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성과 광기
뉴스에서는 조현병에 걸린 사람들이 일으킨 범죄가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조현병은 정신분열증이라고도 불리는데, 가끔씩 일어나는 끔찍한 범죄 때문에 사람들은 조현병자를 이상한 사람으로 생각하고 두려워한다. 사실 조현병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꼭 범죄를 일으키는 건 아니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는 정신적 문제가 있는 사람을 두려워하고, 피해야 할 존재로 취급한다. 요즘은 많이 나아졌지만, 우울증과 공황장애 같이 흔한 증상도 개인이 이상하고 나약한 탓으로 취급받았다. 정신이 아픈 문제는 몸이 아픈 것처럼 대우받아야 하지만, 어디서나 광인은 위험하고 이질적인 존재로 취급받아 왔다.
처음부터 광기를 피해야 할 질병이자 두려워했던 건 아니었다. 미셸 푸코는 『광기의 역사』에서 중세까지만 해도 광기는 인간 성향의 일부일 뿐 질병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말한다. 광기는 신과 더 다가간 증상으로 받아들여졌고, 광인은 천재성을 타고난 사람으로 존중받았다. 그들은 사회의 구성원 중 일부로서 별다른 제약 없이 살아갈 수 있었다.
하지만 근대가 시작되며 광인은 위험한 존재, 격리되어야 할 인간 취급을 받았다. 이성의 시대가 도래하고 종교개혁의 결과로 근면성에 기반한 노동윤리가 나타나면서 유럽에서 광인은 더 이상 설 자리가 없었다. 근대 유럽 사회는 인간을 이성적이고 성실한 정상인과 비이성적이고 게으른 비정상인으로 구분했다. 비정상인에는 광인뿐만 아니라 극빈자, 부랑자, 매독 환자, 방탕자, 일하지 않는 자도 포함되었다. 17세기 중반부턴 사회는 구빈원을 설치하여 그들을 마구잡이로 잡아 가두었다. 산업혁명이 시작되면서 노동력의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비정상인들을 풀어주었지만, 광인만은 끝까지 남아 심리학자들과 정신의학자들의 관찰 대상이 되었다. 심리학자들은 광인을 이성과 상식을 잃어버린 존재, 치료해야 할 대상으로 보았다. 오늘날도 마찬가지다.
푸코가 자신의 지적 출발점으로 삼은 것이 바로 광기다. 푸코는 광기의 역사적 뿌리를 훑어가며 이성이 광기에 승리하여 사회의 중심 이데올로기로 자리 잡는 과정을 추적해나간다. 그 과정에는 광기뿐만 아니라 지식, 자유, 권력, 신체 등을 포함한 개인의 개성이 근대에 접어들며 이성에 종속되어가는 역사가 담겨 있다. 광기로 대표되는 비이성은 이성이라는 감옥에 갇혀 감시되고 처벌받아 왔다. 학교, 군대, 대학은 보편이라는 이름 아래 비합리성을 처벌하는 권력 기관이다. 권력은 개인의 내면에도 작용하여 판옵티콘이라는 심리적 감옥을 만들어 낸다. 우리가 항상 이성적이고, 성실하고, 사회 규범을 잘 준수하며 법을 잘 지키는 시민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압박을 받고 있는 것이 그 증거이다. 광인을 바라보는 중세의 관점만 봐도, 오직 이성만이 사회의 중심 이데올로기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은 전혀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다. 현대인들은 이성이라는 감옥에 갇혀 권력에 감시받고 이용되고 있다고 푸코는 주장한다. 늘 내면에서 감시받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 원형 감옥인 판옵티콘에 사는 죄수들처럼.
