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는 어떻게 생겨먹었나#6

by 교양이



우리는 자존감이 부족할 때, 또는 존재 가치를 위협받을 때 해결책으로 세 가지 방식 중 하나를 택한다. 공격성을 자기 자신에게로 향하거나, 타인 또는 외부의 무언가에 투사하거나, 자신 또는 상황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고 재평가하는 방법을 택한다. 장기적으로는 상황을 재정의하는 방식이 가장 효과적이지만, 그만큼 어렵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단점이 있다. 스스로를 나쁘게 생각한다는 사실 자체를 인정해야만 가치 전환이 일어날 수 있는데, 이러한 자기 객관화는 부단한 노력과 용기, 진지함을 필요로 한다. 그래서 대개 쉽고 확실한 나머지 두 방식으로 자존감을 회복하려 한다. 하지만 내면 속 깊은 곳에서부터 자존감을 서서히 갉아먹게 되는 결과를 낳는다.


보통 지나치게 착한 사람들,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거나 싸우는 것이 싫어서 싫은 소리 한마디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은 자존감이 위협받는 상황에 직면해서도 자기 탓을 한다. 자기 자신을 공격하는 것이다. 이들은 다 자기가 못난 탓이라고 스스로를 폄하하면서 자기혐오나 자기 연민에 빠지거나 불안, 우울증에 빠져든다. 객관적으로 자신의 탓이 아님에도 끊임없이 스스로를 몰아세운다. 겉으로 보기에 자존감을 낮추려는 행동으로 보이지만, 사실 자존감을 회복하려는 동기가 숨어 있다. 모든 원인을 자기에게 돌림으로써 자신이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는 무기력한 존재라는 걸 애써 증명하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무가치한 존재인 자신은 아무런 책임과 의무도 부과받지 않을 수 있다. 어떤 행동도 하지 못할 만큼 스스로가 무능하다는 걸 증명하면 자존감이 위협받을 수 있는 가능성도 없어지기 때문이다. 실패할 일도, 실패함으로써 누군가에게 비난받을 일도 피할 수 있는 것이다. 심리학에서는 이런 성격을 회피성 성격장애라고 한다.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걸까. 마음이 균형을 유지하려 하기 때문이다. 영하 10도의 날씨에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찾는 얼죽아들을 제외하면, 사람은 추우면 따듯한 음료를 찾고 더우면 시원한 음료를 찾는 게 정상이다. 마음도 마찬가지다. 자존감이 무너지면 회복하기 위해 최선을 다 한다. 하지만 스스로에게서 자존감을 회복할 여력이나 의지가 없다면, 그 동력을 외부에서 찾게 된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남에게 의존하거나 착취하는 방식으로 자존감을 되찾으려 한다. 이들 중 전자를 의존성 성격장애자, 후자를 자기애성 성격장애자라고 한다. 두 유형은 행동 양상은 다르지만 남의 도움과 인정을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 대인관계가 착취적인 형태를 보이는 공통점이 있다. 의존성 성격장애를 가진 사람은 남에게 모든 것을 퍼주고 학대를 당하면서도 복종하고 이용당한다. 이들은 단지 순수하고 바보같이 착한 것으로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착취나 괴롭힘을 도구로 해서 인정과 애정을 얻어내려는 욕망이 숨어있다.


최악은 자기애성 성격장애와 의존성 성격장애가 연인으로 만났을 때다. 그 둘이 만나면 한 편의 연애 드라마가 완성된다. 엔딩이 낭만적이지 않다는 차이점이 있을 뿐. 사랑한다는 핑계로 배우자나 연인을 괴롭히고 학대하는 쪽과, 학대당하면서도 떠나가지 못하는 쪽. 한쪽은 완전한 가해자이고 한쪽은 완전한 피해자 같지만, 심리적 관점에서 보면 둘은 서로를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모두 부족한 자존감을 채우기 위해 외부의 대상을 이용하기 때문이다.


반면 자기애성 성격장애를 가진 사람의 겉모습만 보면 전혀 자존감이 부족해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자존감이 넘쳐 보인다. 하지만 이들을 오래 보다 보면 곧 진실이 드러난다. 흔히 나르시시스트라 부르는 자기애성 성격장애자들은 자부심이 굉장히 강하고 자랑과 허풍이 심하며 공감능력이 부족한 모습을 보인다. 그리스 신화에서 자기 자신과 사랑에 빠져 물에 빠져 죽은 나르키소스처럼, 이들은 진심으로 타인을 사랑할 만큼 내면적 자아가 강하지 못하다. 그들은 자기 자신만을 사랑한다. 로젠버그 자존감 척도를 통해 나르시시스트들의 내면을 살펴보면, 이들의 자존감은 큰 폭으로 동요하며 자신을 증오나 사악, 쓰레기 같은 단어들과 연관 짓는 경향이 있다. 사회적으로는 자신감 넘쳐 보이고 당당해 보여도 이들의 무의식 깊은 곳에는 뿌리 깊은 자기혐오와 무력감이 숨어 있는 것이다. 그래서 허풍과 허영의 가면이 위협받는 상황이 오면 격앙된 분노를 터트리거나 폭력적인 성향을 드러낸다. 초라한 민낯을 드러내는 일을 막기 위해 자신보다 약한 누군가를 상대로 공격성을 표출하는 일도 잦다. 이 모든 것들이 자존감이 부족할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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