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엠제이유니버스 Dec 17. 2023

마지막 잎새

겨울잠이 필요한 때

아재들 꿈의 채널인 나는 자연인이다에서 본 장면이었다. 겨울이 끝날 즈음 자연인이 쓰고 있는 샘물을 청소하러 갔다. 겨우내 눈이 와서 그런지 자연에서 샘솟는 샘물도 살짝 얼어있었고 수초들도 주변에 무성했다. 수초를 걷어내니 그 속에서 곤히 겨울잠을 자고 있던 미꾸라지와 개구리들... 자연인은 겨울잠자던 미꾸라지를 잡아 몸보신을 했다.


겨울잠. 요즘 들어 나도 겨울잠을 잘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이 든다. 몸이 좀 덜 피곤하면 수영을 하러 첫 새벽에 나오고, 그러지 않을 때는 7시반 8시 미팅을 하러 또 첫 새벽에 나오는 일상이 거의 몇 달 째다. 바쁘다. 문을 열고 나오는 길에 잎새 하나를 마주했다. 바람과 비에도 굴하지 않고 남아 있던 마지막 잎새 하나. 나의 마음을 나뭇잎에 투영하기 시작했다.


'버텨라. 12월 15일, 그 날이 되면 모든 것이 다 끝나니라. 그 때까지는 아프지도 말고 힘들어 하지도 말지어다. 그러니 나뭇잎아 너도 잘 버티어라!'


나뭇잎이 잘 있나 관찰해야지 하는 마음도 잠시. 바쁘고 어수선한 11월 12월을 보내느라 나뭇잎에 관심을 쓸 틈도 없었다. 그리고 마침내 디데이인 12월 15일이 되었고 6시쯤 출근하러 나오는 길에 문득 올려다 보니 후두둑 후두둑 떨어지는 겨울비와 함께 나뭇잎도 떨어지고 없었다. '아, 그동안 고생했노라고 잘 가라고 인사라도 해줄걸.' 하는 아쉬움 가득했다.


그렇게 12월 15일 디데이의 빅 이벤트는 잘 마무리 되었고 늦은 점심을 먹고 자리로 돌아오니 피로감이 몰려왔다. 아침 8시부터 오후 1시까지 초 긴장 상태로 있어서 그런가보다 했는데 너무 졸리기 시작했다. 다행히 코로나도 독감도 아니었으나 몸 상태는 말 그대로 물먹은 솜과 같았다. 끝없이 몰려오는 졸림.


오후 반차쓰고 집에 가서 한숨 자면 정말 좋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으나, 산넘어 산이라고 하더니... 연말을 정말 머리 복잡하게 만들만한 일이 오후 2시에 생겼다. 6시까지 이리 저리 찾아보고 고민해도 답이 없었다. 나보다 더 지친 보스는 "우리 답 안 나오는 거 더 들고 있지 말고, 해외에서 어차피 사례조사해야 하니 월요일 8시에 만나서 얘기하자 엠제이." 라며 지친 몸을 먼저 일으켰다.


쉬지 않고 내리는 겨울비를 작은 우산에 기대  피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평소였으면 맥주나 와인 한 잔 했을텐데 밥만 대충 먹고 씻고 그대로 잠이 들었다. 그렇게 겨울잠을 자는 곰처럼 자다가 깼다. 목이 말라 물을 마시고 다시 또 잤다. "평소에 잠을 안 자고 버티더니만... 잠이 제일 중요한 것이여." 라며 고맙게도 아내는 겨울잠을 허락해준다. 그렇게 거의 쉬지 않고 1박 2일을 자고 났더니... 그제서야 몸이 말을 듣는다.


정신을 차려보니 일요일 아침이다. 하나 남았던 잎새가 에너지를 쥐어짰던 것처럼 어깨를 짓누르는 것들로부터 에너지를 쥐어짰었나 보다. 내일이면 다시 또 머리아픈 일들이 일어지겠지만, 한바탕 에너지를 쏟아내고 방전됐다 다시 충전했으니 새 기분으로 시작해봐야겠다. 저 나무의 잎사귀가 내년 봄에 새로 움을 트는 것처럼 말이다.


[한줄 요약 : 포기하지 말고 이를 악물고 버티자]


#라라크루 #라이트 라이팅

매거진의 이전글 몸과 마음의 연결고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