푸코의 주장에 모두 동의할 순 없지만, 광기가 인간 정신의 일부분임을 부정할 순 없다. 5대 성격 특성 중 광기와 관련된 성격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바로 개방성이다. 개방성은 정신분열증과 상관관계가 상당히 높다. 개방성 수치가 높은 사람 중에선 시인, 예술가뿐만 아니라 조현병자가 많다. 예술가들은 광인과 정신분열증 수치에 큰 차이가 없다. 개방성은 지능과도 관련성이 크며, 정치적으로 진보주의자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우리는 이미 도파민이라는 호르몬이 개방성과 외향성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아보았다. 특히 개방성은 5대 성격특성 중 정치적 성향과 가장 관련성이 잘 밝혀진 성격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개방성은 5대 성격특성 중 가장 신비롭고 명확하게 설명하기가 어려운 성격이기도 하다. 개방성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기 때문에, 학자들은 문화성, 지성, 또는 경험에 대한 개방성 등으로 다르게 부르기도 한다. 개방성은 문화적 교양과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기도 하고 신비롭고 영적인 정신 상태를 만들기도 한다. 수학과 과학, 철학 같이 논리적이고 객관적인 사고를 돕거나 문학적 재능을 꽃피우게도 하고, 정치적으로 강경한 진보주의자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개방성이 좋은 쪽으로 작용하면 천재성과 창의력을 꽃피우게도 하지만, 나쁜 쪽으로 작용하면 광기와 정신병적 증상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 그래서 천재와 미치광이가 종이 한 장 차이라는 말은 꽤 일리가 있는 말이다.
성실성과 마찬가지로, 개방성 역시 세상을 인식하는 프레임으로 작용한다. 성실성이 세상을 좁은 범위로 인식하여 안정되고 체계적인 방식대로 살도록 만든다면, 개방성은 세상을 넓은 범위에서 인식하게 해 새로운 것들을 최대한 많이 경험하고 탐구하게끔 한다. 따라서 개방성에 대한 가장 일반적인 정의는 경험에 대한 개방성이지만, 일반적인 경험뿐만 아니라 생각과 감정, 감각까지 포함될 수 있다. 그래서 문학, 과학, 사회, 예술, 정치 등 다양한 영역에서 개방적인 사람들이 활동하고 있다. 인간에게는 인식의 거리가 좁든 넓든 누구나 자신이 사는 세상을 탐구하고 체계화하려는 뿌리 깊은 욕구가 있는데, 개방성이 높은 사람은 일반적인 인식의 경계에 의문을 제기하고 밖으로 나아가려는 사람들이다.
개방성이 높은 사람은 사고와 감정의 폭이 넓고 깊으며, 지적인 이론, 최신 유행, 독창적인 관점에 흥미를 느낀다. 사회적 관습에 얽매이기를 싫어하고, 자유롭고 독립적이며, 저항 정신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물질적 이익이나 사교 생활에는 큰 관심이 없고,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탐구하지만 한 가지에 깊게 빠져들진 않는다. 또 환상과 공상에 잘 빠지고, 아름다움과 예술에 대한 감수성이 높다. 에너지가 넘치는 락 같은 장르보다는 복잡하면서도 미묘한 클래식 같은 음악을 더 좋아한다. 자신의 내면에 주로 관심을 기울이고, 복잡한 이론을 좋아하고 사색적이다. 반복되는 일상을 지루하게 느껴 못 견뎌하고, 항상 새롭고 잡다한 지식을 찾아 나서고, 문제를 해결할 땐 색다른 방법을 시도한다. 문화적 취향도 일반적인 드라마나 영화보다는 과학 잡지나 다큐멘터리같이 지식과 이론을 다루는 매체와 책을 즐겨 본다. 이러한 특징은 모두 세상을 더 많이 경험하고 이해하고 싶은 욕구에서 나온다. 이들에게 공부는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다. 개방성이 높은 사람 중에 학자들이 많은 이유다. 마음에 끌리지 않는 공부와 시험은 끔찍한 일이라서, 학업 성취는 과목에 따라 좋게 나오기도, 나쁘게 나오기도 한다.
