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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양이 Feb 14. 2024

Ep1. 다윈과 제니



세상에, 인간이 원숭이의 자손이라니!
사실이 아니기를, 
만약 사실이라면 널리 알려지지 않기를.






 1838년 11월 25일, 영국 런던 동물원에 한 유인원이 도착했다. 밀렵꾼들이 어미를 죽이고 납치한 오랑우탄 새끼였다. 이름은 제니라 불렀다. 제니는 사람처럼 긴 스웨터와 바지를 입었고, 안락의자가 있고 카펫이 깔린 방에서 아기처럼 사육사에게 업혀서 자랐다. 제니는 곧 같은 또래의 오랑우탄 친구인 토미와 함께 동물원의 인기스타가 되었다. 런던 동물원은 돈을 쓸어 담았고, 유명세를 들은 빅토리아 여왕도 사람을 닮은 신기한 생명체를 보러 동물원을 방문했다. 여왕은 스푼을 들고 차를 홀짝이는 제니를 보고 “고통스럽고 불쾌할 정도로 인간과 닮았다.”라고 말하며 언짢은 심기를 드러냈다. 


 비슷한 시기에 동물원을 어슬렁거리던 한 청년도 제니를 보았다. 영국 해군 측량선인 비글호를 타고 세계일주를 다녀온 지 얼마 안 된 찰스 다윈이었다. 다윈은 마침 사육사가 사과를 주는 척하다 숨기는 장난을 치자 입술을 삐쭉거리는 제니를 보았다. 사육사가 울며 떼를 쓰는 제니를  타일렀다. 


“제니, 울지 말고 착하게 굴면 사과를 줄게.” 


제니가 점차 울음을 그치고 차분해졌다. 다윈이 물었다. 


“제니가 당신 말을 알아듣는 건가요?” 


“물론이죠, 선생님.”


 제니는 지푸라기로 된 기차를 만들었고, 기린한테 갈 때는 채찍을 들고 갔다. 무서운 개 옆을 지나갈 때는 무엇이든 꽉 쥐었고, 거울을 보고 신기해하며 입을 맞추었다. 친구인 토미 역시 제니의 행동을 따라 했다. 다윈은 제니가 사람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고, 한 가지 점만 빼고 여왕과 동일한 결론을 내렸다. 다윈은 인간의 우월성을 확신하는 사람은 모두 유인원을 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제니를 만나고 20년 뒤, 다윈은 <종의 기원>을 출판한다. 의대를 중도 포기하고 아버지에게 가족의 수치라는 말을 들었던, 사냥과 수집 말고는 하고 싶은 것도 되고 싶은 것도 없었던 게으른 청년이 20여 년간의 연구 끝에 인간에 대한 관점을 송두리째 뒤집는 혁신적인 이론을 창안해 낸 것이다. 



 다윈 덕분에 인류는 자신의 존재론적 지위가 생명의 나무 꼭대기에 있지 않다는 것을 자각할 수 있었다. 호모 사피엔스는 단순한 세포에서 복잡한 유기체로 진화해 살아가고 스러져 간 수많은 종 중에서 운 좋게 지금까지 살아남은 후손일 뿐이었다. 


포유류라는 큰 가지에서 영장류로, 영장류에서 유인원으로 갈라져 이제 막 싹을 틔운 어린 잎사귀가 

바로 우리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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