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는 어떻게 생겨먹었나#7

by 교양이



자존감이 만성적으로 위협받는 상태가 되면 세상 모든 게 나를 무시하는 것으로 느껴진다. 모욕감을 느끼는 역치가 낮아져 고장 난 화재경보기처럼 쉬지 않고 사이렌이 울리는 것이다. 의도는 중요치 않다. 중요한 것은 내 마음의 상태인데, 사소한 일에도 수치심을 느끼는 자신이 더욱 초라하게 느껴진다. 자존감이 무너지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그럼 우리는 자존감을 회복하기 위해 똑같이 남에게 상처를 주거나 조롱함으로써 자존감을 되찾으려 한다. 자기 삶의 통제감과 영향력을 잃어버린 사람일수록 그런 식으로 자기 효능감을 채우려 하는 경향이 짙어진다. 그 결과 서로가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사회, 모두가 자존감이 낮은 사회가 된다. 그리고 자존감이 낮은 사회는 반드시 그 대가를 치르기 마련이다. 미움, 경멸감, 분노, 허무함, 수치심, 냉소, 피해의식, 열등감, 혐오 등이 주된 사회적 감정이 되는 것이다.


악성 댓글이 대표적인 현상이다. 한국의 악플 대 선플 비율은 4대 1이라고 한다. 1대 4인 일본, 1대 9인 네덜란드에 비하면 압도적으로 높은 수치다. 우리 사회에 그만큼 악플러들이 많다는 것은 자존감과 행복감, 인간관계가 결핍되어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뜻이다. 이들은 현실의 사소한 일에도 쉽게 상처받고 움크려들지만 익명성 속에 숨을 수 있는 가상 세계에선 폭군이 된다. 약자와 소수자를 괴롭히고, 누구든 논란거리가 생기면 조롱하고 비난한다. 말로는 도덕과 정의를 이야기하지만 사실 그런 것에는 관심이 없다. 진짜 목표는 모욕적이고 상처 주는 말로 타인의 자존감을 깎아내려 자신의 자존감을 채우는 것이다. 어쩌면 그들 중 일부는 타고난 악인일지도 모른다.


심리학자들은 범죄적 성향이 일부 유전된다는 점을 알아냈다. 때어 날 때부터 친화성과 성실성, 정직성이 낮고 외향성이 높은 사람들이 있다. 이 네 가지 성격이 조합될 경우 범죄 가능성은 기하급수적으로 높아진다. 실제 범죄자들은 이 네 가지 성격의 조합에서 일반인들과 차이가 많이 나며, 범죄를 저지르기 최적화된 세팅값을 지닌 채로 태어난다.


하지만 그들 모두가 범죄를 저지르는 것은 아니다. 기껏해야 조금 이기적이거나 속물적인 사람이 될 뿐, 정상적인 가정과 사회에서 자랐다면 그들 중에서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은 극소수다. 범죄 가능성을 현실로 만드는 것은 사회다. 어떤 사회에서 살아가느냐에 따라 타인이 고통받는 모습을 보고 즐기는 진정한 악인이 탄생하거나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꼭 중범죄를 떠올릴 필요는 없다. 악성 댓글, 직장 내 괴롭힘, 학교 폭력 모두 한국 사회의 고질병이다. 폭력적이고 강압적인 사회는 사람들의 자존감을 갉아먹으며, 자존감이 취약해진 사람들 중 일부는 타인에게 공격성을 드러내기 마련이다.


갑질과 진상 논란 역시 마찬가지다. 워낙 자주 일어나는 탓에 사그라들만도 한데, 지위나 위치를 이용해 상식 밖의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끝이질 않는다. 누군가의 갑질을 비난하는 이들도 갑질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한국 사회는 갑을관계를 복종관계이자 높고 낮음의 차이로 보는 경향이 유난히 강하다. 신분제도는 사라졌으나 신분의식은 여전히 남아 있다. 그래서 을이었던 사람이 갑의 위치가 되어 자신이 당했던 것을 똑같은 방식으로 되돌려주는 경우가 적지 않다.


갑질 역시 자존감의 문제가 달려 있다. 갑은 을이 자신의 뜻대로 따르지 않으니 자존심이 상하고, 을은 을대로 불합리한 지시와 인격적인 모독을 받으니 자존심이 상한다. 감정노동을 하는 직업군은 유독 한국에서만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 외국에선 감정을 팔아도 자존심은 팔지 않는다는 서로 간의 암묵적 합의가 있다. 그래서 인간 대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최소한의 예의가 지켜진다. 반면 한국의 감정 노동자들은 자존심까지 내놓으며 갑의 비위를 맞춰줘야 하는 상황에 빈번히 노출된다. 최근에야 감정 노동자들을 보호하는 법안이 제출됐지만 유명무실한 수준이다.