개방성은 유일하게 지능 지수와 관련이 있는 성격 유형이다. 지능은 인지능력이 얼마나 효율적으로 작동하는지에 달려있다. 개방성이 높은 사람들은 추상적 사고력과 관련된 유동성 지능과 함께 언어와 지식 영역 과제가 포함된 결정성 지능에서도 높은 점수를 받는다. 개방적인 사람들은 대체로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 우수하며, 특히 어휘력과 유창한 언어구사 능력, 연상력, 추상적 사고력에 강점을 가진다. 연구 결과, 개방성은 IQ와 0.2 정도로 일정한 상관관계가 있다.(키와 몸무게의 상관관계는 1점 만점 중 0.3) 개방성이 높은 사람 중에선 진보주의자가 많다. 단순히 생각해보면, 진보주의자는 보수주의자보다 지능이 더 높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좀만 더 자세히 생각해보면, 진보주의자가 보수주의자보다 지능이 높다고 자신 있게 말하긴 힘들다. 우선 지능이 무엇인가에 대해 학계의 관점이 바뀌고 있다. 전통적 관점에서 보면, 지능은 뇌 시스템 전체의 전반적인 효율성을 말한다. 지능은 IQ 테스트에 의해 g-요인이라는 요소로 결정될 수 있으며, IQ 테스트는 다른 무엇보다도 신뢰할 수 있는 검사법이다. 전통적 관점에서 보면 지능이 높은 사람은 언어와 비언어 문제를 잘 해결하고, 손재주도 뛰어나고, 복잡한 관념도 빠르게 이해할 수 있고 기억력도 뛰어나다. 결론적으로, 지능이 높은 사람은 무엇이든 다 잘하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성공하기에 훨씬 유리하다. 고전적 관점에서 보면, 지능은 타고나는 것이기 때문에 노력으로 높일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세계인의 평균 지능은 국가와 인종을 초월하고 꾸준히 높아지고 있다. 만약 지능이 학습과 경험으로 늘어나지 못하고 순전히 유전에 의해 좌우된다면, 보통 교육이 실시되기 전과 후의 아동 지능은 그대로 여야 한다. 하지만 실제로 과거 사람들의 평균 지능은 오늘날 기준으로 보면 지적장애 판정을 받는 수준이다. 그렇다고 과거에 살았던 사람들이 머리가 더 나빴던 건 아니다. 이는 지능이 후천적으로 높아질 수 있으며 환경과 교육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것을 증명한다. 사회심리학자 리처드 나스벳은 『인텔리전스』에서 IQ 점수는 계층과 환경, 교육에 따라 달라지며, 지능이 일부 유전인 것은 맞지만 유전율은 인지 환경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고 말한다. 중요한 것은 가정과 학교가 어떤 교육을 해서 아동의 인지능력을 발달시키느냐다.
IQ 테스트로 측정되는 일반 지능(G-인자)이 지능 전체를 대표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도 논란이 많다. 사람은 각자 타고난 재능이 다르다. 메시는 어릴 때부터 발이 공에 붙어 다녔고, 베토벤과 모차르트는 절대 음감을 타고났으며, 피카소는 예술적 감각을 타고났다. 어떤 일을 남들보다 훨씬 쉽고 잘할 수 있다면 그게 지능이 아니면 무엇일까. IQ 점수가 높으면 시험을 잘 치는 데 훨씬 유리하긴 하다. 그렇다고 공부 잘하는 사람이 다 일머리가 좋은 건 아니다. 지능 지수로 모든 인지능력의 우위를 판단하는 기존의 관점은 문제가 많다. 박지성의 진짜 가치를 축구 스탯으로 평가할 수 없듯이, IQ 점수만으로 지능을 다 설명할 수는 없는 법이다.
또 다른 실험에서는 보수주의자와 진보주의자의 IQ가 별 차이가 없다는 결과가 나왔다. 정치적 성향과 지능 간의 관계에 대해 오직 유의미한 결과가 나온 것은 언어 능력에 한해서였다. 이는 개방성이 만드는 확산적 사고와 광범위한 연상, 그로 인한 지적 호기심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개방성이 높은 진보주의자는 새로운 지식을 찾아다니느라 책을 자주 읽거나 인터넷 서핑을 통해 정보와 활자를 많이 접하다 보니 언어 이해력에서 높은 점수를 받게 된 것이다. 어쩌면 진보주의자가 결론을 이끌어내는 수렴적 사고보단 생각이 자유롭게 뻗어나가는 발산적 사고를 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시인이나 소설가처럼 언어적 감수성이 풍부한 이들은 대체로 개방성이 높다.
