센스도 딱 10년만 유효하고 사라진다고 한다. 10년 뒤에는 새로 사야 한다고 ㅠ
반대로 주말에 싱가폴로 놀러갔다 더위를 피하러 간 세인트 앤드류 성당에서 만난 싱가폴 아저씨는 "싱가폴 사람들은 조호에 휴가차 가긴 하지만, 말레이시아의 치안은 싱가폴보다 불안하고, 특히 싱가폴 차량은 조호의 오토바이 폭주족들의 소매치기나 강도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라고 푸념을 털어놓기도 했다. 신기한 것이 말레이시아 차량 번호판은 AAA0000 처럼 문자3, 숫자4로 구성되어 있고, 싱가폴 차량은 AAA0000A로 문자3, 숫자4, 그리고 다시 문자1로 구성되어 있어 번호판만 봐도 어느 도시 차량인지 알기가 쉽기 때문이다. 뭐 내가 머무르고 있는 Puteri Harbour, 그리고 조호바루가 전체적으로 한국인 여행객들에게는 그렇게 위험하지 않은 느낌이어서 그런지 막 와닿지는 않았지만, 회사의 싱가폴 Office 사람들의 전언도 "싱가폴 차량으로 조호가는 걸 막 선호하지는 않어. 오토바이 폭주족 때문에." 라는 걸 보니 현지 사람들에겐 어느 정도 맞는 말이 아닌가 싶다.
태초에 '래플스'라는 영국인이 지리적 이점을 깨닫고 영국령으로 만든 싱가폴, 일제치하처럼 일본의 식민지배도 거쳤으나, 이후 말레이시아와 하나의 국가로 독립하여 만들어졌다가, 싱가폴, 말레이시아 두 개의 국가로 나눠진 희한하면서도 재미난 역사를 가진 두 개의 국가, 특히나 조호바루는 싱가폴과 과 국경을 마주하고 있어 ZAK 아저씨 말로는 매일 아침과 저녁, 싱가폴-말레이시아 국경에는 traffic jam이 엄청나다고 한다. 몇 번 국경을 버스, 벤 등을 타고 이동해보니 정말 출퇴근 시간에는 끝없는 차량 뿐 아니라 오토바이 행렬도 어마어마하다. 말레이시아에 거주하면서 싱가폴에 출퇴근을 하는 것이 여러모로 좋기 때문이라고 한다. 매우 단순하게 화폐의 가치가 싱:말 = 3:1 이니 말이다. 그래서 그런지 연말의 휴일에는 휴가를 맞이한 많은 수의 싱가폴 사람들이 말레이시아, 조호에 와서 엄청 소비도 하고 휴가를 즐기고 돌아가고는 한다고 한다.
그런데 현지 사람이 아닌, 이방인의 관점으로 보면 참 신기한 것이... 싱가폴이든 말레이시아든 내 눈에는 절반 이상은 다 중국인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실제로 싱가폴 국민 중 75%가 중국계라고 하니, 싱가폴이든 이 곳 조호바루에서든 일단 중국어로 먼저 들이대는 현지 사람들의 모습이 이래서 낯설지 않은가보다. 10여년 전 영국에서, 20여년 전 미국에서도 중국인들은 참 한결같이 나를 보면 다짜고짜 중국말로 말을 걸고 내가 "I can not speak in Chinese." 라고 해도 중국어로 뭐라 뭐라 하면서 사라졌는데, 여기에서도 마찬가지다. 아직 여러 가치판단을 하지 않고 있을 아이조차도 "아빠, 중국인들은 좀 무례한 거 같아요. 근데 싱가폴 인구의 75%, 그리고 전 세계에서도 12억이 넘는 사람이 중국인이니 저럴만 하네요." 라고 푸념을 할 정도이다.
영국과 미국에서는 내 외모가 그렇게 중국인스러운가? 나름 옷을 갖춰 입는다고 했는데, 내 스타일이 중국 남방계 스타일인가? 라고 자괴감도 가졌지만, 다행히 이번에는 모든 중국인들이 중국말을 거니 내가 중국인이라 생각해서 그런 건 아니구나 라고 안도를 하고 있다.
어찌 됐든 국경을 걸쳐두고 있는 두 나라를 잠깐동안 옆에서 체험해보니 정말 신기한 것 투성이다. 조호바루와 싱가폴을 오가는 방법 중에 버스를 타고 다니는 방법이 있다. 숙소 근처에서 버스를 타면 우선 말레이시아 출국장(세컨드 링크)으로 간다. 그 곳에서 말레이시아 출국신고를 하고 다시 아무 버스나 올라타면 (일종의 국경지대와 같은) 다리를 건너, 이번에는 싱가폴 입국장(투아스)에 내려주고 싱가폴 입국신고를 한다. 그리고 그 곳에서 다시 버스를 타면 싱가폴 시내 어딘가로 갈 수 있다. 돌아올 때는 그 반대 루트이다. 그리고 여행객들은 매번 싱가폴/말레이시아 입국 때마다 일종의 입국신고서를 작성해야 한다. 예전에는 비행기에서 내리기 전에 주황색 종이에 이거 저거 적어서 내렸는데, 지금은 모두 모바일로 사전 신청이 가능하다. 다만 차이가 나는 것은 싱가폴 입국신고 앱은 매우 잘 만들어져있고 이용하기도 편리하며, 말레이시아 꺼는 뭔가 싱가폴 꺼에 비해 허접(?)하다는 것이다. 시작부터가 다르다. 싱가폴 입국신고 앱에서는 맨 처음 입국할 때 ID를 사람당 하나씩 만들 수 있고, 그 ID와 연계하여 여행정보만 그 때 그 때 변경해주면 입국신고가 된다. 처음에만 좀 귀찮지 두번 이상할 때 매우 편리해서 1분도 채 안 걸린다. 그런데 말레이시아 꺼는 ID가 없다. 매번 그 사이트에 첨 방문하는 사람처럼 여권정보부터, 숙소, 출입국 정도 등을 기입해야 한다. 다행히 구글의 자동붙여넣기 기능이 있으니 망정이지 하나 하나 작성하다가는 열불터지려 한다. 심지어 싱가폴 입국신고는 가족 전체 꺼를 ID들을 묶어서 1명이 1번에 다 신청할 수 있고, 말레이시아는 무조건 1명당 1번씩 해야 한다. 분명 말레이 사람들도 우리처럼 이런 번거로움을 느낄텐데 왜 조치가 안 되는 걸까? 하는 궁금함은 그냥 나만 가지고 가기로 한다.
어찌 보면 한 달의 휴양과 돈쓰기를 하고 있는 한국의 이방인이 두 나라를 평가한다는 거 자체가 우스울 수도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양국의 국경지대를 버스로 타고 가다 보면 구글 지도에는 바다 가운데에 두 나라의 국경선이 있고, 싱가폴 쪽에는 요트도 보이고 때로는 제트스키를 타는 사람들도 보인다. 반면 말레이시아 쪽에는 물 위에 떠있는 좌식 낚시대와 홍합 양식장 등이 보인다. 맹그로브 숲 투어를 하며 현지인에게 물어보니 바닷가쪽에 사는 로컬 사람들은 여전히 낚시와 홍합 양식 등으로 돈을 번다고 한다. 맹그로브 숲 투어를 할 때도 홍합을 한 번은 맛보게도 해주고 말이다. 같은 역사, 같은 지리적 환경을 가진 두 나라가 이렇게 다를 수 있음이 새삼 신기할 따름이다. 그리고 새삼 좁은 반도의 국민으로 내 시야도 참으로 좁았구나라고 한 번 더 느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