자존감을 채우기 위해 꼭 누군가에게 공격성을 드러낼 필요는 없다. 나보다 못나 보이는 사람들과의 비교를 통해 내 삶이 초라하지 않다는 걸 증명할 수도 있다. 그런 이유로 우리는 부단히도 비교할 대상을 찾아다니며 재산, 학력, 외모, 직업, 유흥에서 우위에 서기 위해 노력한다. SNS는 자신을 뽐내는 무대이자 자신의 급을 파악하는 수단으로 전락한 지 오래다. 직장인이 많이 쓰는 앱 블라인드에는 자신의 급을 자랑하거나 부족하지는 않은지 묻는 글들이 넘쳐난다. 대학생들은 스펙을, 고등학생들은 대학 서열을 매기며 이후 취업시장과 직결될 자신의 급을 높이기 위해 분투한다.


이렇게까지 서로의 수준을 비교하고 따지며 사는 민족이 어디 있을까. 한국인들은 외형적으로 보이는 몇 가지 요소만으로 사람의 귀천을 따지고 분류하는 속물적 문화를 내면화하며 자라왔기에 양가적인 감정을 겪으며 살아간다. 낙오되지 않았다는 안도감, 뒤처진 상대에 대한 은근한 경멸감과 우월감을 맛보는 동시에 나보다 앞서가는 상대에 대한 열등감, 박탈감을 가슴에 얹고 사는 것이다. 경제적으로 취약계층인 청년들은 그 정도가 더 심하다. 청년들이 정치에서 가장 분노하는 이슈는 취업 청탁 논란이다. 이유가 있다. 사회적으로는 공정성의 문제지만, 그 이면에는 청년들의 상대적 박탈감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 취준생이 독서실에서 매일 커피를 사 먹는 옆자리 사람에게 커피를 먹지 말아 달라는 쪽지를 남긴 일이 있는데, 모두 청년들에게 박탈감이 얼마나 큰 문제인지 말해주는 사건이다.


친구 사이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십수 년 함께 본 동창들과도 어느 순간부터 괴리감이 생긴다. 만나서 하는 이야기가 연봉, 주식, 부동산 같은 게 주를 이루다 보니 자연스럽게 보이지 않는 선이 그어진다. 우리는 평가하거나, 평가받지 않고 있는 그대로 나와 타인을 바라보는 법을 모른다. 오래 알고 지내던 사람 앞에서도 마음이 쉬지를 못하고, 혼자 있을 때가 가장 편하다. 애완동물 시장이 폭발적으로 증가한 것 역시 같은 맥락이다. 가장 친한 친구에게조차 편히 속마음을 털어놓지 못하는 한국인들은 사회적으로 더 고립되고, 타인에 더 엄격해지고, 더 외로워지며, 자살 위험성이 증가한다. 한국인의 사회적 고립도와 자살 간의 관련성을 자세히 살펴보면, 비교의 일상화라는 문제가 숨어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게 사람 간의 연결이 희미해지면 그 틈에 이익이 끼어든다. 사람 간의 도리, 예절, 상식보단 당장의 쾌락과 그 쾌락을 가능하게 해 주는 돈이 전부가 된다. 판단 기준은 "나에게 이익이 되는가"가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도덕과 윤리가 무너지고, 모두가 광적으로 이익과 쾌락에 집착하게 된다. 행복은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이 된다. 돈이 많으면 행복하고, 돈이 적으면 불행하다. 행복하다고 느끼는 기준은 주로 쉽사리 구매하거나 누릴 수 없는 경험이나 소비 위주로 구성된다. 값비싼 레스토랑에서의 한 끼, 호캉스, 해외여행, 명품, 비싼 차 같은 것들, 쾌락의 농도에 따라 행복의 질이 달라진다고 보는 것이다. 자연, 우정, 가족, 취미 등 마음의 평온이라는 관점에서 행복을 바라보는 북유럽 사회와 정반대다.


우리는 어느 순간부터 돈으로 얻는 쾌락의 경험이 행복을 증명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물론 쾌락은 행복이 아니다. 행복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행복은 인간관계와 좋아하는 일, 그리고 적당한 정도의 경제력 사이의 균형과 그 만족에서 오는 것이라고 말한다. 한국처럼 뒤처지면 안 된다는 압박감에 비교와 경쟁이 일상화된 사회에서는 1등도, 2등도, 꼴찌도 모두가 행복하지 않다. 한국의 구매력 지수가 10위권인데 비하여 행복도는 최저인 통계가 이를 증명한다. 세계 최저 수준의 출산율과 사회적 관용도, 그리고 자살률 1위라는 성적표는 한국인의 자존감이 심각한 위협을 받을뿐더러, 행복하지도 않다고 말하고 있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전쟁으로 폐허가 된 잿더미 속에서 한강의 기적을 이뤄내고, 독재를 몰아내고 민주주의를 쟁취한 아시아의 용 중 하나가 어떻게 십수 년 만에 헬조선이라 부르는 나라가 되었을까. 청년들은 왜 불행은 자신의 대에서 끝내야 한다고 자조하게 되었을까. 그 원인에는 수많은 것들이 있겠고 그 답들 하나하나가 나름대로 설득력 있는 설명이 될 것이다. 하지만 각각의 답들은 거시적으로 보면 하나의 현상일 뿐이다. 궁극적 답은 정치에 있다. 정치가 무너지면 사회가 무너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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