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파리의 발레가, 고급 매춘의 집결지였다고?

에드가 드가가 남긴 그시절 발레리나들의 기록

by 라희


드가의 그림 속 발레리나들은 마치 작은 요정들 같습니다.

파스텔 톤의 색감과 하늘거리는 치맛자락... 우리는 그림을 보며 꿈을 향해 노력하는 소녀들의 아름다운 모습을 상상하곤 하지요.



에드가 드가 <초록 옷을 입은 무용수들>



그런데 그림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신 적 있나요?

드가의 그림 속 구석에는 항상 '검은 정장을 입은 중년 남성들'이 어슬렁거리고 있습니다. 도대체 이 아저씨들은 누구일까요?



오른쪽에 앉아있는 남성들을 보세요



부유층을 위한 특별 관람권?

이들의 정체는 당시 파리 오페라 극장의 연간 회원권, 일명 아보네(Abonnés)를 가진 부유한 남성들입니다. 이 비싼 회원권에는 공연 관람 외에 아주 특별하고 은밀한 혜택이 포함되어 있었는데요, 바로 '무대 뒤 대기실(백스테이지) 출입 권한'이었죠. 아무나 출입할 수 없는 공간에 '돈'을 낸 남성들은 특별히 들여보내준거에요.



에드가 드가 <별>



'작은 쥐'들의 생존 경쟁

요즘 발레는 돈없으면 하기 힘든 운동이지만, 19세기 파리에서는 대부분 빈민가 출신의 가난한 소녀들이 발레를 했답니다. 너무 못 먹어서 깡마른 이 소녀들을 사람들은 '작은 쥐(Petits Rats)'라고 불렀습니다.


에드가 드가 <발레 리허설>


그녀들에게 발레는 예술이기 이전에, 가난을 탈출할 수 있는 유일한 동아줄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동아줄을 쥐여줄 사람들은 바로 대기실을 서성이는, 부유한 남성들이었죠. 그림 속 남자들은 자신의 첩이 될 어린 소녀를 물색하러 온 '포식자'들입니다.




부모까지 합세한 스폰서 찾기

이런 비정상적인 관계가, 역설적으로 소녀들에게는 생존의 수단이었습니다. 오죽하면 그들의 어머니조차 딸이 부자 남자의 눈에 들게 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하는데요. 드가는 그 차갑고 비정한 거래의 현장을 사진기처럼 무심하게 기록했을 뿐입니다.



에드가 드가 <기다림>



이제 다시 보니, 소녀들의 표정이 마냥 밝지만은 않아 보이지 않나요?


[비하인드 컷] 드가는 변태였다?

드가는 평생 독신으로 살며 여성을 혐오했다는 설이 있습니다. 그는 발레리나에게 "포즈를 취해라" 하고 몇 시간씩 고통스러운 자세를 시키고는, 그들이 힘들어하며 근육을 떠는 모습을 관찰하는 걸 즐겼다고 합니다. 그는 친구에게 이렇게 말하기도 했습니다.

"사람들은 내가 발레리나를 사랑한다고 생각하지만, 나에게 그들은 그저 예쁜 옷을 입은 짐승일뿐이다."

그에게 소녀들은 아름다운 여성이 아니라, 그저 관찰해야 할 '움직이는 조각상'이나 '동물'에 가까웠던 셈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