개방성은 예술가를 만들기도 한다. 개방성이 언어적 감각을 발달시키는 쪽으로 작용하면 작가가 되지만, 예술적 감수성을 풍부하게 만들면 예술가ㆍ아티스트가 될 수도 있다. 대개 예술가들은 신경성 수치도 높게 나타나는데, 예민하고 우울한 감정이 개방성과 만나 예술적 창조성을 꽃피우게 만들기 때문이다. 연구에 따르면, 시인의 50%, 음악가의 38%, 화가의 20%가 우울증을 앓고 있다고 한다. 고흐, 슈베르트, 말러, 헤밍웨이 등도 우울증을 앓았다. 예술가들의 머릿속에선 인식과 감각의 경계가 불분명해 생각과 감정이 뒤섞이고, 일반인보다 훨씬 많은 자극을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예술은 노력보다는 영감이 더욱 중요한 분야라 우울과 슬픔이 창작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어쩌면 불안과 우울은 예술가들의 숙명인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인류사에 위대한 걸작을 남긴 예술가중에 정신병을 앓았던 사람이 많았는데, 이 또한 개방성과 관련이 깊다. ‘예술혼을 불태우고 미쳐버린 천재’라는 스토리는 영화에서나 들어볼 법한 말이지만, 실제로 많은 예술가들이 우울증뿐만 아니라 정신적 문제로도 고통받고 있다. 우선 예술가들과 조현병자 간 정신분열형 수치는 크게 차이가 없다. 정신분열형 수치가 높으면 단어들의 의미를 더 가깝게 받아들이고, 이는 현실 감각을 흐릿하게 한다. 의식의 검열이 사라진 꿈속에선 일반인들도 생각이 뒤죽박죽이고 비현실적인 꿈을 꾸는 것처럼 말이다. 실제로 위대한 예술가 중에선 환청과 환영을 보는 사람이 많았다. 그들은 꿈을 꾸고 난 후나, 마약을 하고 난 후에 걸작이 탄생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어떤 화가가 마약을 하기 난 전과 후에 그린 그림을 본 적이 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림은 초현실적이고 난해하게 변해갔다. 마약은 도파민 수치를 비정상적으로 높이고, 도파민 수치가 높아지면 의식의 경계가 사라지고 감각이 뒤섞이는 등 개방성을 증가시키기 때문이다. 그래서 음악을 하는 사람들이 영감을 위해 대마를 피는지도 모르겠다.
개방성은 신비로움과 초자연적 믿음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개방성 수치가 높으면 이국적인 종교나 음모론, 영성적 깨달음, 뉴에이지 운동 같은 것들에 빠지기 쉽다. 개방성과 영적인 믿음 간의 상관관계는 0.47로 아주 높은 편이다. 영혼과 명상, 우주적 신비로움같이 독특한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 ‘영혼이 맑으시네요’하면서 접근하는 사람을 한 번쯤 본 적 있을 거다. 한국 전통신앙의 무당, 역술가, 예언가들도 높은 개방성을 가지고 있을 확률이 높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점이 남는다. 앞서 종교는 보수주의자에게 더 어울리고, 무신론은 진보주의자에게 더 어울린다고 말했다. 모순이다. 하지만 종교의 목적과 그 양상을 살펴보면 보수주의자와 진보주의자의 종교는 차이점이 많다. 보수주의자는 심리적 안정과 소속감에 대한 욕구로 종교에 이끌리기 때문에, 대부분 거대화된 기성 종교를 믿는다. 보수주의자의 종교는 권위적이면서 체계적이고, 지역 사회에서 친밀한 사교 활동의 역할을 제공한다. 반면 개방적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종교란 사실 영성에 가깝다. 또 그들은 뭉치기보단 개인적으로 행동한다. 그래서 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아 사이비 냄새를 풍기기도 한다.
개방성이 다양한 쪽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개방성은 예술적, 언어적 감각을 발전시키거나, 지식이나 논리를 탐구하는 방향으로도 나타나거나, 영적인 믿음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어느 쪽으로 작용하건 개방성은 세상을 지각하는 인지거리를 높여 새로움을 추구하게 만든다. 개방성이 사람마다 각각 다른 방향으로 나타나는 건, 개방성의 여러 형태 모두가 비용을 상쇄할 만큼의 이익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어느 쪽이건 새로운 경험과 정보를 습득하면, 선택할 수 있는 경우의 수를 높여 낯선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을 준다. 인간에겐 먹이와 거주지가 정해져 있지 않았기에, 다양성과 유연성은 성실성만큼이나 중요했을 것이다. 다양성이 떨어지면 종을 막론하고 집단 공멸의 위험이 증가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연은 항상 다양성을 높이려 한다. 진보주의자도 마찬가지다. 진보적인 성향에 영향을 미치는 성격 특성은 외향성, 개방성, 친화성이다. 그중 핵심은 개방성이지만, 나머지 두 성격도 부분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따라서 인류가 아프리카를 벗어나던 그 시절에는, 각각의 성격이 나름의 장점을 가졌을 거라 추측해볼 수 있다.
