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격한 아버지, 자애로운 어머니

보수주의자와 진보주의자의 가정 모델

by 교양이



정치와 가정



1773년, 아메리카 식민지인 보스턴의 시민들은 영국 상선에 실려있는 홍차를 버리고 배를 불태웠다. 영국 정부가 차에 대한 세금을 과도하게 부과한 것에 대한 반발이었다. 영국 정부는 다른 식민지들에 대한 경고로서 보스턴을 강하게 응징하였고, 이는 미국 독립전쟁의 도화선이 되었다.


2009년 2월 19일, CNBC 기자인 릭 신텔리가 오바마 정부의 재정 적자를 비난하고 주택금융시장 구제안에 반대하는 운동을 제안하면서 이를 티파티 운동(Tea Party Movement)이라 부르자고 제안했다. 일주일 후에 새로운 티파티 운동의 첫 집회가 열렸고 이후 소셜 미디어를 통해 세력이 엄청나게 확대되었다. 현재 티파티 운동은 300여 개에 이르는 지역 조직과 5개의 전국 단체를 거느리는 대규모 시민단체로 발전했다.


보스턴 차 사건과 티파티 운동은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둘 다 과도한 세금 징수에 반발하며 일어난 저항 운동이라는 점이다. 하지만 그 점을 제외하면 다른 공통점은 없다. 티파티 회원들은 티파티가 시민 저항운동이라고 주장하지만, 티파티는 명백한 보수주의 단체다. 티파티 지지자들의 대부분은 복음주의적 기독교를 믿는 보수 성향의 백인 남성 공화당원이며, 모두 정치적인 목적에서 결집했다. 결국 티파티는 석유ㆍ가스ㆍ부동산ㆍ의료 업계 대기업들의 막대한 후원금을 받으며 정치권 내 주요 세력으로까지 성장했다.


티파티의 주요 목적은 오바마 케어라 불리는 의료보험 개혁과 세금 인상, 규제 강화에 반대하고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것이다. 티파티의 중점 이슈는 재정적자 해결(29%), 작은 정부(20%), 헌법 수호(11%) 순이다. 2014년엔 티파티의 방해로 미국 의회는 예산안 처리에 실패하며 연방 정부가 폐쇄되는 상황(Shut Down)까지 일어나기도 했다. 현재 티파티는 극우 이미지를 가지고 있어 같은 공화당원들에게도 비호감을 사고 있지만, 지역구에서 영향력이 큰 편이라 무시하기 힘든 존재이기도 하다.


한편 2011년 9월 17일, 뉴욕에서는 30명의 시위대가 ‘월가를 점령하라(Ocuppy Wall Street)’라는 구호를 외치며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미국과 세계경제를 파탄에 빠트리고도 수백만 달러의 퇴직금을 받아 챙긴 월가의 최고경영자들에게 분노하던, 이른바 ‘고학력 저임금’ 세대였다. 우연히 시작된 시위는 뉴욕을 진앙지로 하여 SNS를 통해 전 세계적으로 확대되었고, 공식적으로 73일 동안 지속되었다. 시위대는 지도부 없이 공개 광장에서 총회를 열고 평화 행진을 이어나갔다. 월가 시위대는 1%가 전체 부의 50%를 차지한다는 현실에 저항한다는 의미로 ‘우리는 99%다.(We are the 99%)를 사용하기도 했다.


두 시위를 비교해 보면, 보수주의자와 진보주의자의 차이점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우선 결집 방식이다. 집단으로 뭉치고 목표를 향해 흔들림 없이 나아가는 보수주의자답게, 한 언론인의 제안 하나로 보수는 미국 정치판을 좌지우지하는 정치 단체를 만들어냈고 지금도 유지하고 있다. 반면 월가 시위대는 100일도 채 넘기지 못한 채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조직은 73일 만에 자연스레 해체되었다. 진보주의자는 개별적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연대는 해도 뭉치지는 않는다. 반면 티파티는 막대한 후원금을 등에 업고 연방 정부 폐쇄라는 결과를 힘을 보여주었지만, 월가 시위대는 심지어 리더도 갖추지 못했다. 그저 다수결로 민의를 진행하고 평화 행진을 하다 끝났을 뿐이다. 어디가 더 영향력이 크고 오래 살아남을지는 안 봐도 뻔한 결과다.


