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적으로 업무를 핑계삼아 골프를 배우기 시작했던 3년전 레슨프로님에게 줄기차게 들었던 이야기다. 7번 아이언으로 170미터를 보내려면 무지하게 세게 쳐야 할 것만 같은데 공은 자꾸만 맞지 않고 프로님도 덩달아 말을 잃었다.
"엠제이, 자유형 리커버리하고 다시 물을 잡을 때 그렇게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가면 안돼요. 그러니까 빨리 지치는 거예요."
골프보다 조금 더 좋아하는, 그래서 오래 오래 하는 수영을 하기 위해서 배우는 레슨에서 코치님도 힘을 빼라 한다. 힘을 줘서 빨리 가려고 하면 할수록 오히려 속도가 더 늦어진다는 말과 함께...
골프를 치면 공을 더 멀리 보내고, 수영을 하며 더 멀리 빠르게 가고 싶은 욕심은 '힘'을 쓰게 만들지만, 정작 거리가 늘어나는 것은 '힘을 빼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은 (머 아직도 경지에 오르기는 한참은 멀었지만) 연습결과이기도 하지만, 골프나 수영과 전혀 상관없는 TV 프로그램을 통해서였다.
에베레스트를 오르고 정상에서 깃발을 휘날리는 수많은 등산가들이 있지만, 그들의 짐을 대신 짊어져주고 때로는 길도 열어주는 '쉐르파'들의 이야기는 조명받은 적이 별로 없다. 그들이 서양인이나 부유한 다른 국가의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한 다큐멘터리에서 쉐르파를 배출한 네팔 출신 모험가가 자신들의 동포이자 유능한 쉐르파 친구들과 함께 에베레스트를 포함한 전 세계의 악명높은 고산들을 최단기간에 등정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걸 봤다. 8000미터가 넘는 고산 14개를 6개월만에 정복했던 그는 구르카 용병이자 영국 특수부대에서 강인한 정신력과 체력을 길렀음은 물론이었다.
그들의 14좌 정복을 마음졸이며 보는 것도 재밌었지만, 정작 기억에 남는 것은 '쉐르파로만 알려져 있던 네팔인들은 그저 높은 산을 막 올랐기 때문'이었다. 높은 고도에 베이스캠프를 치고 고도 적응을 하거나 많은 장비들을 가지고 잔뜩 힘쓰지 않으면서 그냥 올라갔기 때문이다.
'왼팔의 각도를 생각하고, 클럽의 무게와 회전각도를 생각하고,하체가 먼저 리드하며 헤드의 무게로 오른손에 힘을 뺀 상태에서 머리를 들지 않고 친다.' 처럼 복잡하고 힘들어가있는 상태가 아니라 '그냥 대충 앞으로 보낸다.' 라는 정도 생각만 갖고 툭 쳐봐야겠네 라는 생각이 다큐가 끝날 때쯤 떠올랐다. 백스윙 탑이니 피니쉬니 이런 거에 애쓰지 말고 '그냥'말이다. 그 때부터 공이 좀 맞아갔다. 애쓰지 않고 어찌 보면 무성의해보일 정도로 대충 쳐도 공은 잘만 갔다.
수영도 마찬가지다. 물에 뜨려고 힘을 쓸수록 가라앉고 오히려 힘을 빼면 물에 뜬다. 팔과 어깨를 저어 앞으로 가려 하면 안 가고, 나뭇잎처럼 몸을 축 늘어뜨리고 길게 늘려주면 앞으로 잘 간다. 이를 악물수록 힘만 들고 빨리 지친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힘만 뺀다고 잘 되는 건 아닐 거다. 다큐의 주인공인 네팔 쉐르파들은 서양인들의 그늘에 가려져 있었지만 이미 엄청난 짐을 지고 고산들을 올랐던 어마어마한 경험이 있었다.
골프와 수영도 수없이 자세를 연습하고 신경쓰고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보고 하는 과정을 거쳤기에 이제는 힘이 없는 상태에서 해볼 수 있는 것이다.
삶도 그렇지 않을까?
돈을 쫓아 힘을 잔뜩 주고 투자하고 무언가를 하면 늘 뜻대로 이뤄지지 않는다. 아둥바둥 늘 힘만 잔뜩 주고 산다고 모든 게 이뤄지는 건 아닌것처럼...
돈을 쫓지 않아야 돈을 번다는 투자 격언은 그래서 나온 것 같다. 그렇다고 그 아둥바둥의 과정이 없으면 돈을 버는 결과도 없다. 투자 대상을 물색하고 리서치하고 공부하는 과정의 아둥바둥함은 치열하게 하더라도, 정작 투자의사결정에는 힘을 빼고...등산에서 한걸음 내딛는 것처럼 평온한 마음으로 해야 성공할 수 있다.
(실패한 투자는 대부분 단기간에 성과를 내야 한다는 조급함에서 비롯되었다)
3분기 실적발표 시즌인데, 예전처럼 열심히 사업보고서를 보지 않는 스스로를 위로하기 위해 여러 변명을 만든 것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