우선 인류는 아주 천천히, 그리고 느리게 익숙한 환경을 벗어나 활동 영역을 넓혀나갔다. 그러다 불안정하고 예측할 수 없는 환경과 상황에도 처했을 텐데, 그럴 때 다양한 행동 양식을 가진 개인들이 필요해진다. 우선, 인류가 세계 곳곳에 퍼지게 된 건 아프리카를 떠나 위험을 감수한 개척가들 덕분이었다. 새로운 도전을 두려워했다면 인류는 아프리카를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위험을 무릅쓰고 보상을 추구하고, 활동 반경을 높이기 위해선 외향성이 필요하다.(실제로 버스기사 중 사망률이 높은 사람, 등반가, 익스트림 스포츠 선수들은 하나같이 다 외향성이 높다.)
일단 낯선 환경에 정착하면 여러 곳에서 문제가 터진다. 모든 것이 새로운 환경이기 때문이다. 무엇을 먹고 먹지 않아야 될지, 야영지는 어디에 지어야 할지, 어디까지 사냥을 나가야 할지, 무기는 어떤 식으로 만들어야 할지, 수많은 문제가 생긴다. 그럴 때는 최대한 많은 정보를 습득해 선택지를 늘리고, 새로운 문제에 유연하게 대응하고, 종합한 정보를 논리적으로 추론해 최선의 판단을 내리는 것이 큰 강점을 가진다. 덕분에 개방성이 만드는 논리적 추론과 지적 호기심, 인지적 유연성이 중요해졌을 것이다.
또 낯선 곳에선 자원과 식량이 부족했기 때문에, 동료와 인접 부족과 경쟁하고 갈등을 빚는 것보다는 서로 어울리고 도움을 주고받는 것이 유리했다. 경쟁이 일상화된 익숙한 환경에서는 타 부족과 싸워 승리하는 것이 유리하지만, 낯선 세계에서는 불특정 다수의 고통에 관심을 기울이고 돌보고 나중에 내가 힘들 때 도움을 돌려받는 것이 이득이다. 매 순간이 변화무쌍했기에 지위와 권위는 별 쓸모가 없었다. 지배하고 우위에 서려는 시도를 하면 욕을 먹기가 일쑤였다. 그보다는 갈등을 피하고 모두를 포용할 수 있는 관대함이 더 좋은 평을 받았다. 낯선 환경에선 친화성이 높은 사람들도 필요해지는 이유다.
시간이 지나며 부족이 자리를 잡고 자원적 여유가 생기자, 점차 불평등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개인 능력의 차이가 두드러지며 특정 분야에서 뛰어나고 주도적인 개인의 말에 힘이 실리기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지도자가 생겼다. 그는 리더십이 좋았지만 욕심이 많아 공평한 분배라는 부족의 룰을 깨트리고 자기 것을 더 많이 챙겨갔다. 공격적이고 단호한 부족장은 사소한 다툼을 이유로 이웃 부족과 전쟁을 선포했고, 그 과정에서 그의 권력은 더욱 강해졌다. 그는 권력을 이용해 많은 재물과 짝을 거느렸고, 투표를 무시한 채 자식들에게 권력을 나눠주고, 부족의 수호신에게 바친다는 이유로 세금을 걷어갔다. 부족장의 착취가 계속되자, 부족 내부에서는 점차 불만이 쌓여갔지만 그가 무서워 아무도 대놓고 말을 꺼내지 못했다.