정치적인 담론과 그 주장에서도 차이가 뚜렷하다. 두 시위대 모두 처음부터 조직이 결성된 채 탄생한 단체가 아니기에 그들 모두를 보수주의자 혹은 진보주의자라고 부를 순 없다. 하지만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를 보면 전형적인 보수 혹은 진보만의 표현이 드러난다. 티파티는 작은 정부, 미국 역사의 가치와 전통 존중, 복지 정책 비판, 기독교 가치 회복, 헌법 정신 같은 단어들을 사용하며 성조기를 들고 모였다. 반면 월가 시위대는 경제적 불평등, 자본주의의 모순, 비폭력 저항, 부의 재분배 같은 표현들을 사용하며 ‘99%’가 적힌 구호를 내걸었다. 우리는 그들이 왜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지 이제 알고 있다. 태어날 때부터 뇌의 구조와 신경전달 시스템을 다르게 갖고 태어나기 때문이다. 이는 성격과 세계관, 도덕적 가치관을 달라지게 만든다. 보수와 진보는 세계관, 세상을 지각하는 프레임부터가 다르기에 두 시위대는 다른 주장과 언어를 사용하는 것이다.


이번 장에서는 가정에서 겪는 도덕적 경험이 타고난 성향과 결합해 어떻게 정치적 입장이 결정되는지 살펴볼 것이다. 지금까지는 선천적인 가치관의 차이가 어떻게 정치성향을 만들어내는지 알아봤다. 하지만 정치 성향은 환경과 교육의 영향을 많이 받기도 한다. 그 출발점은 가정이다. 부모님이 어떤 도덕적 가치관을 갖고 아이를 가르치냐에 따라 아이의 도덕적 가치관에 영향을 미친다. 부모에게 배우는 도덕 교육은 이상적인 도덕적 모델을 형성하는데, 엄격한 아버지 모델과 자애로운 어머니 모델이 그것이다. 가정에 관한 모델은 아이가 성인이 되면 국가에 대한 모델로 은유적으로 확장된다. 바람직한 가정이란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한 생각이 바람직한 국가란 무엇인지에 대한 모델로 확장되는 것이다. 이는 곧 정치적 가치관을 의미한다.


인간은 은유를 이용해 세상을 인식한다. 시작은 물리적ㆍ공간적인 인식에서 출발한다. 우리가 '빠졌다'라고 할 때, 직관적으로 웅덩이나 물 등에 공간적으로 떨어졌다는 의미로 이해한다. 그러나 빠지는 대상이 곧 눈에 보이는 물리적 실체여야만 하는 건 아니다. '곤경에 빠지다', '이 새끼 빠졌네', '김 빠진다' 등 추상적인 개념과 상황으로도 '빠지다'라는 단어가 이용될 수 있다. 단순한 공간적 움직임을 표현하는 언어가 비유적으로 확장되어 새로운 관념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사실 모든 언어가 이처럼 은유를 거쳐 복잡한 표현과 개념을 만들어 낸다. 인지과학이 컴퓨터를 비유해서 뇌와 시뮬레이션의 작동 방식을 이해하는 것과도 같다.


이는 언어의 효율성을 위해서다. 수많은 상황마다 새로운 단어를 만들어 낼 순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면 기존의 표현을 비유적으로 확장시켜서 누구나 쉽게 이해하게끔 하는 편이 훨씬 경제적이다. 덕분에 언어학자들은 언어가 역사적으로 어떻게 발전했는지 추적할 수 있다. 언어의 원형이 공간적 관념에 있다는 사실은 우리 뇌에 공간 인식을 담당하는 부위가 존재한다는 것을 실증한다.


우리가 옳고 그름에 대해 최초로 배우는 곳은 가정이다. 부모를 통해 우리는 공동체 속에서 타인에게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어떤 것이 좋고 어떤 것이 나쁜지를 처음으로 배운다. 우리가 배우는 최초의 도덕이자, 윤리의 출발점이 되는 개념은 좋은 것은 나와 남에게 자주 해주어야 하고, 싫은 것은 아무에게도 하지 않는 것이다. 유아는 부모에게서 기초적인 도덕에서 출발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배워나간다. 부모의 권위는 여기서부터 나온다.


