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커플은 1초 뒤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합니다

<지옥의 문> 에서 떼온 커플 이야기

by 라희

안녕하세요 교양청 라희입니다.

오늘의 주인공은 미술사에서 가장 유명한 커플 조각상, 로댕의 <키스>입니다.


Rodin_-_Le_Baiser_06.jpg 오귀스트 로댕 <키스> 1882


서로를 부드럽게 감싸안고 있는 아름다운 모습. 연인들의 영원한 사랑을 상징하는 것 같죠? 하지만 이 커플의 정체는 반전 그자체랍니다.






형수님과 도련님, 지금은 불륜중?

이 남녀는 단테의 <신곡> 지옥편에 나오는 '파올로'와 '프란체스카'입니다.


William_Dyce_-_Francesca_da_Rimini_-_Google_Art_Project.jpg 파올로와 프렌체스카


그런데 충격적이게도 둘은 시동생과 형수 사이입니다. 정략결혼으로 못생긴 형(지오반니)과 결혼한 프란체스카가 잘생긴 남동생 파올로와 눈이 맞은 거죠. 책을 같이 읽다가 분위기에 취해 첫 키스를 나누는 바로 그 순간을 조각한 작품이랍니다.






키스하기 직전 벌어진 끔찍한 일


이들이 맞이하는 다음 장면은 19금 로맨스가 아니라 호러입니다. 커튼 뒤에 숨어서 지켜보던 남편(형)이 뛰쳐나와 그만 두 사람을 찔러버리거든요.


1819-jean-auguste-dominique-ingres-gianciotto-discovers-paolo-and-francesca.jpg 아내와 동생의 밀회를 지켜보는 형


즉, 이 키스는 인생의 마지막 순간이자, 지옥으로 떨어지는 급행열차 티켓이었던 셈인데요, 여기까지만 들으시면 "허이고? 그러게 누가 바람피래?" 라고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의 풀스토리를 알게 된다면 프란체스카의 행동을 어느정도 이해하실지도 몰라요.






파올로와 프란체스카가 눈맞은 이유

프란체스카의 남편이자 파올로의 형인 지오반니는 추남에 절름발이였고, 성격까지 포악했습니다. 프란체스카는 원래 지오반니와 정략결혼을 해야 했는데, 집안 어른들이 그녀가 도망갈까 봐 잘생긴 동생(파올로)을 대리인으로 내세워 맞선을 보게 한거에요.



Ernst_Klimt_-_Francesca_da_Rimini_e_Paolo.jpg 샤방보이 파올로에게 반한 프란체스카


프란체스카는 파올로가 예비남편인 줄 알고 사랑에 빠져 결혼했는데... 첫날밤에 들어온 건 늙고 추한 형 지오반니였던 겁니다. (하...)



Francisca_de_Rímini_(Museo_del_Prado).jpg 지오반니


사기 결혼에 속아 흉측한 남편 지오반니와 살게 된 프란체스카. 그녀에게 유일한 낙은 잘생긴 시동생 파올로와 함께 문학을 논하는 것이었습니다. 어느 날 오후, 두 사람은 <랜슬롯과 기네비어>는 기사도 로맨스 소설을 같이 읽고 있었습니다. 이 책 내용이 뭐냐? 왕비와 기사의 불륜 이야기였답니다.



두 사람이 책을 읽어 내려가다 결정적인 구절에 도달합니다.

"...그토록 갈망하던 미소 짓는 입술에 랜슬롯이 입 맞추었을 때..."



바로 이 대목에서 파올로의 이성이 끊어집니다. 그는 책 속의 주인공처럼, 옆에 있던 프란체스카의 입을 맞추었지요. 아니, 맞추려고 하던 찰나!



둘이 입맞추려던 그 순간..!




단테의 <신곡>에서 프란체스카는 지옥에서 이렇게 증언합니다.

그날 우리는 더 이상 책을 읽지 못했습니다.

왜냐고요? 책을 덮고 서로를 탐닉하려던 그 순간, 방문이 열리고 남편의 칼날이 날아들었으니까요.



tumblr_phbt787WbJ1uarcwao1_1280.jpg 결국 지오반니의 칼을 맞고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한 두 사람





원래 지옥의 문을 지키는 문지기였다?

원래 이 로댕의 <키스는> 독립적인 작품이 아니었습니다. 로댕이 만든 거대한 조각 <지옥의 문>의 한구석에 매달려 있던 장식품 중 하나였죠.



licensed-image (1).jpeg 로댕 <지옥의 문>



지옥에 떨어져서 고통스러워해야하는데, 로댕이 (실수로?) 너무나 아름답게 만든 나머지.. 자기들끼리 로맨틱한 모습을 보내고 있는 것처럼 보였나봐요. 그래서 아예 떼어내서 별도의 작품으로 만든거랍니다.






정확히는 키스하기 '직전'

로댕은 <키스> 를 조각할 때, 두 사람의 입술을 완전히 밀착시키지 않았습니다. 아주 미세한 공간을 두어 입술이 살짝 스치기 직전의 텐션을 표현했지요. 이것은 그들이 '키스를 다 끝내기도 전에' 남편에게 들켜 살해당했다는 비극성을 강조하기 위한 로댕의 천재적인 연출입니다.


The-Kiss-Sculpture-by-Auguste-Rodin.jpg 닿을 듯 말듯


그리고 파올로의 오른손을 다시 보면, 프란체스카의 허리나 등을 꽉 끌어안지 않고, 허벅지 위에 아주 살포시, 엉거주춤하게 올려져 있습니다.


Tuileries_Rodin_Le_Baiser_120409_4.jpg 엉거주춤


이는 "어... 이거 만져도 되나?" 하는 망설임, 즉 죄책감과 두려움이 섞인 '첫 스킨십'의 순간임을 보여줍니다. 완전히 불타오른 관계가 아니라, 이제 막 선을 넘으려는 '찰나' 였던 것이지요.






[비하인드 컷]왜 옷을 벗고 있을까?

단테의 소설 속에서 두 사람은 당시 귀족들의 화려한 옷을 입고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로댕은 "옷은 시대의 유행을 타지만, 나체는 영원하다"며 과감하게 옷을 다 벗겨버렸지요. 덕분에 이 불륜은 특정 시대의 사건이 아니라, 인간의 원초적인 욕망 그 자체를 보여주는 걸작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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