그런데 부족원 중에는 조금 독특한 청년이 있었다. 그 청년은 하루 종일 멍하니 별을 바라보거나 공상에 빠지곤 했다. 그는 부족의 일에 비협조적이었지만, 이야기를 잘 지어내고 재밌게 말하는 데다 손재주도 좋아 인기가 많았다. 그의 이야기는 눈앞에서 보는 것처럼 생생하면서도 상상력을 자극해 듣다 보면 누구나 빠져들었다. 그래서인지 부족의 여자들에게 인기도 많았다. 하지만 반골 기질이 있어 불공평하다는 이유로 부족장들에게 한번 대들었다가 흠씬 두들겨 맞기도 했다. 그 일이 있은 후, 부족장에게 반감을 가진 청년은 밤에 몰래 부족원들만 불러 모아 연설을 시작했다. 평소에도 말을 잘하던 그는 부족원들에게 혁명의 정당성을 어필했다. 모두가 평등하다는 그의 주장은 부족원들의 맘에 불을 질러놓았고, 분노한 동료들은 부족장의 집에 쳐들어가 자는 그에게 다 같이 창을 찔러놓았다. 그 창은 그 청년이 새로 개발한 것이었다. 청년은 부족원들의 환호를 받으며 새로운 부족장으로 추대되었고, 많은 짝을 거느리게 되었다.
여기까지의 이야기는 당연히 내가 지어낸 이야기다. 스토리에는 개방성이 높은 사람의 원형적인 특성과 개방성이 어떻게 진화적 이점을 제공하는지가 나타나 있다. 이야기 중 일부는 원시 인류의 역사 이래로 여러 번 있을법한 내용이고, 실제 학자들이 개방성의 유래에 대해 예측하는 시나리오기도 하다. 이 시나리오에는 메인인 개방성과 그 외 외향성과 친화성의 특성이 나타나 있다. 새로운 것을 찾아 나서는 탐험심, 약자에 배려하고 공감하는 마음, 집단 정체성을 추구하기보단 개인주의적인 성향, 자기주장이 확고하고 억압과 착취에 민감한 성격, 언어적 유창성과 지적인 호기심, 자주 망상에 빠지는 것 같은 특성이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결과적으로 그 청년은 권위적이고 억압적인 지도자에 맞서 진화적으로 성공했다. 그의 개방적 유전자는 후손에게 성공적으로 전달되었다. 개방성이 살아남아 진보주의자를 만들어낸 이유다. 음악가, 예술가, 작가 등 개방성이 높은 사람이 인기가 많고 성적인 기회를 자주 가진다는 것은 연구에서도 증명된 결과다.
개방성은 정치적 영역에서도 두각을 드러낸다. 개방성은 5대 성격 특성 중 정치적 성향과의 관계가 가장 잘 알려진 성격이다. 도파민이 인간의 행동에 어떻게 주도적인 영향을 미치는지 잘 밝혀졌기 때문이다. 얼핏 보면 도파민이 만드는 개방성과 정치성향과 큰 관계가 없을 것 같지만, 찬찬히 생각해보면 관련성이 크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개방성이 높으면 많은 감각과 정보가 동시에 인지되고 연상되기 때문에 이를 분류하고 판단하려는 본능적인 욕구를 갖게 된다. 그래야 정보를 단순화하고 필요 없는 정보는 망각해 다른 정보를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실험에서, 진보주의자는 뭐든지 보자마자 평가하려는 욕구가 남들보다 높다는 결과가 나왔다. 진보주의자는 사물과 사람, 생각을 접할 때 우선 그것이 좋고 나쁜지, 마음에 드는지 안 드는지를 무의식의 차원에서 순간적으로 판단하는 경향이 강하다. 정보를 체계화하려는 근원적인 욕구가 있다 보니, 이데올로기와 복잡한 이론, 논리적 아름다움에 매력을 느끼는 것이다.
이는 진보주의자들이 편견과 차별, 선입견에 반대한다는 상식적 믿음에 위배되는 결과다. 오히려 진보주의자들이 약자를 억압하는 그 무언가가 항상 존재한다는 믿음으로 타인을 재단하는 편견에 쉽게 빠지는 셈이다. 진보주의자들이 정의나 평등 같은 이상적인 가치와 담론을 외치는 것 역시 세상만사를 윤리와 이념적 가치로 평가하려는 본능 때문인 걸지도 모른다. ‘개인은 사회적ㆍ구조적 압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진보의 핵심 전제 역시 세상을 평가하고 구조화하려는 욕망에서 비롯된 걸 수도 있다. 이렇듯 세상을 구조화하여 인식하는 방식 때문에, 자본가 vs 노동자, 억압자 vs 피해자, 주류 vs 소수자라는 이분법적인 계급적 사고가 진보의 담론에 반복적으로 등장하게 된다.