가족은 하나의 울타리로서 아이에게 세상을 인식하는 출발점이 된다. 아버지, 어머니, 형제, 할아버지, 할머니, 삼촌 등 친족이 무리를 이루어 아이에게 최초의 사회적 인식을 심어주는 것이다. 아이는 가정이라는 사회에서 부모에게 도덕적으로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선악의 판단 기준을 배운다. 아이가 성장하면서 사회적 인식 거리는 또래 집단, 학교, 지역사회 등으로 점차 넓어지다가 최종적으로 국가가 된다. 진보주의자라면 그 인식 거리가 국가를 넘어서서 지구나 인류라는 개념까지 이르겠지만, 그럼에도 현실적으로 유의미한 인식 범위의 한계는 국가까지다. 환경 문제보다는 국가 내의 불평등에 집중하는 진보주의자가 훨씬 많은 이유다. 아이가 성인이 되면, 국가의 행동 주체인 정부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에 대해 부모로부터 배운 가정 모델을 활용해 정치적인 판단을 한다. 따라서 어떤 도덕적 가치관을 가진 부모에게서 도덕적 교육을 받는지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부모가 보수냐 진보냐에 따라, 아이가 경험하는 이상적인 가정 모델과 사고방식도 달라질 것이다.


1-1-1024x576.jpg 어떤 가정에서 배우느냐에 따라 도덕관이 달라진다


아이는 자신만의 타고난 성격적 기질(부모의 유전이 포함된)과 가정에서의 도덕적 경험을 통해 자신만의 도덕관을 형성해 나갈 것이다. 만약 아이의 성격이 성실성이나 개방성 중 한쪽으로 치우쳐져 있고 가정의 도덕관과도 비슷하다면, 아이는 도덕관을 발전시키는데 큰 혼란이 없을 것이다. 따라서 아이의 타고난 성격은 정치적 태도에도 그대로 반영될 것이다. 그러나 아이의 성격과 가정의 도덕관이 상이하다면, 아이는 자신의 도덕관을 형성할 때 큰 혼란을 느낄 것이다. 그런 아이들은 성인이 돼서도 정치적으로 어중간한 태도를 가질 확률이 높다.


따라서 아이가 경험하는 이상적인 가정 모델이 자신의 기질과 동일하다면, 가정 모델은 확고한 도덕 시스템을 구축해 정치적 입장과 관련되는 도덕적 가치관과 언어, 믿음을 만들어 낼 것이다. 이는 국가에 대한 개념으로 확대되어, 좋은 국가와 정부란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한 입장을 결정한다. 따라서 아이가 어떤 가정과 부모에게 교육받고 도덕적인 경험을 하는지 알 수 있다면, 어떤 정치적 태도를 가지는지, 그리고 왜 보수와 진보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지도 유추할 수 있다.


보수주의자가 진보주의자들의 모순을 이해하지 못하는 점은 많다. 보수는 범죄 피해자에게 공감하면서도 범죄자에게 약한 형량을 부여하고, 그들을 격리하기보다 사회에 적응시키려 애쓰는 진보주의자를 이해하지 못한다. 경제가 성장하기를 바라면서도 기업에게 높은 세금을 물리고 규제를 강화하자는 주장도 그렇다. 또 복지를 지나치게 확대해 노동 의욕을 떨어트리면서 개인의 창의성을 회복하자는 주장도 이상하다고 생각한다.


진보주의자의 입장에서 이해하지 못하는 점도 많다. 우선 진보는 가난한 사람들이 오히려 복지 축소와 쉬운 해고를 주장하는 보수 정당에 투표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물론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또 보수주의자가 저소득층을 위한 복지 확대와 부의 재분배에는 반대하면서도 홍수, 화재 같은 재해로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기부하는 것도 모순된다고 느낀다. 보수가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국방비를 증액하고 교도소를 확충하는 것에는 찬성하면서도, 근로자와 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한 단속을 반대하는 걸 보고 진보주의자들은 혼란을 느낀다.


