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누드화가 공개되자 파리가 뒤집어진 이유

에두아르 마네 <올랭피아> 1865

by 라희

1865년 파리 살롱전, 관람객들은 이 그림을 보자마자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지팡이로 그림을 찢으려는 신사들 때문에 경비원 두 명을 배치해야 했을 정도였죠. 당시 누드화는 흔하디 흔했는데, 도대체 왜 이 그림만 그토록 욕을 먹었을까요?


Edouard_Manet_-_Olympia_-_Google_Art_ProjectFXD.jpg 에두아르 마네 <올랭피아> 1863


이유는 단순합니다. 그림의 주인공은 다름아닌 파리 뒷골목의 매춘부였기 때문입니다.






비너스의 고상함을 비웃다

사실 이 작품은 당대 최고의 걸작인 티치아노의 <우르비노의 비너스>를 대놓고 패러디한 것인데요,

Tizian_-_Venus_von_Urbino.jpg 티치아노 베첼리오 <우르비노의 비너스> 1510



타치아노가 그린 그림 속 비너스는 수줍게 고개를 떨구고 있지만, 마네의 올랭피아는 고개를 빳빳이 들고 관람객을 똑바로 직시하고 있습니다.

그녀의 눈은 마치 이렇게 말하는 듯하죠. "뭘 봐? 그래, 나 매춘부야. 너도 나 사러 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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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당당한 시선은 그림을 감상하러 온 점잖은 신사들을 당황시켰습니다. 그림을 보고 있으면 마치 자신이 '성 매수자'가 된 기분이 들었거든요.





가린 것이 아니라 '막은' 것

원작인 <우르비노의 비너스>와 가장 큰 차이점은 '손' 입니다. 전통적인 비너스의 손은 자신의 중요 부위를 가리는 수치심을 상징했습니다. 하지만 올랭피아의 손은 다릅니다. 그녀의 손은 아주 힘이 들어가 있고 단호합니다. 이것은 부끄러움의 표현이 아니라, "돈을 지불하기 전까지는 열어줄 수 없다"는 명확한 비즈니스적 거절이자, 자본주의적인 제스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강아지가 사라진 자리를 채운 건?

원작을 뒤집어놓겠다는 마네의 디테일은 생각지 못한 곳에서도 발견됩니다.

한 예로, <우르노스의 비너스> 에서는 여인의 발 밑에 '충성'을 상징하는 강아지가 자고 있었는데요,


원작 <우르노스의 비너스> 속 자고 있는 강아지



마네가 그린 <올랭피아>의 발 밑에는 강아지 대신 털을 곤두세운 '검은 고양이'가 있습니다. 서양 미술에서 검은 고양이는 음란함과 남성을 홀리는 요물을 상징합니다. 이 여성은 순수한 사람이 아니라는 걸 간접적으로 표현하려던 걸까요?



SE-e9b17cf8-e7cf-45d9-b01c-70da00616a0f.jpg?type=w1 강아지가 있던 자리에 검은 고양이가 생겼습니다


앞에서 제가 이 작품을 찢으려는 남자들이 있었다고 이야기했었죠? 실제로 당시엔 점잖빼는 신사들 가운데 남몰래 매춘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낮에는 미술관에서 고상한 척 작품을 감상하다가, 밤에는 뒷골목에서 그런 짓을 하는거죠. 아마도 화가 마네는 이런 이중적인 모습을 가진 '신사들' 을 풍자하고 싶었던게 아닐까요?





[비하인드 컷] 작품 이름이 왜 '올랭피아'일까?

그리스 신들의 산 '올림포스' 가 연상되는 고상한 이름같은데요, 사실 1860년 당시 파리에서 '올랭피아'는 고급 창녀들이 가장 많이 쓰던 예명이었습니다. 지금으로 치면 유흥가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이름이었던 셈이지요. 마네가 제목을 붙이자마자 파리 시민들은 그림 속 여인의 직업을 단번에 눈치챘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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