물론 어떤 명제가 무의식적이고 심리적인 사고방식에서 비롯됐다고 해서 그것이 사실이 아니거나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니다. 다만 진보주의자 역시도 나름의 인지 편향에 빠지는 경향이 있고, 그 오류가 정치에서도 일어난다. 따라서 진보주의 역시 정치적으로 극단화될 여지가 있다. 세상을 직관적으로 평가하려는 욕망이 강하다 보니, 오히려 객관적이고 냉정한 현실 파악이 안 된 채 세상을 선악으로 구부하는 것이다.
외향성과 친화성은 정치 성향과 직접적으로 관계가 있는 성격 특성은 아니다. 개방성은 정치에 관심을 가질 확률을 높이지만, 외향성과 친화성은 진보 정당에게 투표할 때 부분적인 영향만 미친다. 외향성은 새롭고 낯선 경험을 통해 자극과 쾌락을 얻도록 유도하는데, 이는 전통과 관습에 저항하고 사회 변화를 추구하는 진보주의와 더 잘 어울리기 때문이다. 친화성이 높으면 경제적ㆍ사회적 약자를 보살피고 복지를 확대하는 진보 정당에 표를 줄 확률이 높다. 여성들은 남성들보다 평균적으로 친화성이 높은데, 그래서 세계 어디를 막론하고 여성들이 진보 정당에 더 많이 투표하는 건지도 모른다.
외향성부터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외향성이 높은 사람은 빠른 벌새처럼 활동 반경이 넓고 에너지가 넘쳐나는 사람들이다. 외향적인 사람들은 다양한 활동을 하고 사람들과 어울림을 통해 열정, 흥분, 기쁨 같이 긍정적인 감정을 보상으로 얻는다. 또 자극과 동기에 대한 반응성이 커서 사소한 일로도 행복을 느낀다. 그래서 파티, 클럽, 술자리, 여행, 운동 등의 활동을 즐기는 인싸가 된다. 외향성 수치가 높은 사람에게 슬프거나 혐오스러운 영화를 보여주고 이어서 행복한 영화와 강아지를 보여주면 다른 사람에 비해 훨씬 기분이 좋아진다. 외향성이 강한 인싸들에게 코로나로 밖에 나가지 못하는 상황은 정말 힘들었을 거다.
외향적인 사람은 도파민에 사로잡힌 사람이다. 그런데 도파민은 외향성과 개방성에도 영향을 미친다. 외향성과 개방성은 새로운 경험과 변화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비슷하지만, 외향성은 쾌락적인 보상을 위해 활동적인 일을 하게끔 만들고, 개방성은 인식과 지적인 호기심에 작용하는 듯하다. 도파민이 즉각적인 보상을 위해 욕망 회로에 주로 흘러들어 가면 외향성이 두드러지고, 미래의 보상을 위해 통제 회로에 흘러들어 가면 논리와 추상과 관련된 개방성을 자극하는 것으로 보인다.
친화성은 개방성과 성실성처럼 세상을 인식하는 틀과 관련된 성격은 아니다. 그보다는 사람 간의 관계와 관련된다. 친화성은 타인을 존중하고 공감하는 성향이다. 친화성이 높은 사람은 협조적이고, 따듯하고, 사람을 잘 믿고, 잘 도와주고, 사람들과 싸우거나 부딪히는 일이 거의 없다. 또 공감능력이 높아 고통받는 사람을 보면 자신의 것처럼 아파한다. 세상이 갈수록 살기 팍팍해지고 여유가 없어진다지만, 그럼에도 사람 간의 정이 남아있는 건 친화성이 높은 사람들 덕분이다. 친화성이 높다고 개방성이 높은 사람처럼 적극적으로 평등을 주장하며 정치에 참여하는 것은 아닐지만, 친화성이 높으면 불평등을 개선하고 복지를 확대하려 하는 진보에 투표할 확률이 높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