그러나 보수주의자와 진보주의자가 서로 모순된다고 생각하는 것들은 각자의 관점에서 보면 당연한 것이다. 사실 엄연히 따지면, 양쪽 다 모순되는 건 맞다. 하지만 이미 알아보았듯이 도덕성은 이성보단 감정과 직관에 의해 움직인다. 감정에 일관성이 없는 건 당연한 거다. 따라서 논리와 근거로 상대방을 설득시키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상대방이 왜 그렇게 행동하고 생각하는지 이해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가치 판단은 잠시 미루고 그들의 심리적 근원을 추적해보아야 한다. 지금까지 우리는 선천적 요인을 알아봤고, 이제는 성인이 되어 정치적 입장이 결정되기 이전 아이가 가정에서 어떤 도덕적 경험을 쌓는지 이해해볼 필요가 있다.


가정에 관한 이상적 모델은 엄한 아버지와 자애로운 어머니로 정의될 수 있다. 이상적인 가정에 대한 관념은 비유적으로 확장되어 이상적인 국가에 대한 관념이 된다. 따라서 엄한 아버지 모델은 현대 보수주의가 되고, 자애로운 어머니는 현대 진보주의가 된다. 우리는 성인이 되고 나서 스스로 정치 성향을 결정했다고 생각하지만, 훨씬 이전부터 보수주의자나 진보주의자로 길러지고 있었던 셈이다.



엄한 아버지 도덕



엄한 아버지 도덕은 세상이 기본적으로 위험하고 살기 힘든 곳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규칙에 순종하고, 자제력을 키우고, 품성을 함양해야 힘든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다. 세상은 위험한 곳이기에 경쟁은 당연한 것이다. 정당한 경쟁을 거치지 않고 보상을 주거나 받는 것은 비도덕적이다. 아무도 성공을 위해 노력하거나 자제력을 키우며 질서 있는 삶을 살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경쟁에서 승리한 사람은 부자, 권력자, 엘리트 같이 성공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승리자로서 합법적인 권위를 지니기 때문에 그 아래에 있는 사람들은 성공한 사람이 가진 정당한 권리와 의무에 따라야 한다. 이에 저항하는 것은 비도덕적이다.


엄한 아버지 도덕은 가정에서부터 시작된다. 엄한 아버지가 있는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은 아버지의 권위와 명령에 순종하고 부모를 존경해야 한다. 부모의 권위에 저항하거나 규칙을 어기면 아이는 벌을 받아야 한다. 아이는 부모를 따라서 자제력을 키우고 자신의 책임을 다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결과적으로 적절한 능력을 키운 아이는 성인이 되어 경쟁에 뛰어들어서도 자립할 수 있는 어른이 된다.


자기 훈련과 자제력을 키운 아이는 도덕적 힘을 가진다. 무분별한 자유를 부여받고 절제심을 키우지 않으면 도덕적으로 악하고 타락한 사람이 된다. 범죄자, 게으름뱅이, 빈곤층, 노숙자, 중독자 같이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사람들은 절제심을 키우지 못하고 유혹에 패배한 사람들이다. 따라서 악에 맞서기 위해서는 도덕적인 힘을 가져야 한다. 도덕적인 힘이란 어떠한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는 단단함과 통일성, 완전함을 가지는 것을 말한다. 행동은 기질에 따른 필연적인 결과를 의미한다. 따라서 범죄자를 교화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오직 응징만이 있을 뿐이다.


권위란 질서를 유지하고 적으로부터의 공격을 방어하기 위한 것이다. 윗사람은 아랫사람을 보호하기 위해 권위를 행사할 권한이 있고, 규율을 제정해 사람들이 악에 빠지지 않고 올바르고 도덕적인 사람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힘들고 위험한 세상에서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권위와 질서에 순종하고 자제심을 키운 아이는 경쟁에서 승리할 충분한 자격이 있다. 재산, 명예, 지위, 권력을 가진 이들은 권위에 순종하고, 재능을 타고났고, 자제력을 키웠기에 그만한 대가를 받는 것이다.


