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의 문> 에서 떼온 커플 이야기
안녕하세요 교양청 라희입니다.
오늘의 주인공은 미술사에서 가장 유명한 커플 조각상, 로댕의 <키스>입니다.
서로를 부드럽게 감싸안고 있는 아름다운 모습. 연인들의 영원한 사랑을 상징하는 것 같죠? 하지만 이 커플의 정체는 반전 그자체랍니다.
이 남녀는 단테의 <신곡> 지옥편에 나오는 '파올로'와 '프란체스카'입니다.
그런데 충격적이게도 둘은 시동생과 형수 사이입니다. 정략결혼으로 못생긴 형(지오반니)과 결혼한 프란체스카가 잘생긴 남동생 파올로와 눈이 맞은 거죠. 책을 같이 읽다가 분위기에 취해 첫 키스를 나누는 바로 그 순간을 조각한 작품이랍니다.
이들이 맞이하는 다음 장면은 19금 로맨스가 아니라 호러입니다. 커튼 뒤에 숨어서 지켜보던 남편(형)이 뛰쳐나와 그만 두 사람을 찔러버리거든요.
즉, 이 키스는 인생의 마지막 순간이자, 지옥으로 떨어지는 급행열차 티켓이었던 셈인데요, 여기까지만 들으시면 "허이고? 그러게 누가 바람피래?" 라고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의 풀스토리를 알게 된다면 프란체스카의 행동을 어느정도 이해하실지도 몰라요.
프란체스카의 남편이자 파올로의 형인 지오반니는 추남에 절름발이였고, 성격까지 포악했습니다. 프란체스카는 원래 지오반니와 정략결혼을 해야 했는데, 집안 어른들이 그녀가 도망갈까 봐 잘생긴 동생(파올로)을 대리인으로 내세워 맞선을 보게 한거에요.
프란체스카는 파올로가 예비남편인 줄 알고 사랑에 빠져 결혼했는데... 첫날밤에 들어온 건 늙고 추한 형 지오반니였던 겁니다. (하...)
사기 결혼에 속아 흉측한 남편 지오반니와 살게 된 프란체스카. 그녀에게 유일한 낙은 잘생긴 시동생 파올로와 함께 문학을 논하는 것이었습니다. 어느 날 오후, 두 사람은 <랜슬롯과 기네비어>는 기사도 로맨스 소설을 같이 읽고 있었습니다. 이 책 내용이 뭐냐? 왕비와 기사의 불륜 이야기였답니다.
두 사람이 책을 읽어 내려가다 결정적인 구절에 도달합니다.
"...그토록 갈망하던 미소 짓는 입술에 랜슬롯이 입 맞추었을 때..."
바로 이 대목에서 파올로의 이성이 끊어집니다. 그는 책 속의 주인공처럼, 옆에 있던 프란체스카의 입을 맞추었지요. 아니, 맞추려고 하던 찰나!
단테의 <신곡>에서 프란체스카는 지옥에서 이렇게 증언합니다.
그날 우리는 더 이상 책을 읽지 못했습니다.
왜냐고요? 책을 덮고 서로를 탐닉하려던 그 순간, 방문이 열리고 남편의 칼날이 날아들었으니까요.
원래 이 로댕의 <키스는> 독립적인 작품이 아니었습니다. 로댕이 만든 거대한 조각 <지옥의 문>의 한구석에 매달려 있던 장식품 중 하나였죠.
지옥에 떨어져서 고통스러워해야하는데, 로댕이 (실수로?) 너무나 아름답게 만든 나머지.. 자기들끼리 로맨틱한 모습을 보내고 있는 것처럼 보였나봐요. 그래서 아예 떼어내서 별도의 작품으로 만든거랍니다.
로댕은 <키스> 를 조각할 때, 두 사람의 입술을 완전히 밀착시키지 않았습니다. 아주 미세한 공간을 두어 입술이 살짝 스치기 직전의 텐션을 표현했지요. 이것은 그들이 '키스를 다 끝내기도 전에' 남편에게 들켜 살해당했다는 비극성을 강조하기 위한 로댕의 천재적인 연출입니다.
그리고 파올로의 오른손을 다시 보면, 프란체스카의 허리나 등을 꽉 끌어안지 않고, 허벅지 위에 아주 살포시, 엉거주춤하게 올려져 있습니다.
이는 "어... 이거 만져도 되나?" 하는 망설임, 즉 죄책감과 두려움이 섞인 '첫 스킨십'의 순간임을 보여줍니다. 완전히 불타오른 관계가 아니라, 이제 막 선을 넘으려는 '찰나' 였던 것이지요.
단테의 소설 속에서 두 사람은 당시 귀족들의 화려한 옷을 입고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로댕은 "옷은 시대의 유행을 타지만, 나체는 영원하다"며 과감하게 옷을 다 벗겨버렸지요. 덕분에 이 불륜은 특정 시대의 사건이 아니라, 인간의 원초적인 욕망 그 자체를 보여주는 걸작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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