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난 김에 세계일주로 어느새 기안84라는 사람은 연예대상의 이른 후보로까지 등장했다. 남미, 인도, 그리고 이번엔 아프리카까지... ... 턱끝까지 매서운 바람이 몰아치고 귀까지 시려운 아침 지하철 출근길에 아프리카 마다가스카르로 떠난 그들의 이야기를 보고 있었다. 바오밥나무의 비현실적인 모습과 아프리카의 하늘에 수놓여진 아름다운 별들... ...'와우 저 사람들은 그냥 놀러가서 여행하고 돈을 나보다도 훨씬 많이 버는데, 나는 지하철 구석에서 대리만족이나 하고 있다니...' 라는 생각에 갑자기 재미가 떨어졌다.
관공서에 제출할 일이 있어 출입국 관련 서류를 구청에서 발급했다. 출입국 날짜만 기록된 그 서류에 나의 과거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혼자 처음으로 비행기를 타고 미국으로 날아갔던 겁없는 어린시절부터 직장인이 되어 회사 일로 여기저기 돌아다니던 때까지의 기억들이 남아있다.
1년여의 기간이지만 영국에서 일했던 기간에는.. 출입국 날짜에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사진으로 남은 기억들이 더 많다. 5살배기 아들과 함께 영국 남부 여기저기, 스코틀랜드 에딘버러, 프랑스 파리, 스위스, 노르웨이 올레순과 피오르드, 그리고 아이슬란드 링로드까지... ...Trunky 라고 불리는 아이용 캐리어 (지금은 둘째님의 것이 되었다)에 5살 아이를 태우고 "세상은 넓고 놀거리는 무지하게 많구나." 외치며 다녔었다.
1주일 정도의 여행객들은 잘 안 들어가는 아이슬란드 인랜드(랜드만날라우가르)를 들어가며 접한 우주와 같은 풍경과 한여름인데도 서늘했던 그 곳의 바람 냄새와 끓여먹은 라면과 누룽지맛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다시 아이슬란드로 꼭 돌아가겠노라.' 노래를 불렀지만 나는 지금 서울 광화문 사무실에 있다. 얼마전 가족들과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영화를 보면서 "와우 저기 아이슬란드다. 다시 가보고 싶다." 라고 외쳤으나 그 뿐이었다.
(출처 : 인터넷 나대로님 블로그)
현실 속의 나는 생각하고 고민할 게 너무 많다. 회사도 열심히 다녀야 하고, 노후를 위해 그리고 아이들을 위해 돈도 열심히 모아야 한다. 나이를 먹어가며 주변 가족들의 애경사도 하나씩 챙겨야 하며, 고민이 많아지는 만큼 흰머리도 늘어난다. 사무실 내 자리에는 'MIND THE GAP' 이라는 매우 매우 영국적인 표현이 담긴 사진이 한 장 있다. 런던의 지하철(Tube)을 타면... 안전한 노란선 뒤에 서세요라는 표현을 Mind the Gap이라고 표현한다. 니가 알아서 저 간격을 신경써서 피하라는 개인적이면서도 3자적인 ...그래서 영국적인 표현이다.
신기하게도 한국으로 다시 복귀한 후에는 런던에 출장이든 여행이든 가본 적이 없다. 런던 히드로 공항에서 한국으로 출발하면서는 '1년에 한 두번은 오겠지, Mind the Gap이라는 표현도 곧 듣겠지.' 했지만 말이다. 그러기에 기안84와 그와 함께 여행하는 여행유튜버 빠니보틀 등이 그저 부러울 따름이다. '나도 여행하고 노는 거 매우 좋아하는데 말이여.' 라는 생각과 함께 말이다. 매우 바쁜 연말 이벤트들이 끝나고 사무실 직원들은 다른 것들로 분주하다. 남은 휴가들을 모으고 내년 휴가를 미리 땡겨 얼마 남지 않은 23년과 다가올 24년 초 여행을 계획하고들 있다. 동남아로 쉬러 가거나, 스키여행을 떠나거나, 시나모롤을 만나러 일본에 가는 등 다양하다. 하지만 우리 가족의 23년말, 24년초에 아직 여행은 없다.
'몸과 마음에 여유가 없다.' 라는 것이 공식적인 이유이고 매우 타당해 보인다. 아무 생각없이 그냥 휴양지에 가서 며칠 노는 것도 가족들의 성향(?)에 잘 맞지 않기도 하고 말이다. 다만 마음에 걸리는 것은 시나모롤을 너무 좋아해서 일본의 산리오퓨로랜드를 가보고 싶어하는 둘째, 레고를 너무 좋아해서 레고 본사로 견학가보고 싶어하는 첫째의 소원을 알면서도 지금은 무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빠가 돈을 아주 많이 모으면...' 이라는 단서를 다는 것이 나중에 후회할 일인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잠시동안의 일탈보다는 현실에 발을 대고 부지런히 달려야 할 때임은 분명하다. 입버릇처럼 달고 사는 경제적 자유가 오는 그 날까지 말이다.
수년간 먼지쌓이게 쌓아놓은 아시아나 마일리지가 20만이 넘길래 잠시 마일리지 항공권으로 싱가폴, 동경, 푸꾸옥까지 다녀왔다. 갈 날이 오겠지? 라고 혼자 웃으며 컴퓨터 바탕화면 속 비현실적인 아이슬란드의 오로라 풍경 사진을 다시 열어본다. 저 오로라를 만나러 언제쯤 가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