그러나 경제적 능력이 없다는 건 방종과 나태심의 결과이다. 사람은 개인의 행동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따라서 가난한 사람은 게으르고 나태한 걸 되돌려 받아야 한다. 그들이 다시 열심히 일하고 자제력을 키울 수 있다면, 경제적으로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만약 국가가 복지를 통해 그들에게 대가 없는 도움을 준다면, 그들은 더 나아지기를 포기하고 현실에 안주할 것이다. 복지는 사람들을 게으르게 만들고 열심히 일한 사람들에게 세금으로 빼앗아가기 때문에, 복지는 비도덕적이다.


도덕적 질서란 강한 존재인 부모가 그만한 힘과 권위를 지니고, 그에 걸맞은 책임을 다하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은 인간보다 강하고, 부모는 아이보다 강하고, 남자는 여자보다 강하고, 인간은 자연보다 강하다. 따라서 강하다는 것은 선함의 결과이며, 강한 사람이 권위를 가지고 약한 사람에게 규칙을 따르게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강한 존재인 부모의 규율과 훈육을 어기는 아이는 그만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 필요하다면 체벌을 통해서 아이를 따끔하게 혼내야 아이는 자신의 잘못을 뉘우칠 수 있다. 조건 없는 부모의 사랑이란 건 없으며, 아이가 다시 부모의 사랑을 받기 위해선 부모의 말씀을 따르고 권위를 존중해야 한다. 아이가 정신을 차렸다면, 부모는 다시 사랑을 줌으로써 아이는 다시 도덕적으로 선하고 바른 존재가 된다. 아이가 부모의 가르침을 잘 따르고 옳은 길에서 벗어나지 않았다면, 아이는 다 자랐을 때 도덕적으로 강하고 선한 존재가 될 수 있다. 부모가 된 아이는 자신의 엄격한 아버지가 그러했던 것처럼, 자신의 아이를 돌보고 가르쳐야 한다.


아이는 '엄격한 아버지 모델'에게서 이러한 것들을 배운다. 전형적인 보수주의자의 사고방식이다. 아이가 엄격한 부모의 기질을 그대로 물려받았다면, 아이는 성인이 되어서도 자신이 경험하고 배운 가치관과 규칙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갈 것이다. 또 가정에 대한 자신의 생각이 은유적으로 국가로 확대되어, 옳은 국가란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한 신념을 형성할 때 영향을 미칠 것이다. 따라서 엄격한 아버지 부모에게서 배운 아이는 성인이 돼서 보수주의자가 될 가능성이 크다.


보수주의자의 언어는 다음과 같다.


기질, 미덕, 규율, 역경을 이겨냄, 강인함, 사랑의 매, 개인적 책임, 의지, 기준, 권위, 전통, 경쟁, 소득, 피나는 노력, 기업, 재산권, 보상, 자유, 간섭, 방해, 개입, 징벌, 인간의 본질, 상식, 의존, 방종, 엘리트, 할당량, 피신, 부패, 변절자




자애로운 어머니 도덕



자애로운 어머니 도덕에서는 사랑과 배려, 감정 이입이 우선시 된다. 아이들은 존중받아야 하고 가정과 공동체에서 타인을 배려하는 모습을 배워야 한다. 원활한 의사소통을 위해 질문을 던지고, 기존의 것들에 의문을 던지는 것은 꼭 필요한 과정이기에 권장된다. 부모가 아이를 돌보는 목적은 아이가 인생을 충만하고 행복하게 살고, 남을 배려하면서 공동체에 헌신하는 사람으로 자라나게 위함이다.


아이들은 사회적 양심을 발전시켜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질문을 던지고 진지한 탐구로 사회 속에서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탐구해나가야 한다. 아이의 학습은 질문과 자기 탐구, 개방성과 다양한 경험이 주를 이룬다. 아이들은 자신을 돌보고, 인생을 즐기고, 잠재력을 발전시키고, 타인을 존중하고, 감정 이입할 수 있는 성숙한 어른이 되어야 한다. 사회에서는 타인과 연대하고 공정하게 행동하며 시민으로서의 책임을 다해야 한다. 그런 사람들이 많아지면 세상은 서로를 더 보살피는 따듯한 사람들로 가득 찰 것이다. 하지만 집단의 논리에 매몰되선 안 되며, 자신만의 독립성과 개성은 유지해야 한다. 권위는 강압과 지배보다는 존경에서 나온다. 어떤 경우에도 폭력은 용납될 수 없다. 대신 인내심과 애정을 갖고 아이를 설득하고, 의견을 경청함으로써 스스로 잘못을 깨닫게 해야 한다.


도덕적으로 선하게 살기 위해선 감정이입이 중요하다. 아이는 자신을 돌볼 힘이 없기 때문에 누군가가 돌보고 관심을 가져야 한다. 도움을 줄 능력이 있는 어른이라면 무력한 아이를 돌보고 도움을 주는 것이 당연하다. 양육은 희생을 필요로 하며, 그들의 불행과 필요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할 책임이 있다. 마찬가지로 불행하고 고통을 겪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의 불행에 공감하는 것은 한 명의 시민으로서 당연한 일이다. 그들은 사회적 불의와 억압의 희생자이며,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이 나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개인은 권력 앞에 무력하기에, 연대만이 유일한 저항 수단이다. 권력은 언제든지 독재자의 탐욕에 의해 오용되고 확대되어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리바이어던의 괴물이 될 수 있다. 개인은 수평적이면서도 끈끈한 연대를 통해 권력에 맞서야 한다. 사회적 연대가 끊어지면 가장 피해를 보는 쪽은 사회적ㆍ경제적 약자이기 때문에, 약자의 아픔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먼저다.


진보주의자에게 평등과 공정은 가장 중요한 문제이며 정의의 본질이다. 보수주의자는 비도덕적인 행동에 대한 응징을 정의로 이해하지만, 진보주의자는 모두가 필요에 따라 분배 받음으로써 수평적인 평등을 이룩하는 것이 정의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능력이 있거나 힘이 있는 사람이 더 많은 책임을 져야 한다.(책임의 분배) 국가는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기본적인 권리를 지킬 의무가 있기에, 누구나 동일하게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기회의 균등함) 개인은 어쩔 수 없는 신체적 제약을 가지고 태어나거나 불평등으로 인한 사회적 제약을 물려받을 수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뒤처진 사람에게는 출발점을 앞당겨줌으로써 평등을 이룩해야 한다.(결과적 평등) 기회가 균등하다 하더라도 결과가 평등하지 못하다면 이는 공정하지 않다.


도덕은 타인뿐만 아니라 자신에게도 적용되어야 한다. 타인에 대한 공감과 연민을 느끼기 위해선 우선 자신부터 행복해야 한다. 아이가 행복한 삶을 살도록 돕기 위해선 부모부터 행복해져야 하는 이유와 같다. 불행한 사람은 타인이 자신보다 더 행복한 것을 원하지 않을 수도 있고, 자신보다 더 불행한 사람에게 공감하고 도움을 줄 여력이 안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신부터 행복해지는 것이 중요하지만, 그 과정에서 타인에게 피해를 끼쳐서는 안 된다.


사회적인 책임을 다하고 행복을 느끼기 위해선 자기 발전을 계속해 나가야 한다. 타인의 불행에 대한 공감능력을 키우고, 사회적 연대를 고양시키고, 사소한 것에도 감사하고, 행복을 느끼고, 새로운 것들을 접하며 자신의 경험과 인식의 범위를 넓히고, 명상을 통해 자신의 내면과 소통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사회적 문제의식을 깨닫고 해결하기 위해선 다양한 공부를 통해 자신의 무지와 독선을 깨닫고 지식의 깊이를 늘려나가는 것 또한 필수적이다. 삶은 선물이다. 따라서 기쁨으로 충만한 삶을 살고, 인생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고, 행복을 느끼고, 자신을 찾고 발전시켜나가지 않는 것은 한 번밖에 주어지지 않는 선물에 대한 죄악이다.


진보주의자의 언어는 다음과 같다.


사회적 책임감, 관대함, 다른 가치에 대한 존중, 열린 마음, 기쁨을 경험하는 능력, 아름다움에 대한 감각, 호기심, 소통 능력, 협조적, 감정에 대한 예민함, 신중함, 친절함, 공동체를 지향하는 마음가짐, 자기 존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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